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렸습니다 3

by 아르노

‘이렇게 회사 다니면서 살다가 끝나겠는데?’

예전과 같이 회사-집을 반복하며 산지 한두 달째였나

우연히 회사 동기들과 밥을 먹는데, 한 동기가 직장인 동아리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에 사진 동아리랑 보드게임 동아리를 들었는데 너무 재미난다는 것이다.

“직장인들만 모이는 동아리가 있었어?”

아예 몰랐던 직장인 동아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친구가 대답했다.

“당연하지. 별 동아리가 다 있어!”


동기들과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봤다. 정말 별 것이 다 있었다.

보드게임부터 마술, 와인 등등 쭉 훑어보고 있는데, 미술 동아리가 문득 보였다.

예전에 여행을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길에서 보고 ‘오 멋있다.’ 생각했었는데, 한번 해보고 싶어 졌다.

그래서 가입까지 했다.

(가만 보면 예전의 사소한 기억들이 나중에 행동으로 이어지고 어떠한 결과까지 만들었다.)


가입 후, 몇 시간 뒤 바로 메일이 왔다.

가입을 환영하고 매주 수요일마다 수업이 있으니 오라는 내용이었다.

마침 다음 주 수요일에 할 것도 없고 직장 근처라 가봤다.

선생님 두 분과 여러 명의 수강생들이 있었다. 나름 체계적인 시스템이 구축되어 동아리가 돌아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왔습니다.”

선생님이 대답했다.

“아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저는 선생님 000이고요 저기는 보조 선생님 000입니다. 처음에는 선 그리기를 해요~”

선생님은 빠른 소개와 함께 커리큘럼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셨다.


처음에는 선 그리기 연습.

연필이라는 재료를 이해하기 위해 아주 약한 선부터 강한 선까지 100개도 넘은 선을 쭉쭉 그리고, 이번엔 연필로 명암을 표현하기 위해 11개로 나누어진 넓은 칸을 색으로 0~10까지 강도로 칠하라 했다.

답답했다. 이러다 이것도 곧 그만둘 것 같아서 다음번에 갈 때는 그냥 내 멋대로 그림을 그렸다.

여태 정해진 과정대로 살아왔는데, 즐기러 온 그림 동아리에서까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화실의 공용 재료로 마구잡이 그림을 그렸다.

공용 물감통에서 그날 마음에 드는 색의 물감을 꺼내 이리저리 뿌리기도 하고 칠하기도 했다.

동아리의 잭슨 폴록이 바로 나였다.

그런 나를 보고 착하신 선생님은 나만의 스타일이 있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칭찬을 들어서인지, 과감한 붓칠에 스트레스가 날아가서인지 그림에 슬슬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매주 동아리 가는 날이 기다려졌다.


가는 날마다 마음에 드는 색의 물감을 쭉 짜고 추상화를 그렸다. 구체적인 형태가 없기에 내가 아무렇게나 그려도 느낌 있다고 칭찬받았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그렇게 보였다. 보통 추상 쪽은 작가들의 커리어 끝에 있는 최종 보스인데 난 거꾸로 했다.

형태가 잡혀있는 그림들에선 나의 모자란 그림 실력이 티가 났기 때문이다.


추가로 그림에 더욱더 자신감을 느끼기 위해 나만의 스타일대로 그린 추상화들을 액자에 넣었다.

액자에 넣어 집들이 때 선물하거나 우리 집 벽에 걸었다.

그렇게 나 스스로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어떤 걸 그린 건지는 내가 의미 부여해 설명하였지만, 정작 받는 그림을 보는 사람은 공감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어떨 때는 그림을 보여주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냐, 어떤 걸 그린 것 같냐 물어보고, 대답하는 사람의 대답에 따라 “맞아!”하고 내가 그린 주제를 바꾸어 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은 내 멋대로 물감을 쓰고 내 멋대로 그림을 그렸다

한 2개월 동안은 하루에 한 개 이상은 그렸던 것 같다.

대학 때 컴퓨터 공학을 공부한 공대생은 퇴근 후에 스스로 작가라고 부르며 추상화를 그렸었다.


[그때 당시 그린 추상화들이 액자에 담긴 모습]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냥 그렸습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