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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임기자 Jan 30. 2022

취업과 창업의 달콤한 유혹 사이에서

공급자와 수요자의 갈림길

휴직. 말이 좋아 휴직이다. 사실상 내 발로 회사를 나왔으니 퇴직자다. 보험도 직장인으로 들 수 없는 처지다. 그런데 유튜브고 어디고 다들 나서서 누군가의 고용인(임플로이)로 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떠든다. 그런 자들이 너무나 많다. 모두 한껏 벌고 성공한 뒤 얼굴을 드러내는 부자들이다. 자본주의 세계의 성공한 기업가 혹은 자본가들이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그들의 말 한마디는 엄청난 힘을 가진다. 파급력도 어마어마하고,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자본가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신뢰를 얻는다.


나 또한 그런 자들의 말을 매우 귀담아듣고 있는 평범한 사람 중 하나다. 그래서 창업을 결심했다. 사실은 이미 직장을 다닐 때부터 구상해왔던 일이긴 했다. 바로 펫 스토어다.


거창한 이름이지만 별 건 없다. 나는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지내고 있다. 한 마리는 3개월쯤 됐을 때 입양해 온 여자아이고, 또 한 마리는 입양 당시 약 4살 정도로 추정되는데,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강원도로 갔다가 말도 안 되는 산속에서 뛰어내려와 차에 덜렁 타버린 고양이다. 이름도 '산'이라고 지었다. 이 녀석과의 인연은 아주 독특해서 많은 병을 가지고 있었지만 곧장 병원에서 치료해 주었다. 그 덕에 원래 기르던 '묭'이와도 따로 지내야 했다. 아무튼 두 마리나 기르게 된 덕에 고양이에 대해 반 전문가가 되어 갔다. 나뿐 아니다. 마누라도 마찬가지다. 여자 친구 시절에 다 만난 인연들이라(고양이) 그때부터 결혼 2년 차인 지금까지 쭉 함께다. 아내는 원래 고양이보다는 강아지를 더 좋아했고 그간 길러본 경험이 많아 나에게 조언을 종종 하기도 했다. 동물을 다루는 데 더 능숙했고 특히 동물의 감정을 읽는 데 노련했다. 나는 그런 부분을 따라 배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나도 잘한다. 글을 쓰고 있는 새벽 두 시 반 지금도 묭이는 내 옆에서 뛰어다니고 있다.


네이버에는 스마트스토어라는 온라인 스토어 제작 툴이 있다. 사실 상당히 복잡한 구조이지만 그래도 이 업계에서는 굉장히 쉬운 툴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많은(나 같은) 초심자들이 쉽게 접근한다. 나는 이래 봬도 컴퓨터 관련 학과를 나왔기 때문에 금방 시스템을 이해하고 나만의 매장을 만들어 개설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나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됐다. 돈이 없으면 팔 물건을 사오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물건을 파는 방법은 두 가지다. 내가 물건을 만들어서 팔거나, 남이 만들어 논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 제조업과 유통업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 당연히 나 같은 평범한 무자본가는 유통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매우매우 소량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개 두 개 팔려나갈 때의 감정은 묘했다. 평생을 쇼핑하며 구매자로 살아왔던 머릿속의 시스템이 완전히 바뀌는 순간을 경험한 것이다. 판매자의 입장에서 돌아가는 세상은 완전 딴판이었다. 묘했지만 재밌기도 했고 희열도 있었다. 다만 팔릴 때와 안 팔릴 때의 감정 기복이 상당했다. 그만큼 '장사'라는 것은 스트레스를 동반했다. 자연스럽게 비슷한 가격에 나와 비슷한 물건을 파는 '누군가'와 경쟁을 하게 되고 영업을 하게 된다. 자본주의 세계를 이제야 제대로 이해한 느낌이었다. 뭔가 팔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직장인 15년째에 알게 됐다. 나이로는 서른아홉 해 째였다.


