텃밭사람들과 보내는 시간
익숙하지 않은 것은, 언제라도 귀찮음, 하기 싫음, 짓누름으로 무겁게 다가온다. 뭐가 뭔지 감이 안 잡히니 더 무겁고 두렵다.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가? 익숙하지 않은 것이 만들어 내는 벽에서 온다.
이를테면 이러하다. 배추 농사짓는 법을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멀고 귀찮아서 맨 처음 1년은 찾아보지 않았다. 도무지 그쪽으로 시선이 안 가는 것이다. 몸 마저 무거워서 찾아보는 게 너무 힘들게 여겨졌다. 나중에 그런 나 자신에 대해 내가 더 놀랐다. 책도 그렇다. 잘 모르는 것은 읽어버리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무겁고 귀찮다.
사람에게 있어 수행이란, 바로 이런 짓눌림을 넘어서는 게 수행일 것이다. 마음으로부터 거부감이 사라지는 것, 그러자면 몸을 반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몸을 먼저 만들어야 하는 것, 몸이 마음의 거부감을 제압해야 한다. 점차로 어떤 능숙함 속에서 불현듯 감을 잡으면 거부감과 무거움이 사라진다. 평정심이 찾아오고 가벼워진다. 그럴 때 더 이상 두려움은 없다.
현재 나는 무겁지 않다. 내 마음 안을 살피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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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오두막에 모여서 이야기하고 논다(물론 모여서 감자순을 다듬기도 한다). 때로는 음식을 먹기도 하였다. 간혹 지나가다 들려 같이 먹기도 하였다.
텃밭 채소 소산물은 어느 순간에 소비량을 넘는다. 잉여 채소로 부침개를 만들어 텃밭 사람들을 불러서 같이 먹는다.
그렇게 텃밭 오두막에서 음식과 막걸리 추렴이 시작되었다. 같이 이야기하고 웃는다. 별것 아닌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며 그 시간을 즐긴다. 내가 어느 날 이리 노닥거려 보니, 그 시간이야말로 바로 쉼의 시간임을 알겠더라. 사람들이 왜 오두막에 모여서 노는지 그때 이해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다 좋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어색한 면은 다소 있었다.
그런데 올해 여름을 뜨거운 태양볕에서 땀 흘리고 난 후, 우두막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과 앉아서 맥주를 나누니, 그냥 그 자체가 좋은 것이었다. 한숨 돌리는 편안함이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 얘기도 하고, 이 얘기 저 얘기가 서라운드로 돌아가지만, 그저 듣고만 있고 어둠 안에서 맥주를 홀짝이는 그 자체가 좋았다.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집이 아닌 바깥의, 텃밭이라는 특정 장소에서, 그 자신과 어떤 연관이 있는, 모두 같이 텃밭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동일체적 편안함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고민하지 않고 같이 어울릴 사람들과 그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그것, 그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았다.
나도 내가 쉼을 갖는 그 시간 자체가 좋았다. 땀 흘린 후 바로 집에 와서 채소정리나 집안 정리에 돌입했다면 피로가 더 누적되었을 것이다. 내가 텃밭에서 일하고 있을 때, 누군가 시원한 캔맥 한 개를 건네줄 때, 여름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시켜 주었다. 그렇게 같이 앉아서 나누는 시원함이 서로 어울리는 사람들의 거리감을 좁혀 주었다.
일상에서 비일상의 블랭크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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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연일 내리고 있다. 슬슬 배추가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공통으로 느끼는 안타까움이었다.
나는 하늘님이 11월 말까지 배추를 잘 가꿀 것이라고 믿는다(어쩌겠어요...)
우산을 쓰고 저녁에 텃밭 오두막으로 향한다. 청규 씨가(수박 밭, 올 수박은 비가 많이 와서 힘들었다) 문어를 잡았다고(취미가 낚시라고 한다), 생미역과 함께 추렴을 한다고 텃밭대장님이 전화사발통문을 보내왔다.
나는 뭐 좀 하다가 늦었다. 이미 문어는 없었다(괜찮다. 조만간에 또 문어를 먹으러 모이기로 하였다).
오두막 바깥은 가을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오두막 안까지 비는 들치지 않았지만 점차로 쌀쌀해졌다. 한 언니가 외투를 벗어주었다. 갱년기라 다들 춥지 않다고 하였다. 그래, 나는 치마를 입어서 추웠던 것이다. 그래도 외투를 머리에 썼다. 따뜻했다.
