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하고도 발칙한 주장에 대한 자의적 해석
행복하려고 하는 인간의 본질적 욕구를 부정하는 이론이 있다.
행복한 것이야말로 인간과 인생의 본질적 가치이자 궁극적 목표라고 단정 짓고, 어릴 때부터 교육되며 자라온 이들에게 충격이다. 한 때 나도 이 논리에 꽤 설득당했다.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뭔가 좀 이상하다. 행복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인간이 좋아하는 가치다. 즐겁다, 재미있다, 감동적이다, 맛있다, 스릴 있다, 개운하다, 시원하다, 따뜻하다, 기분이 좋다 등등 많은 종류의 인간 감정들은 단어로 채 묘사하기 어려울 만큼 미묘하고 자세하다. 종류도 다 따질 수 없다. 그런데 이것들의 종점은 결국 행복한 감정을 가지각색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 일종의 행복 표현이다.
'행복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라고 한다. 잘 생각해보면 물론 권리는 있다. 하지만 '행복하고 싶지 않아요. 난 그럴 권리가 있으니까.'라고 말한다면 '그래, 그럼'이라고 답할 수는 있겠으나 꽤 비논리적이다. 그럼 불행하고 싶다는 것인가 그냥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 있도록 그냥 좀 내버려 두라는 뜻일까?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말하자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마치 머든 감내해야 진정한 인생이고 삶인 것처럼 미화되는 현실의 가르침에 반발한 것이다. '행복이 싫어서'일리가 없다. 당연한 것이다.
행복해도 내 인생, 불행해도 내 인생, 그저 그런 인생도 내 인생. 뭐 그런 정도의 반항이라고 보면 된다.
인간이 왜 행복해야만 하는지 생각하기 머리 아프면 편한 대로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라던지, 마치 무릎 사이를 탁 치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연적으로 발이 툭 앞으로 올라오는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반응하는 행동이나 생각들은 대부분 인류가 생존해 오면서 익힌 생존 반응이 DNA에 조상 대대로 학습되고 변형하고 진화되어, 또는 퇴보되면서 지금 나의 DNA에 새겨져 온 것이다.
왜 행복해야 하냐고? 그렇지 않은 인간들은 긴 시간에 걸쳐 생존에 불리해 사라져 갔고, 거대한 인류라는 빅 데이터는 그것이 번식과 번영과 진화에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온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정교하지 못하더라도. '클루지'라는 책을 보면 그것에 대한 다양한 실증론적 데이터와 해석이 있다. 인류 진화론이 가진 웅대하면서도 장엄하고, 한편으로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고 어설프면서도 야만적인 방식으로 오직 '살아남기' 유리한 방향으로 결과를 도출해 내온 우리 DNA는 참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