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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임기자 Oct 24. 2020

저기, 꼭 행복해야 되나요?

엉뚱하고도 발칙한 주장에 대한 자의적 해석

행복하려고 하는 인간의 본질적 욕구를 부정하는 이론이 있다. 

행복한 것이야말로 인간과 인생의 본질적 가치이자 궁극적 목표라고 단정 짓고, 어릴 때부터 교육되며 자라온 이들에게 충격이다. 한 때 나도 이 논리에 꽤 설득당했다.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뭔가 좀 이상하다. 행복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인간이 좋아하는 가치다. 즐겁다, 재미있다, 감동적이다, 맛있다, 스릴 있다, 개운하다, 시원하다, 따뜻하다, 기분이 좋다 등등 많은 종류의 인간 감정들은 단어로 채 묘사하기 어려울 만큼 미묘하고 자세하다. 종류도 다 따질 수 없다. 그런데 이것들의 종점은 결국 행복한 감정을 가지각색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 일종의 행복 표현이다.


'행복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라고 한다. 잘 생각해보면 물론 권리는 있다. 하지만 '행복하고 싶지 않아요. 난 그럴 권리가 있으니까.'라고 말한다면 '그래, 그럼'이라고 답할 수는 있겠으나 꽤 비논리적이다. 그럼 불행하고 싶다는 것인가 그냥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 있도록 그냥 좀 내버려 두라는 뜻일까?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말하자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마치 머든 감내해야 진정한 인생이고 삶인 것처럼 미화되는 현실의 가르침에 반발한 것이다. '행복이 싫어서'일리가 없다. 당연한 것이다.


행복해도 내 인생, 불행해도 내 인생, 그저 그런 인생도 내 인생. 뭐 그런 정도의 반항이라고 보면 된다. 


인간이 왜 행복해야만 하는지 생각하기 머리 아프면 편한 대로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라던지, 마치 무릎 사이를 탁 치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연적으로 발이 툭 앞으로 올라오는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반응하는 행동이나 생각들은 대부분 인류가 생존해 오면서 익힌 생존 반응이 DNA에 조상 대대로 학습되고 변형하고 진화되어, 또는 퇴보되면서 지금 나의 DNA에 새겨져 온 것이다. 


왜 행복해야 하냐고? 그렇지 않은 인간들은 긴 시간에 걸쳐 생존에 불리해 사라져 갔고, 거대한 인류라는 빅 데이터는 그것이 번식과 번영과 진화에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온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정교하지 못하더라도. '클루지'라는 책을 보면 그것에 대한 다양한 실증론적 데이터와 해석이 있다. 인류 진화론이 가진 웅대하면서도 장엄하고, 한편으로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고 어설프면서도 야만적인 방식으로 오직 '살아남기' 유리한 방향으로 결과를 도출해 내온 우리 DNA는 참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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