창업자의 마인드라는 것은 대단해 보였다. 세상을 공급자와 수요자로 나누는 순간 뭔가 이미 기득권 세력에 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평생 누군가 통장에 넣어주는 돈으로 현명한 소비를 위해 살아왔던 사람이 공급을 생각하려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요자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들은 정말 갑을 사이에서 을인가? 금전을 주고 서비스나 재물로 보상받는 이들은 하나같이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공급자 사이에서 그 한 번의 판매를 이루기까지는 엄청난 노력이 들어간다. 예를 들어 내가 공급자 입장에서 순수익 300만 원을 내고 싶다고 가정하면, 보통은 1천만 원 정도의 매출 기준에서 30퍼센트 마진을 가져간다고 보면 된다. 유통 초보자 입장에서는 그 정도 마진도 충분했다. 그런데 개당 작게는 천 원에서 크게 몇만 원 정도의 물건을 팔아서 1천만 원을 채우는 일이 너무도 까마득했다. 웃기는 건 그 매출 1천만 원을 달성해야 보통 평범한 소기업의 직장인 월급 정도 가져갈 수 있는 현실이다. 이쯤 되니 갑자기 직장인이 부러워진다. 그들은 하루에 약 9시간을 고용인에게 빌려주는 대신 순수익 300만 원을 받아온다. 그에 비해 나는 300만 원을 가져오기 위해 24시간을 고군분투해도 불가능한 숫자라면? 직장인의 순수익 300만 원이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임을 깨닫게 된다. 직장인이 뭔가 세상의 패배자로 보였던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아무튼 내 시간을 다른 사람 사업에 투자하는 대가로 매출 1천만 원 정도는 달성하는 셈인 것이다. 그 원동력은 노동력이기 때문에 나 자신의 경쟁력이나 성과가 얼마나 큰지에 달려있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공급자로서 그 정도 평범한 수익을 얻기 위해서 또한 평생 나 자신을 위해 투자했던 다양한 공부만큼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평생 월급쟁이로 산 나는 당연히 후자가 익숙하고 경쟁력이 월등했다. 반면 공급자로 수월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단 적은 자본보다는 큰 자본으로 시작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즉, 돈이 없으면, 자본금이 없으면 공급자로의 삶은 시작조차 할 수 없다. 근로소득을 이용해 일단은 시드머니를 벌어야 공급자의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시드머니는 클수록 좋겠지만 만약 실패하게 되면 타격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그래서 작은 실패를 좀 해보는 것도 좋다. 다만 실패가 습관이 되면 안 된다. 그것이야 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습관이다.


그렇게 오늘도 어설픈 사업가의 삶과 숙련된 월급쟁이의 삶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삶을 쉽게 비유할 수 있는 단어가 따로 있었다. 바로 '장인'이다. 한 가지의 분야에 몰두해 세상 모두가 가치를 인정하고 기꺼이 대가를 치러주는 그런 장인이 되는 것이다. 굉장히 고고해 보일 수 있는 단어이지만 사실은 소박한 꿈이다. 내가 몸담은 분야에서 숙련자가 되어 인정받는 안정된 삶을 살고 싶은 것뿐이었다. 그런데 월급쟁이를 이런저런 이유로 갑자기 중단하게 되면서 삶의 방식과 사고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원래 자본주의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알아챈 것만으로 큰 가치가 있긴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니 월급쟁이의 숙련된 삶도 나쁘지는 않았다. 아내가 그 증거였다. 아내는 나와 달리 사는 데 별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에게 꿈에 대해 물어보면 그냥 지금처럼 회사 다니면서 늙고 싶다고 한다. 장대한 꿈을 가진 내 입장에서는 헛웃음이 나오는 허무한 답이지만, 사실 실익을 따져보면 가장 간단하고 평범하게 행복감을 동반할 수 있는 평범한 삶이었다. 지금은 좀 이해가 가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뭐가 맞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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