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도 온전히 자기 머릿속에서 어떤 영향도 받지 않고 창의성이 생기지는 않아요.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창의성이라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가, 누구의 영향을 받는가, 누구의 책을 보는가, 어떤 경험을 쌓는가에 따라 길러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단순히 결과물만 보고 “저 사람은 천재야. 정말 창의적이야.”라고 말하기보다 ‘우리 모두가 스쳐 지나간 일에서 저 사람은 어떻게 저걸 발견하고 해석했을까’에 중점을 두어야 해요.
최근 들어 과학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이미지, 비주얼리제이션(visualization)이에요. 예를 들어 논문을 쓸 때도 실험에 대해 글로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핵심을 요약해 한 장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그들은 ‘어떻게 쌓을 것인가?’에 대해 아무런 계획 없이 출발합니다. 일단 실행에 옮기고 보는 거죠. 작은 탑을 하나 쌓으면, “이거 너무 낮은데,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무너뜨리고 이렇게 해볼까?”라고 하면서 좀 전보다 조금 더 높은 탑을 쌓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거 너무 낮은데, 시간 남으니까 또 해볼까?”라는 식으로, 계속 성공하면서 조금씩 더 높은 탑을 쌓는 데 이른다는 거죠. 그래서 실제로 성공 확률도 아이들이 더 높고요. 그 덕분에 탑의 높이도 아이들이 쌓은 것이 훨씬 더 높다는 겁니다. 우리 모두는 스파게티 면과 접착테이프, 실을 가지고 마시멜로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탑을 쌓아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 시도하는 일에 좋은 계획을 세울 수 없습니다. 경험이 별로 없는 이들이 계획을 세워봤자 잘못될 가능성이 높죠. 게다가 계획을 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면 다시 회복할 기회도 없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생들은 대체로 좋지 않은 실적을 보이죠.
처음 해보는 일은 계획할 수 없습니다. 혁신은 계획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혁신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중요한 건 계획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는 한 발자국 떨어져 문제를 볼 필요가 있고, 실패하더라도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무조건 성공해야 하고 가장 높은 탑을 쌓아야만 한다면 시야가 좁아져서 ‘과제 집착형’으로 다가가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여지없는 실패를 만들어낸다는 의미겠지요.
사회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매우 성실히 모은다는 겁니다. 가만히 있으면 알게 되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쌓아놓는 게 아니라, 꼭 필요한 정보들을 적극적으로 모은다는 거예요. 그래야 가장 적절한 시기에 의사결정을 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내 의사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면, 혹은 새로운 정보가 추가로 들어오거나 상황이 바뀌게 되면 의사결정을 조정한다는 겁니다. 때로는 바꾸고, 심지어 번복합니다. 이게 성공한 사람들의 의사결정법이라는 거예요.
나이가 들수록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이 떨어집니다. 인지적 유연성이란 상황이 바뀌었을 때 자신의 전략을 바꾸는 능력을 말하는데, 그걸 잘 못하게 돼요. 의사결정이 빨라졌으니까 잘못될 가능성은 조금 더 높아졌을 텐데, 고집스럽게 안 바꾸니까 자신의 성공사례에 오히려 발목이 잡혀 결국 실패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거죠.
내 의사결정에 대해서 확신하지 않고 끊임없이 회의하고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 그렇다고 우유부단해서 결정을 못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때가 되면 의사결정을 하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는 사람, 유치원생들처럼 끊임없는 실행을 통해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하되, 다양한 시도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혹시 도시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으세요?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그래서 미친 듯이 돌아다녔더니 그 도시를 잘 알게 되는. 저에게는 바로 그게 인생의 큰 경험이었어요. 우리는 평소 길을 잃어본 경험이 별로 없죠. 길을 잃어본 순간, 우리는 세상에 대한 지도를 얻게 됩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방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세상에 나온 우리는 적극적으로 방황하는 기술을 배워서 자기 나름대로 머릿속에 지도를 그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실패하더라도 수많은 시도를 해보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귀찮게 하고, 직접 가서 여행하고,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면서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전체적인 지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해요.
지도를 그리는 빠른 방법이란 없습니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시간만이 온전한 지도를 만들어줍니다.
인생을 마라토너가 아니라 탐험가의 마음으로 살아가시길 기대합니다.
실패를 통해 조금씩 나아지는 기쁨을 아는 사람은 성장하지만,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안 하는 사람은 성장 자체가 어렵습니다.