텃밭대장님은 분식집에 가서 라면을 끓여 왔다. 그러자 토끼띠의 보냉가방에서 소주가 나왔다. 오늘은 막걸리가 아니라 소주였다. 토끼띠는(아, 지금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ㅎ), 소주만 마신다. 청규 씨도 토끼띠다. 그리고 띠동갑 토끼띠분이 한 분 더 있었다. 동갑내기 두 콤비(네 달 빠른 토끼띠가 남자, 네 달 늦은 토끼띠가 여자)의 만담을 들으며 빗소리에 환한 웃음들이 퍼진다.
한 언니는 혼자 어디를 가더니 두 손 무겁게 돌아왔다. 이미 테이블을 다 정리했는데, 새롭게 보쌈판이 펼쳐졌다. 오늘 저녁은 여기서 해결되었다.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음식을 보니 저절로 손이 갔다.
공심채 반찬도 있었고, 귤도 있었고 오징어와 먹태와 매콤한 고추를 다져 만든 새콤매콤한 양념장도 있었다.
모두 캠핑 온 것 같다며 좋아했다. 정말 그랬다. 텃밭내장님은 골수이식(아들의 골수를 이식받았다) 받고 혈액형이 O형에서 B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격이 차분해지는 중이라고 하였다. 텃밭농장을 관리하며 지켜내느라 노심초사한 시간들에서 나타난 다혈질적 기질이 요즘은 많이 수그러들었다고 하였다.
우리가 보기에도 그랬다. 그래서 나는 이제 텃밭농장 2~3년 남았고, 그간 애쓰셨으니, 2~3년 간은 이렇게 추억 만들기 하시면 되겠네요! 했다.
한해 한해 청결하고 아름다운 텃밭농장을 가꾸는 시간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제는 어느 한 사람을 충족시킨다고 하여 되는 문제는 아니다. 서운함이나 피곤함은 늘 따라다니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행되는 것만이 삶에서는 중요하다.
텃밭도 사람 사는 곳인지라, 서로 어울리는 사람들과만 어울리려고 하거나 또는 그다지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는 등, 성향은 다채롭다.
잘 섞이지 않는 팀을 섞어서 하나로 만드는 것, 어쩌면 오늘처럼 이리 한데 뒤섞여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에서 오는 충만함도 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바로 이러한 감정선이 느껴진다. 뭔가 찡함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좋기 때문에 이 가을비 내리는 오두막에서 이렇게 추렴을 하며 웃는 것일 것이다. 여기에서 오는 충만함이 생의 동력인 것이다.
한 언니는, "텃밭은, 텃밭에서 이렇게 같이 시간 보내는 것은, 내 일상에서 숨구멍이예요"라고 말했다. 일상의 반복에서, 하루를 보내는 시간에서, 누구나 집이 아닌 바깥에서의 자기만의 시간은 필요한 법이다. 사람은 대체로 누구나 그 자신만의 압박감이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런 감정을 해소시키는 기제로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산책, 운동, 수다, 독서, 텃밭, 정원, 차생활, 여행, 쇼핑, 모임 등등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탁 트인 텃밭 오두막은, 별일 없이, 별거 아니어도 그냥 모여서 놀며 시간 보내는 장소로 안성맞춤인 장소인 것이다. 그런데 나 역시 문득 그것을 알았다. 그러자 이해가 되었다. 이해가 되니, 음식 싸들고 가서 같이 먹으며 시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산책으로 한 바퀴 그냥 돌고 들어오는 것과 텃밭이란, 갈 곳이 있다는 것의 차이는 컸다. 집이 아닌 집 같은 곳의 기능을 했다. 물론 텃밭은 가꾸어야 하는 곳이지만, 집 밖으로 나가서 발길을 향할 장소가 있다는 것은 어떤 든든함과 안온함이 있었다. 내가 가꾸는 텃밭이 내 삶의 연장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러한 시간들이 모두 다 수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는 이러한 편안함은 내가 무력감을 느끼던(이를테면, 텃밭 하는 것은 좋은데 배추 농사는 검색도 하기 싫었던 그런 것처럼, 어렵게 느껴졌던 것처럼) 것들로부터 벗어나, 그것들에 대해 능동성이 내 몸에 체화된 탓이리라. 비가 더 세차게 내린다. 배추는 괜찮을 것이다(하늘님한테 이미 말했으니까!).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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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텃밭 사유> 글을 거의 쓰지 않았는데, 이런 느낌은 기록하고 싶어졌다.
https://youtube.com/shorts/4dDTplXS8Hs?si=wGprug4Xw-EARrn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