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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임기자 Jan 30. 2023

오키나와 로드트립 #5

7박8일 무계획 모터사이클 여행

7일차_


숙소 옆 매일밤 들렀던 편의점의 한국 간식들. 우리 나라에서도 못 보던 게 있다.


사실상 여행 마지막날이 밝았다. 내일은 기상 후 바로 출국을 준비하고 떠나야 하므로 시간이 없다. 온전히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날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런 마음으로 눈을 떴다. 다행히 날씨는 여행한 일주일 가운데 가장 맑았다. 오늘만큼은 바이크를 타고 오키나와를 다 돌아보리라.



_오키나와 최북단을 향해


바이크로 남부를 우선 흝고, 중부까지는 어제 대강 돌아봤다. 오늘은 북부 코스를 공략할 시간이다. 북부는 사전조사한 바에 의하면 남부나 중부에 비해 인구가 없고 거의 숲과 바다로만 구성되어 있는 국립공원으로 묶여있다. 관광지라 할 것도 많지 않고, 자연과 함께 하는 액티비티 코스가 있다. 나는 바이크 타는 게 곧 액티비티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충분했다.


어제 둘러보던 중부 지역을 58번 도로를 통해 빠르게 주파하고 나고시내를 지나고 나니 한결 탁 트인 도로와 바다 배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제주도로 따지면 이제 막 한라산 국립공원에 들어선 느낌이다. 확실히 개발되지 않은 청정지역의 분위기가 있다. 내가 원하던 바로 그것이다. 기분이 맑아진다.



_헤도 곶의 절경


연료게이지 단 한칸 남은 걸 보고도 못 본척, 신나게 비집고 돌아다녔던 시골길


콧노래를 부르며 해안 도로를 굽이굽이 헤쳐나가며 라이딩을 즐기다 보니 오키나와 최북단인 헤도 곶에 다다랐다. 아침 일찍 출발한지라 좀 출출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화장실이 급해서 바이크에 내리자마자 관광안내센터같은 건물로 뛰어들어갔다. 볼일을 마치고 나와보니 여기도 관광지치고 사람이 없는건 마찬가지다.


세워 둔 내 바이크 근처러 또 다른 라이더가 혼다 아프리카트윈(CRF1100L)을 타고 조용히 주차를 한다. 헬멧너머로 보이는 파란 눈과 노란 머리로 보아 일본인은 아닌듯하다. 일단 목이 말라 근처 자판기에서 뜨거운 유자 음료를 뽑아 찬찬히 절벽끝으로 걸어갔다.


"우와!"


탄성이 절로 나오는 절경이다. 절벽아래로는 어떤 울타리도 없고 밭 밀으로, 양쪽으로는 깎아지른 절벽과 그 아래로 철썩이는 파도가 있을 뿐. 조금 다리가 후들거리긴 해도 이렇게 몸을 고정한 채 먼 바다를 내다보니 완전히 천혜의 자연 안에 존재하는 느낌이다. 색다른 느낌이다. 내가 비록 발에 치이는 사람과 빌딩 숲에서 자라온 서울토박이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감동할 만한 명소다. 순간 해방감을 느꼈다.


어딜가나 술취한 아저씨는 있다. 아마도 일본 본토에서 관광온 일행인가 싶은데 나에게 일본어로 뭐라고 말을 걸기에 일본말은 못한다고 했더니 더듬더듬 영어로 어디서 왔느냐 저기 너머의 섬은 한국이냐, 일본이냐 하며 다소 주사섞인 말들을 늘어놓는다. 적당히 대답하고 갈길을 가는데 일행들이 멋적은 듯 웃어준다. 


이 때 이후로 헤도 곶은 앞으로도 인생의 굴곡마다 몇 번이고 찾아와서 힐링하고 싶은, 나의 최애 장소가 되었다. 그 정도로 감동이 컸던 곳이다.



_연료는 없지만 더 타고 싶어


황홀한 경치를 영상에 담고 다시 바이크로 돌아와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정할 때가 왔다. 일단 연료경고등이 깜빡거리기 시작했고, 둘째로는 배가 고파졌다. 아침에 호텔에서 대강 먹은 샌드위치로 버티기에 꽤 오랜시간을 달렸기 때문이다. 


구글 맵에 가장 가까운 주유소를 검색하니 왔던길을 30km정도 되돌아 가던지, 안 가본 북부 동해안 방향으로 가면 40km는 가야 문 연 주유소를 만날 수 있을 듯 하다. 뭔가 무인도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음식점은 그보다 더 멀리 가야 나온다. 국립공원이라 아마 개발이 전혀 안된듯하다. 마음에 드는 부분이지만 이럴 때 좀 불편하기는 하다.


