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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임기자 Oct 26. 2020

책 <신경 끄기의 기술>,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이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방법...이라

신경 끄기의 기술.

이름부터 대단했다. 내가 신경을 끄고 싶은 이유는 하나다. 내 인생의 주적인 스트레스를 없애고 싶기 때문. 그런데 그게 맘대로 된 적이 거의 없다. 스트레스에 치이는 정도가 아니라, 이만하면 스트레스가 날 부려먹는 듯했다. 뭐, 사실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제목만으로 날 이끌기 충분했다.


여느 때처럼 교보문고 이 코너 저 코너를 서성였다. 난 교보문고에 들락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 봐야 한 두 달에 한번이지만, 아무튼 깨끗하게 정리된 새 책들을 보면 마음이 괜스레 편안해지고, 아무튼 좋다. 이 날은 여자 친구가 교보문고에 가자고 제의했다. 물론 그러자고 했다. 여자 친구는 어떤 잡지가 이 번호를 사면 특별한 화장품 세트인지 뭔지를 준다고 했다. 그리고 화장품이 잡지 값보다 훨씬 값지다고 했다. 나도 어떤 마음인지는 안다. 그런 것 나도 해봤기 때문에. (10여 년.. 아니 20여 년 전에 게임 잡지를 미친 듯이 샀다. 이유는 부록으로 주는 멋진 게임 시디 때문이었다.)

그렇게 여기저기를 둘러보니 오늘따라 베스트셀러 코너가 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런 광고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신경 끄기의 기술' 베스트셀러라고 하진 않았다. 추천 도서라고 했다. 그래서 그 책이 있는 곳을 찾아가 봤다. 커버가 맘에 들었다. 그래서 대강 훑어보고, 결제했다.


이 책은 저자의 개인 인생담이 아주 많이 담겨있다. 읽다 보면 이게 자기 계발서인지, 회고록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하지만 휘황찬란한 인생을 좀 살아봐서 인지, 더욱 와 닿고 또 와 닿았다. 나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한 저자였지만, 나는 그 과정에 있음이 분명해졌다. 빠져들듯이 읽었다. 퇴근 후 한 시간씩은 읽었더니, 금세 다 읽게 되었다.

신경을 쓰는 기술은 아주 대단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왜 그런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한 권의 책이 필요했을 뿐이다. 어떠한 기술이나 1번, 2번, 3번... 등으로 암기과목 테스트하듯 하는 항목을 두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책을 읽고 싶은 것이지 공부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니까.

저자는 마크라고 한다. 전체 이름은 관심도 없고 기억이 안 난다. 다만 그 이름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더 멋져 보이는 것을 보니, 저자에게 조금 매료된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사고뭉치에 허세 덩어리라고 표현했다.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친구의 죽음을 곁에서 보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다. 전환점이 된 것이다. 인생이 달리 보였고, 삶에 대해서 진지해졌다.



놀라운 것은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친하다고 (당시에는) 생각했던 '아는 형'이 있었다. 내가 한참 오토바이 동호회에 빠져 지낼 때였다. 나도 빠른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형은 더욱 빠르고 멋진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었다. 자주 어울렸고 함께 서울 밤거리를 내달렸다. 그러다가 편의점에 들어가 천 원짜리 레쓰비 한 캔씩 나눠마시며 인생 얘기 나누는, 가벼우면서도 진지한 대화를 했다.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들어줬다. 당시 나는 스물다섯, 그는 스물일곱이었다.


어느 할 것 없던 주말, 그와 더불어 함께 종종 달리던 또 다른 형과 셋이 석모도를 가자고 했다. 바람은 내가 넣었고 그들은 흔쾌히 가자고 했다. 그래서 달렸다. 석모도를 향해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자동차 사이를 비집고 달렸다. 멈췄다가 달리면 시속 200킬로미터는 우습게 나오는 무시무시한 스포츠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을 벗어났다. 그중에서 내 오토바이가 가장 느렸지만 열심히 따라갔다.


