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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임기자 Oct 26. 2020

공랭 박서에 퀵 시프터 달았더니

좋았다.

최신 문물을 접한 느낌이었다. 매달 시승하느라고 타본 바이크들은 물론 대부분 최신 중의 최신 바이크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감흥이 덜하다. 뭐, 당연히 이 정도 물건이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는가,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태어난 지 10년이 넘어가는 내 바이크에게는 특별한 일이다. 회춘한 기분이다.


2007년식인 내 바이크는 공랭 수평대향 2기통 엔진을 가졌다. 소위 박서엔진이라고 부른다. 양쪽의 실린더가 마주 보고 있는 형태가 독특한 바이크다. 배기량은 무려 1,200cc 나 되긴 하지만 실제로는 그 정도로 안 느껴지는 것도 매력이다. 최근 인기가 많았던 알 나인티가 사실 내 스타일이긴 하지만, 나름 스포티한 포지션이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고 합리화)...


힐텍은 C2모터스포츠라는 곳에서 한국 내 총판을 맡고 있다. 즉, 공식 수입원이다. 헝가리에서 똑똑한 친구들이 만들었다고 대표님이 설명했다. 커뮤니케이션부터 장착 예약, 대금 처리까지 매우 스무스했다. 간결하고 매너가 가득 찼다. 신뢰가 쌓였다. 누군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그렇게 장착점(마포 피렐리)를 통해 장착을 마치는 데에는 30분 정도 걸렸다. 첨언을 했다. '세팅이 더 중요합니다.' 타고 보니 그렇게 느끼게 됐다.

힐텍은 놀랍게도 스마트폰 세대가 만든 초기능성 레이스 파츠다. 굉장히 거창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바이크를 타면서 레이스 기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단지 편하고, 빠르고, 멋지면 그만이다. 그중에서 편함과 빠름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퀵 시프터는 '빨리 변속'한다는 의미다. 풀어서 말하면 수동 트랜스미션을 조작할 때 필수인 클러치 조작을 생략해주는 기능이 주다. 우리가 1톤 트럭으로 면허 시험을 볼 때를 생각해보면 쉽다. 액셀레이터를 밟아 가속하다가 발을 떼는 순간은 기어가 잘 들어가고 잘 빠진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 원리랑 같다고 보면 쉽다. 바이크는 상시 치합식 6단 미션이 보통이다. R1200R은 공랭 엔진을 사용한 2007년 구형 모델의 경우 단판 건식을 썼다. 미션 체결 감이 매우 투박하고 유격도 크다. 거짓말 보태 할리데이비슨 같은 미제 느낌도 난다. 그게 난 매력이라고 생각(합리화)한다.

그래서 여기에 퀵 시프터의 조합이 과연 어울릴 것인지는 난센스였다. 애초에 레이스 기술인 것을 이렇게 느긋한 '무늬만 로드스터' 바이크에 접목한다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런데 난 취미로 바이크를 탄다. 물론 직업으로도 타지만 이건 내 개인 바이크다. 얼마든지 실험대상이 될 수 있고, 맞고 틀리고의 문제에서 자유롭다. 책임은 내가 지면 된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다.


스마트폰 앱을 설치하면 아주 간단하고 명료한 메뉴들이 쏟아진다. 거기다가 완벽(정말)한 한글화가 되어 있다. 이건 아마 유통사 중에서 가장 섬세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정도로 번역이 잘되어 있고 부가 설명도 친절하다. 따지고 보면 그만큼 혼동하기 쉽고 해석이 어려운 기능들을 설명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메뉴는 많았지만 실제로 자주(라고 하기에도 그렇지만) 쓰게 되는 메뉴는 한정적이다. 초기 설치 시 대부분 고정되고, 예를 들어 컷 오프 타임(기어를 넣는 순간 퓨엘 컷 시간을 조절)을 밀리 세컨즈 단위로 조절할 수 있다. 


나는 90ms로 설정한 뒤 타보고, 시내 주행이 주인 점을 감안해 느긋하게 95ms로도 바꿔봤다. 그런데 결론은 85ms정도로 줄여야 할 것 같다. 마음먹고 가속하니 마음을 못 따라와 주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이런 세부 설정을 정비사 도움 없이 스마트 폰 앱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사치롭다. 과거에는 꿈도 못 꿨던 일이다. 세팅이라는 게 결국 운전자 마음에 따라, 습관에 따라, 또는 컨디션에 따라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섬세한 것이라서 언제든지 바꾸고 싶게 마련인데, 그때마다 전담 정비사가 있어서 도와줄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괴롭힐 수밖에 없다는 말인데, 그럴 바이에 안 하고 말지 하는 심정이 종종 들기 마련. 그런 입장에서 힐텍 제품은 기립박수 감인 것은 맞다.

물론 어제 낮에 설치해서 두어 번 테스트 주행하고 돌아온 것이 전부라서 아직 확실한 느낌은 모르겠다. 순정 장착된 수많은 시승용 바이크와 비교할 뿐이다. 나는 순정 제품의 경우 당사에서 원하는 제품 특성에 맞게 세팅된 만큼 만족도도 높을 것이라 생각해왔는데, 힐텍 유통사 대표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그것보다는 사용자와의 궁합과 세팅의 중요성이 크기 때문에 순정 퀵 시프터가 세팅을 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월등히 기능적으로 우수하다는 의견이다. 그것에 대한 자부심은 상당했고,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게 되었다.


아무튼 50만 원 돈에 퀵 시프터(심지어 다운 쉬프트도 된다)를 설치했다는 것은 10여 년 전만 생각해도 꿈에 가깝다. 나는 2003년형 CBR954RR에 당시 몇 없던 퀵 시프터를 장착하고 싶어서 '다이노젯'제품을 훨씬 고가에 살까 말까 고민하다 생각을 접었던 적이 있다. 그때에 비하면 굉장히 저렴한 가격이면서도 기능성이나 퀄리티가 높다. 뭐 그만큼 시대가 바뀌었으니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런 제품을 국내에서 간편하게 장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통사가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안 그럼 알아도 직접 구매해야 하고, 장착도 알아서 독파해야 하고, 세팅도 독파해야 한다.


우선은, 며칠 더 타봐야겠다. 비 오는 날씨가 좀 바뀌길 바라면서...


20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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