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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임기자 May 02. 2023

브이스트롬 1050 DE는 투어러입니다

'싱글길' 이런 데 들어가지 마오

말하자면 브이스트롬은 확실히 투어러 기질이 다분하다. 콘셉트는 오프로드 범용성을 높였다고 하지만 사실은 여전히 온로드 주력 기질을 버리지 못했다. 스즈키는 아주 안전한 선택을 하는 브랜드다.


물론 사막을 가로지르는 라이더의 터프함은 누구나 매료될 법하다. 하지만 실상을 보라 우리 주변에 어디 사막은커녕 모래바람 일으키며 달릴만한 험로도 찾기 어렵다. 임도는 숱하면 산주인과 시비가 붙기 십상이고, 그나마 다닐만한 길들도 금방 통행을 막아버린다.


한동안 임도 타기에 빠져 전국 임도 지도를 만들어보고자 했음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나 말고도 숱한 임도 마니아들이 그렇게 고생하면서까지 취미를 즐기고 있다.


브이스트롬은 일단 기함급 투어러를 그대로 콘셉트 유지하면서도 어떠한 로망 같은 걸 심어놓은 것이다 터프한 모양의 외제 SUV가 결국 산에 들어갈 일은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비슷하다. 물론 그보다는 쓸모가 많겠지만, 주 무대는 여전히 잘 닦인 아스팔트 혹은 좀 지저분한 시멘트 도로, 자갈길 정도가 전부다.

브이스트롬을 좀 거 여유 있게 타 보고 나니 의외의 스포츠성도 여전히 못 버린 것 같다. 앞바퀴가 21인치나 되면서도 날렵한 움직임은 마치 차체 전체가 하나의 기다란 쇠막대기 같은 느낌을 준다. 그 강성과 견고함이 좌우로 훌쩍 기울일 때마다 느껴져서 라이더가 믿음직하고 인마일체가 되어 이게 오버리터 투어러라는 사실도 잊고 좀 더 빠르게 빠르게 달리게 되는 것이다.


단단한 서스펜션 세팅은 순간 가속이나 브레이킹에도 잘 먹어준다. 이게 만약 본격 오프로드 세팅이었다면 휠 트래블도 더 길고 압축 신장 모든 방면에서 더 부드러워야 정상인데, 확실히 온로드 와인딩에서 이 정도 즐거움을 준다는 것은 역시 스즈키의 판단이 나 같은 평범한 라이더에게 상당히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스로틀이 가장 빠릿빠릿한 A모드에서는 반응이 괜찮은 퀵 시프터와 조화가 좋아 빠르고 즐겁게 트랙션을 다 느끼면서 스포츠 주행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모든 댐핑을 사용자가 직접 조절할 수 있는 방식이니 여지가 많아 좋다.


퀵 시프터는 레이서 레플리카에 달린 그런 세팅과는 사뭇 다르다. 풀 가속하지 않아도 기어가 잘 들어가는 반면, 그 움직임은 매끄럽다기보다 다소 빡빡하고 절도가 있다. 아마도 일상 용도로 쓰이는 퀵 시프터란 어떤 것이 쾌적할지 고민한 게 분명하다. 여유 있게 툭 밀어 넣어도 잘 들어간다. 다만 발끝에 힘이 좀 필요하다.

조금 놀란 것은 이런 외향에도 칼같이 듣는 브레이킹이다. 세팅이 매우 민감한 초기 응답력을 기준으로 되어 있어서 스포츠 바이크 못지않은 파워풀한 브레이킹이 가능하다.


 리어 브레이크 감도를 따지는 나로서는 리어브레이크의 세밀하지 못한 느낌은 좀 맘에 안 든다. 하지만 온로드 바이크 기준으로 꽤 강하게 리어를 뭉갤 수 있고, 원한다면 프런트 브레이크 없이도 상당히 빠르게 달릴 수 있다.

어느 기어에서나 정직하게 가속을 뽑아주는 엔진은 특히 5000 rpm부터 슬쩍 더 밀어주는 경향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보통 이쯤 변속을 하게 되는데, 변속과 동시에 툭툭 치는 토크를 실감 나게 느끼도록 했다는 것이다.


 모터사이클은 감성적인 탈것이다 보니 이런 연출이 매우 중요할 때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심심한 바이크가 되어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스즈키는 바이크 외형 자체가 주는 임팩트보다 막상 타봐야 아는 경우가 많다. 특히 오래전부터 스즈키 바이크를 타봤던 나로서는 최소 일주일 이상 아니 한 달 이상은 타야 탈수록 바이크가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건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 이유로 스즈키는 한번 타면 다른 바이크보다 오래 갖고 있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오래 송유한 사람들끼리의 유대도 강한 편이다. 유독 사진빨이 안 받는 단점도 있지만 아무래도 타고 있으면 콕핏만 보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게 된다.

또 한 가지, 유럽제 2 기통 바이크와 비교하면 확실히 브이스트롬의 맥동은 부들부들하다. 아이들링 근처의 심약한 rpm에서도 쉽게 호흡을 더듬는 일이 없다.


 따라서 이런 점은 저속 주행할 때, 특히 험로에서 주춤거릴 때 매우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미션에 무리가 가는 반클러치의 과다한 사용도 방지하게 된다.

스트롬이라는 어휘가 독일어로 선형적인 힘의 증가를 뜻한다고 했던가. 확실히 1단부터 6단까지 모든 단수에서 어느 속도건 웬만큼 토크를 밀어붙여주는 것은 상당한 장기다. 이건 실력으로 만드는 세팅이다.


 자칫 재미없다던가 캐릭터가 없어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그건 한두 번 몇 시간 타봐서 판단할 수 없는 일이다. 라이더가 라이딩에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이런 투어링 바이크의 매력이며 장시간 라이딩에서 오는 피로감을 확연히 감소시켜 주는 목적이기도 하다.

21인치 프런트휠이 주는 압도적인 존재감과 실제로 압도적인 250kg의 무게, 더 압도적인 880mm의 시트노이는 우리네 평범한 아저씨들에게 꽤 버겁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것도 사람이 다 적응하게 되더라.


 무엇보다 시트가 높다 보니 일반 어드벤처 바이크보다도 시야가 더 넓고 높아 그간 못 보던 풍광을 별 노력 없이 유유히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굳이 스텝을 밟고 일어서지 않아도 스카이라운지에 앉아있는 것처럼 사방이 다 보인다.


장시간 신호를 안 받고 계속 주행한다면 시트가 높은 건 역시 장점으로 바뀐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 까치발 스킬은 우리의 몫이다.

이 바이크를 타고 산에 들어갈 마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냥 온로드에서만 타고 싶은 바이크다. 흙더미로 돌진하고 싶은 바이크는 따로 있다. 바로 800DE다. 이 바이크야말로 애초 설계부터 오프로더 기획이라, 알루미늄 트윈스파 프레임과 오버리터 V트윈 엔진을 얹은 1050DE와는 천지차이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1050 DE는 기함급 투어러로서 브랜드의 자존심이 서려있는 모델이다. 안락하고 쾌적한 장거리 투어링, 하지만 온로드에만 의지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담긴 1050 DE는 스즈키식 합리적인 어드벤처 투어링 바이크가 아닌가 싶다.

길바닥 시승기정도로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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