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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문장] 천년의 독서

by 아르노


책에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텅 빈 책장에 한 권 한 권 책을 꽂으면서, 서가 앞에서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깨닫게 된 사실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아무리 부족함 없는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대피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책은 한계에 부딪히고 벽을 만난 사람에게 반드시 새로운 문을 열어준다는 것입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독서에 대하여On Books and Reading》에서 오히려 “독서란 자신의 머리가 아니라 남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책을 읽으면 다른 사람의 생각이 계속해서 흘러들어온다. (중략) 자신의 머리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손해일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유감이지만 맞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책을 읽는 동안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게 됩니다. 그렇게 독서력이 쌓이며 자신만의 지도를 그리고 조금씩 넓혀가게 되지요.


카리에르의 말처럼 걸작은 처음부터 걸작이 아니라 널리 읽힘으로써 걸작이 됩니다. 과거에 창작된 작품은 탄생된 그때보다 오늘날 더 풍부해지고 그윽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작품이 탄생된 시대부터 지금까지 방대한 독자의 독서가 켜켜이 쌓이고 흡수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수감자에게 ‘지금까지 읽은 책 중 가장 좋아하는 책’을 묻는 부분입니다. 캐나다 출신의 한 수감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특정 책이 좋았다기보다는, 책을 한 권 읽을 때마다 내 안의 창문이 열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떤 책을 읽든 저마다 힘든 상황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읽고 나면 제 인생이 더 명확하게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모든 책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고, 인생을 바라보는 법까지 알려주었습니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서가는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를 고스란히 반영하지요.


상상력이 약해지면 공감력도 약해집니다. 브래디 미카코가 가르쳐준 것처럼 엠퍼시가 배우고 익힐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더라도, ‘당연함’이라는 필터로 세상을 바라보면 상상력의 우산을 펼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가능성 앞에 놓입니다. 그리고 그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원래 학문은 ‘기초 교양liberal arts’이라고 불리며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자 탄생했습니다. 극작가 고카미 쇼지의 《‘눈치’를 읽어도 따르지 않는다‘空氣’ を讀んでも從わない》(2019)에는, 한 아이가 부모에게 “왜 공부해야 돼?”라고 물었을 때 그 부모가 들려준 아름다운 답변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부모에게 묻자, 컵을 가리키며 “국어라면 ‘투명한 컵에 들어 있는 탁한 차’, 수학이라면 ‘200밀리리터 컵에 절반 이하 남아 있는 차’, 사회라면 ‘중국산 컵에 들어 있는 시즈오카산 차’ 등 하나의 사물을 여러 관점으로 볼 수 있어. 다양한 시점이나 가치관은 마음을 자유롭게 하지”라고 답변했다.

우리는 배움으로써 타인의 관점을 획득하여 조금씩 상상력의 우산을 펼쳐나갈 수 있습니다.


영국 과학자 대니얼 월퍼트Daniel Wolpert의 질문 ‘왜 우리에게는 뇌가 있을까?’를 소개합니다. 이 질문을 읽으며 나는 ‘생각하기 위해서’라는 답을 떠올렸는데, 정답은 “우리가 뇌를 가진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상황에 맞는 복잡한 움직임을 위해서다. 다른 이유는 없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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