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글을 쓰려면 일단 좋은 글과 자료를 많이, 제대로 읽어야 한다.
읽은 내용을 똑같이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나의 문장으로 ‘정리’할 때 비로소 글 쓰는 힘이 내게서 생겨 자라난다.
듣기와 읽기는 끊임없이 생각하며 재단하는 과정이다.
읽기는 자동차의 기어를 바꾸듯 해야 한다. 상황에 맞게 속도와 수준을 조절해야 한다는 뜻이다. 똑같은 작업을 지루하게 반복하는 ‘모노톤monotone’만큼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도 없다.
읽기와 쓰기는 습관처럼 몸에 배어야 한다. 마라톤 선수는 매일 운동을 통해 조금씩 지구력을 키우고 근육의 무게도 늘려나간다. 읽기와 쓰기도 그렇다.
책을 고르고 독서 기록을 남기기에 앞서, “나에게는 어떤 책이 필요할까?”, “독서 기록을 통해서 내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마음에 오래 담고 생각하며 깊은 뜻을 풀어내는 과정은 지적 능력을 한 뼘 더 키워놓는다. 고전 읽기에서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이유다.
독서 기록 쓰기는 독자에서 작가로 거듭나는 출발점이다. 책의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다음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 이 책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 저자는 무슨 근거를 들어 설득을 펼치고 있는가?
• 나는 왜 감동을 받았는가?
•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구절은 무엇인가?
• 이 책은 우리 사회에 어떤 의의가 있을까?
독서 기록은 단순한 ‘축약’이 아니다. 위의 물음에 맞추어 책의 내용을 완전히 뜯어고쳐서 나의 글로 만드는 과정이다.
은근과 끈기가 필요한 일에는 철저한 계획과 관리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읽기와 쓰기는 같이 가는 활동이다.
화가는 작품을 그리기에 앞서 숱하게 밑그림을 그린다. 기자는 사건을 모으고 추려내고 또 모으기를 반복한다. 독서 기록을 남기는 일도 비슷하다. 훌륭한 서평가는 책의 고갱이를 확실하게 짚어준다. 책에 대해 적절한 비판을 던질뿐더러, 더 깊이 생각할 거리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능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수없이 밑줄 긋고, 문구를 중얼대며 궁싯거리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독서 흔적은 어느덧 리라이팅으로, 리라이팅은 나의 생각을 담은 한 편의 독서 기록으로 발전하게 된다. 공들이지 않고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독서 기록도 그렇다.
조각 독서는 수십 번, 수백 번에 걸쳐 책을 나누어 읽는 것이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앞의 내용을 다시 떠올리고 정리해야 한다. 이해의 기본은 곱씹기다. 조각 독서는 독자가 책에 깊게 다가가게 만든다. 책장을 펼칠 때마다 앞서 읽은 내용을 계속 떠올리며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밑줄 긋는 작업은 그 자체로 요약 능력을 키우는 훈련이기도 하다. 글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꿰뚫어야 밑줄도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훌륭한 독서가일수록 밑줄도 제대로 긋는다.
거미가 만드는 실은 아주 가늘다. 거미는 이 실로 매미도 잡을 만큼 튼실한 거미집을 만든다. 자료를 찾는 일도 다르지 않다. 내가 찾는 모든 자료가 정답처럼 한 권의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경우는 없다.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바지런히 모으다 보면, 어느새 ‘경탄할 만한 콘텐츠의 거미집’이 완성될 것이다. 필요한 정보를 캐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어떤 책을 읽고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 가닥을 잡을 수 있다.
읽은 내용을 자기 문장으로 정리하는 단계에 이르면 과제 해결은 어느덧 눈에 들어온다.
주제를 잡기 위해 자료를 읽을 때 독서량은 훨씬 많아진다. 숲속에서 산책할 때보다 짐승의 발자국을 좇을 때 더 열심히 걷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자료를 찾기 위한 독서는 박람강기博覽强記(여러 가지 책을 읽고 기억을 잘한다는 뜻)에도 도움을 준다.
독자 입장에서 글을 쓰는 자세도 중요하다. 정재승은 마음에 차는 책이 없으면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직접 썼다. 그의 글이 독자들의 흥미를 잡아당기는 비결은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에 있다. 역사 저술가 이덕일 또한 “책도 상품인데, 아이스크림을 겨울에 팔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너스레를 떤다. 시기에 맞추어 독자의 흥미를 끌 만한 소재를 찾아 책을 낸다는 뜻이다. 신라의 승려 원효 대사는 표주박을 차고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에게 불법佛法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깊고도 정교한 책들을 썼다. 현대의 저술가도 원효 같은 사람들이다. 대중을 향해서는 쉬운 글을 쓰고, 그 자신은 학문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한다. 우리 문화의 수준은 이들의 활약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취재하듯’ 책을 읽었다면 자연스레 다음과 같은 자료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 첫째, 책 전체를 담은 4~5줄 정도의 요약 글
• 둘째, 흥미로운 내용이나 감명 깊은 부분을 담은 메모 십수 개
• 셋째, 책에 대한 자신의 평가와 의견을 담은 메모 이 셋은 독서 기록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