세상은 점점 예측 불가능하고 인생은 늘 불확실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따라서 잘하는 것에만 매달리는 사람보다는, 그리고 실패의 두려움이 큰 사람보다는 실패 후에 빨리 회복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는 게 더 현명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가 가진 집중력의 크기는 한정돼 있는데 그 대부분을 결핍된 것에 쏟게 되면, 다른 것에는 제대로 집중을 못해서 성취도가 낮다는 거지요.
질문은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좋은 질문은 그 자체로 커다란 대답이기도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죠.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어제 얻은 지식, 사고방식, 생각, 고정관념, 습관을 오늘의 문제에도, 내일의 문제에도 계속 적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을 ‘지식 활용(exploitation)’이라고 부릅니다.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오늘의 문제에 적용하면 예측 가능한 안정적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조직에서 선호하는 전략입니다. 여러분도 그럴 겁니다. 회사 내에서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전임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고 전임자들이 했던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지식 활용 전략이 중요한 겁니다. 반면에 내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이 뭔지를 살펴본 다음에, 그중에서 제일 좋은 결과를 내겠다 싶은 것을 찾아서 선택하는 방법을 ‘방법 탐색(exploration)’이라고 부릅니다. 한 번도 직접 해보지 않았으니 실패할 가능성이 있겠죠. 그렇지만 문제를 굉장히 잘 해결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측 가능한 성공이 보장된 건 아니지만, 우리가 혁신을 이루는 건 방법 탐색 과정 덕분입니다.
인생의 목표가 성공이 아니라 성숙이라면,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습관은 안락하고, 포근하고, 안전하게 우리의 삶을 여기까지 끌고 왔지만, 새로고침이 주는 뜻밖의 재미, 유쾌한 즐거움은 여러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겁니다.
미신과 징크스는 미래를 통제하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되지만, 미래를 통제하는 것이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은 알 수 없기에, 미래는 예측할 수 없기에 흥미진진한 그리고 견딜 만한 탐험인 것입니다.
하나의 사건, 경험, 일화를 곧바로 증거라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우연의 일치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됩니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명확히 확인해야 합니다. 사회현상에는 굉장히 많은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며,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게 운행되지 않으니까요. 대표적인 회의주의자 중 한 사람이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이 미국 캘리포니아 사우스 패서디나에 위치한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Caltech)에서 했던 강연의 한 대목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글입니다.
"상충하는 두 가지 욕구 사이에 절묘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앞에 놓인 모든 가설들을 지극히 회의적으로 면밀히 검토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생각에도 크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뭐든지 의심하기만 한다면, 어떤 새로운 생각도 보듬지 못할 것입니다.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비상식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괴팍한 노인네가 될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귀가 가볍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마음을 열면, 그래서 회의적인 감각을 터럭만큼도 갖추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가치 있는 생각과 가치 없는 생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모든 생각들이 똑같이 타당하다면 여러분은 길을 잃고 말 것입니다. 결국 어떤 생각도 타당성을 갖지 못할 것이겠기에 말입니다."
- 칼 세이건, ‘회의주의가 짊어진 부담’, 패서디나 강연, 1987
(과학자는 이 두 가지 태도를 모두 지녀야 합니다.)
창의성은 전전두엽 같은 가장 고등한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기능이 아니라, 뇌 전체를 두루 사용해야 만들어지는 능력이라는 겁니다.
여러분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그런 발상의 기회를 가지세요. 그리고 그것들을 다른 곳에 가서 흉내 내세요. 결과물이 아니라 사고방식을 흉내 내세요. 똑같이 따라 하진 마시고 꾸준히 변형하세요. 그것이 창의적인 발상의 출발입니다.
미래의 기회는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를 통해 학습하려는 자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겠죠. 아마 저 같은 학자들은 많이들 그럴 겁니다. 현실에 발을 딛기보다는 우리가 ‘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렇지만 결국은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혁명을 만듭니다. 체 게바라가 말한 것처럼, 사과는 그냥 떨어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사과나무를 흔들어서 떨어뜨리는 거죠. 상상을 현실로 만들려고 하는 의지, 노력, 능력 이런 것들이 결국 혁명을 이루어냅니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드는 혁신가는 늘 직면할 수밖에 없는 ‘위험’이라는 녀석을 잘 관리하는 능력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것을 너무 만만하게 보아서도, 무모하게 돌진해서도 안 된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