주유를 먼저 해야겠다 싶어서 출발은 했는데, 이곳으로 오기 전에 봤던 멋진 임도(산림에 난 비포장로)가 눈에 자꾸 밟혔다. 지나칠 수가 없어 오버리터 온로드 바이크인 CB1300SF 볼도르로 임도를 신명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이게 분명 무게가 270kg이나 나가는 단단한 온로드 바이크인데, 맘대로 움직이기도 아주 편한데다 의외로 부담이 없다. 정말 좋은 바이크임에는 틀림없다. 집에 있는 멀티스트라다로도 이렇게 부담없이 달리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혼다는 혼다구나 싶다.


그렇게 신나가 임도를 흙먼지 일으키며 달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연료경고등이 들어온다. 아뿔사, 30km는 거꾸로 돌아가야 하는데 버틸 수 있을까? 6단 톱기어를 넣고 초연비 주행을 한 결과 시골의 한 주유소에 다다를 수 있었다. 


"레규라 이빠이, 카도데쓰" (보통 휘발유 가득, 신용카드 결제입니다)

"하이,하이"



_굽이치는 얀바루 산중 도로


대충 익힌 서바이벌 일본어로 주유를 가득하고 다시 거꾸로 달렸다. 다른 길로 가고 싶어도 북부에는 도로가 그리 많지 않아 일단 헤도 곶으로 다시 가는수밖에 없었다. 자, 이제 음식점을 찾아볼까? 가장 가까운 음식점 40km 밖이다. 그것도 구불구불한 와인딩 로드로 40km이니 최소 한 시간은 마치 내구레이스를 해듯이 숨가쁘게 달려야 한다. 해안을 벗어나 얀바루라 불리는 국립공원 산중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는데 또 한번 탄성이 나온다. 마치 비무장지대같은 삼림에 나 있는 깨끗한 도로, 그리고 거기에 나 혼자뿐인 적막. 오로지 내 바이크의 엔진소리와 짹짹이는 새소리, 그리고 즐기고 싶은만큼 즐겨보라는 듯이 펼쳐진 와인딩 로드. 해갈이 되는 기분이다.


국립공원 깊숙이 위치한 쉼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화장실을 썼는데 좀 으스스할 정도로 적막한 곳이었다.


오쿠 비치 등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산중도로는 한국으로 따지면 태백산맥을 옆구리에 끼고 달리는 해안도로, 7번 국도와 비슷하지만 절벽 가까이 도로가 펼쳐져 있어 대자연의 품에서 논다는 감각이 매우 크다. 인적이 없고 가끔 지나치는 자동차 뿐이다. 마주쳐 지난 두카티 멀티스트라다가 한시간 여 와인딩 로드를 달리며 목격한 유일한 바이크였다.



_북부에는 음식점이 없다


문제는 내가 검색해 찾아간 괜찮아 보이는 음식점이 막상 도착하니 브레이크 타임에 걸렸다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열고 식사가 가능한지 묻자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웃으며 거절한다. 그렇게 그 다음, 그 다음 음식점을 가까운 순서로 자그마치 다섯 곳이나 갔는데 전부 브레이크 타임이거나 구글맵과 정보가 달라 허탕을 쳤다. 


"아, 이제는 정말 배가 고픈데" 하며 달려간 마지막 음식점은 시골 기사식당같은 남루한 분위기의 소바 집이었다. 역시나 오키나와 소바가 주메뉴여서 여기서도 그걸 시켰다. 다행히 음식 사진과 일본어가 함께 있어서 구글 카메라 번역을 통해 적당히 주문할 수 있었다. 맛은 중간 정도로 끼니를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밥집을 찾는데 시간을 꽤 들여서 곧바로 헬멧을 쓰고 다시 해안도로를 향해 출발했다.



_바다포도를 먹었어야 했는데


오키나와 음식 중 유명한 '바다포도'라는 게 있다. 말하자면 해초류인데 마치 작은 포도알 같이 생긴 디저트 정도로 보였다. 호기심이 생겨 이 메뉴 맛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가게가 업종을 바꾼건지 타코 전문점으로 바뀌어 있어 난감했다. 그대로 떠나긴 아쉬워 근처에 있는 운치있는 카페를 찾아 달렸다. 마침 아이들 하교시간이 딱 겹쳤는지 젊은 아이 엄마들과 시끌벅적한 꼬마들이 사방에서 들이닥쳤다. 바이크를 얌전히 주차하고 원래 먹으려 했던 무화과 타르트를 노렸는데, 이날은 다 팔리고 없는지 딸기 타르트를 시킬 수 밖에 없었다.


곧 등장한 케잌과 음료를 펼쳐두고 요렇게 영상을 담고 있는데, 갑자기 현타가 온다. 오토바이를 탄 아저씨가 혼자 딸기타르트와 커피를 받고 즐거워 하는 모습이 왠지 측은해 보일 것 같다. 나는 어차피 어느 가게를 가도 후다닥 주문한 음식만 먹고 곧장 일어서 나오는 편이라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날은 왠지 내가 좀 여기 안 어울리나 싶은 생각에 더 빨리 먹고 일어났다. 아내가 그러길 '여보는 가성비 좋은 손님'이라고 한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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