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전, 경제의 성장은 사회적 취향을 다양하게 만들고 소비자들의 요구를 까다롭게 만든다. 이에 맞춰 제품은 계속해서 바뀌고 발전한다. 시장에 나와 있는 제품들 대부분이 그렇게 어느 순간 옛 모습은 사라지고 때로는 완전히 다른 제품으로 뒤바뀌기도 하지만, 브랜드 속에 그 DNA를 남겨 세대를 만들고 그 종을 보존하며 진화한다. 제품의 생애는 유한하지만 브랜드는 불사의 생명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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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해방 정국과 갑작스러운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특히 고향을 등지고 남한으로 내려온 피난민에게 예전처럼 집에서 일일이 장을 담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장의 끼니가 궁한 마당에 메주를 띄우기는커녕 먹을 장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박규희 사장 또한 함경도에서 남으로 내려온 실향민으로서 이런 상황을 잘 이해했기에, 간장을 만들어 팔면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판되는 대부분의 간장이 일본상품이던 시절이라 그는 자신이 만든 간장에 ‘샘표간장’이라는 한글 이름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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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식품을 다루는 회사였지만 샘표식품은 마케팅 등에서는 굉장히 앞서 있었다. 주부사원의 고용도 그랬지만, 1954년에 고객정보를 기록해두고 전화 한 통으로 집에서 간장을 받을 수 있는 고객 카드 제도를 운영했다. 지금에야 당연하지만 당시로서는 고객정보를 기록해두고 고객관리와 주문, 배달 등에 활용하는 고객 카드 시스템은 시대를 한참 앞선 마케팅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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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치약과 페리오가 합쳐서 7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것에 비하면 비교적 짧은 기간에 대등한 브랜드 지위를 확보했다. 이런 배경에는 재미있는 숫자를 활용한 독특한 이름이 큰 역할을 했다. ‘2080이 뭐지?’ 하는 궁금증에 대해 “20개의 건강한 치아를 80세까지”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소비자에게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쉽게 전달하고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마케팅 관점에서 숫자를 활용하면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어서 왜 그 숫자인지를 잘 설명해주면 소비자에게 더 큰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애경산업의 덴탈클리닉2080은 이 측면에서 브랜드 네임과 마케팅이 꽤 훌륭하게 조화를 이룬 경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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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관점에서는 ‘작더라도 내가 1등을 하는 영역’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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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삼석 회장은 1960년부터 광신화학공업을 세워 일본에서 문구류를 수입 판매하는 일을 했는데, 회사가 자리를 잡으면서 직접 관련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제품이 모나미물감이었고, 두 번째 제품이 왕자파스였다. 볼펜을 생산하게 되면서 직원들과 함께 이름을 정하고자 했는데, 당시 모나미물감이 인기가 좋으니 그대로 쓰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하지만 송 회장은 모나미 뒤에 무언가 덧붙이고 싶은 마음에 직원들과 함께 계속 이야기를 했는데, 이때 한 직원이 153으로 하자는 의견을 냈다. 그 의미를 물으니 “화투에서 갑오(9)가 최고인데 이 9를 만드는 숫자 중에 1,3,5가 있고, 135는 발음이 어려우니 153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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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는 원래 영역에서 계속해서 더 좋은 품질과 차별점을 제공하고 좋은 이미지를 쌓아가며 변화하는 소비자 감성과 사회 트렌드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바뀌어야 하지만 바뀌지 않아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처한 것이 브랜드의 현실이기도 하다(익숙하면서 새로운 브랜드가 제일 좋은 브랜딩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브랜딩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고,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