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에 얻게 된 병
나는 어쩌면 어렸을 적부터 간간히 느껴왔던 통증과 불편한 것들이, 얼마 전부터 인생을 좌지우지 할 만큼 크게 작용하면서 다니던 회사도 나오고, 병원을 전전긍긍하며 거의 가능한 모든 과를 다녔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말기 암 환자나 간다는 통증의학과를 통해 구제받듯이 진통제 여러 종류와 신경통 몇 알을 받고, 이제는 매일 밤 약 없이 잠 못자는 수준이 되었다. 사실 약을 먹어도 안 듣는 날이 더러 있지만, 아무튼 최종 목적지인 서울대 병원까지 가서는 '섬유근육통'(일 것)이다라는 담당 교수의 진단으로(이제까지는 심지어 진단명 자체가 없었다) 그렇게 이 이름과 함께 하게 된다.
섬유근육통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아니, 절망적이고, 탈선(인생의) 욕구가 강하게 들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의미를 재구성해야 했으며 혹자의 말처럼 삶을 재편해야만 했다.
섬유근육통은 내가 원치 않는 인생의 손님 같은 것이었다. 이를테면 나를 때리는 아저씨가 새아빠가 된다고 생각해보자. 내가 원치 않는 그 새아빠는 섬유근육통 진단을 받은 오늘부터 나와 같은 집에서 산다고 한다. 나는 죽을 만큼 싫지만 같이 살아야 한다고 한다. 받아들이기 어렵다. 새아빠는 나를 매일 혹은 종종 나를 때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통증이다. 내가 먹는 프레가발린 약물은 이를테면 가끔씩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을 벗어날 수 있는 외박권 같은 것이다. 그럼 나는 잠시, 하룻밤 정도는 새아빠의 채찍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약효는 오래가지 않을지언정 그것으로 위안을 얻어야 하는 것이 새로운 삶이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매우 힘들었다. 가출(삶이라는 집구석으로부터의)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포악한 새아빠를 내 식구로 받아들이게 됐다. 리리카(프레가발린)는 휴대용 약통에 늘 들어있어야 했고 어딜 가든 나와 함께 한다. 즉시 효과는 없지만 오전 225(150mg+75mg) mg, 오후 225mg을 먹고 하루로 치면 450mg이나 되는 적잖은 양을 갑자기 줄이거나 바빠서 잊어먹고 안 먹게 되면 그날 밤 바로 증상이 도진다. 나는 다행히 나 말고도 와이프가 이것을 잘 챙겨주는 편이다.
아무튼 난폭한 새아빠 정도로 비유한 섬유근육통은 내 인생과 함께 가는 원치 않는 불청객이다. 하지만 식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 삶은 그렇게 재편됐다. 원치 않는 새 식구와 함께 하는 삶으로. 폭력을 견디기 위해 운동도 하고, 약도 먹고, 인지행동치료(병이나 통증을 받아들여 정도를 낮추는 심리 효과를 노림)도 병행한다.
지금은 약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이런 비유와 건설적인 사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렇게 되려면 '삶의 재편'과정을 원치 않아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 과정은 녹록지 않을 것이다. 한 평생, 나의 경우 근 40년을 내가 선택한 이들과 함께 살아왔는데, 뜬금없는 불청객과 함께 살아야 한다니! 누군들 환영할 수 없을 것이고, 삶에서 이탈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힘들지만 견디고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사랑하는 것들을 자꾸 접하고 접하고, 또 접해야 한다. 그러면 나중에야 그것들에 비해 '새아빠'의 자리는 썩 크지 않음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