'형들'은 붉은 신호가 눈에 들어오자 속도를 줄였고 멈춰 섰다. 나는 옆에 멈춰 서서 흥분한 얼굴로 그들을 쳐다봤다. 무슨 대화를 했는지까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셋이 웃으며 낄낄거렸다. 그러기를 몇 초후, 녹색 불이 들어왔다. 헬멧 실드를 다시 내려 닫고, 스로틀을 당겼다. 내 바로 앞에 달리던 그의 오토바이가 잘 달리다 뒷바퀴 즈음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뭐지?' 하는 중에 마음이 급했는지 그는 양발을 바닥에 딛으며 중심을 위태롭게 잡기 시작했다. 점차 인도 쪽으로 붙으며 세우는가 싶더니 그대로 연석을 올라탔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바로 뒤를 쫓던 내 오토바이 위로 그의 오토바이가 솟구쳤다. 냉각수가 터졌는지 공중에 물 같은 것이 흩뿌려졌다. 수증기가 가득했다. 놀라서 앞에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마구 뛰어갔다. 육교에 부딪힌 오토바이는 동강이 났고, 형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누워있었다. 사지가 풀려 따로 놀았다. 직감적으로 느꼈다. 갔구나.


구급차가 오고 응급실로 갔다. 나는 울부짖었고 애꿎은 의사에게 성을 냈다. 그가 사망 시간을 읊어댔기 때문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 나와 웃으며 낄낄거렸던 그가 지금은 차갑게 누워있었다.


나는 그와 친족도 아니었지만 3일장을 모두 함께 치르고 회사는 쉬었다. 그의 가족들과 상여를 나눠 메었고, 화장터에 가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봤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작은 항아리에 그의 분골이 담겨 나왔다. 3일 전에 나와 함께 놀던 그가 작은 항아리에 담겨 나왔다. 뚜껑을 열어 뼛가루를 함께 뿌렸다. 아직 화기가 남아 따뜻했다. 이게 그의 몸이자 영혼이라고 생각하니 헛헛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이게 다 뭔가, 싶었다. 나흘 동안 겪은 일이었다. 한 남자의 인생이 마무리되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봤다. 그래 봐야 나랑 두 살 차이 나는 형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우울증 비슷한 것에 시달렸고, 시간만 나면 그와 함께 했던 폰카 사진들을 보면서 펑펑 울었다. 부모님은 나를 걱정했다. 이미 간 사람을 그렇게 기억하면 못 떠난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나는 서글펐고, 무엇보다 모든 게 덧없어 보였다. 허무했다. 그때부터 나는 생각하게 됐다. 사람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말을 종종 했다. 한편으로는 경각심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을 훨씬 가깝게 받아들였다. 어차피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 하고 싶은 거 하자는 주의로 돌아섰다. 


놀랍게도 난 3일장을 치르고 바로 다음날, 회사에 가서 '직계가족도 아닌데 삼일이나 쉬었다'는 이유로 훈계를 들었다. 뭐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훈계였고 징계를 받을 만도 했다.

놀라운 건 훈계가 아니라, 그날 바로 비슷한 오토바이를 타고 씽씽 달려야만 했다는 것이다. 난 그때 오토바이를 거들떠도 보기 싫었다. 내 눈앞에서 벌어진 일들이 생각나서였다. 그런데 일은 일이었다. 시승 촬영을 하면서, 마이크를 들고 캠코더 앞에서 태연히 배기량이 어떻고 서스펜션이 어떻고 설명하는 나를 보면서, 황당하기도 했다. 헛웃음이 났다. 일이니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책 얘기로 돌아오자면, 저자가 느낀 감정이 어떤 것인지 대강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한 것처럼 나는 인생을 재설계하지도 못했고, 그저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일상은 여전히 같았고, 단지 인생의 덧없음을 알게 됐을 뿐이다. 그조차도 1년, 2년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원래의 스트레스받는 사회인으로 돌아오게 됐다. 저자는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찾았다. 더 열심히 살았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두려울게 뭔가'라는 깨달음이었다. 내가 '인생 참 덧없다'라고 곱씹는 것 이상으로 한걸음, 수걸음을 더 나아간 것이다. 거기서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 난 지금도 두려워하고 있다.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쓰고 있고,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것들에게 휘둘려 스트레스를 만들어 내는 헛짓거리를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쓴 저자에게 더욱 빠져들었다. 내 얘기를 하는 것처럼 느낀 게 아니라, 내 얘기를 하고 있었다. '까놓고 말해서...'라고 할법한 솔직한 얘기들이 대부분이었다. 한편으로는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았구나 싶기도 했다.


아무튼, 사놓고 완독 한 뒤 다시 안 열게 되는 책들 사이에서, 그래도 가끔 들쳐보게 되는 책이다.

일단 재밌고 솔직한 책이다. 번역의 한계는 있지만, 무난하게 읽어 넘길만하다. 심리적 고민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라. 생각이 많다면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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