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렸습니다 2

by 아르노

사실 매일이 “같은” 일상과 경험으로 채워졌던 것이 나에겐 처음이었다.

초, 중, 고 시절은 뭐가 뭔지 몰랐던 시절이었고 대학 시절은 늘 새로웠다.

고정된 시간표는 있었지만 지키지 않으면 그만이었고, 늘 새로운 이벤트가 발생했다.

“야 00대 00 과랑 미팅 가자”

“00형이 술 먹재”

“아 교수님이 그룹 스터디하고 발표하래”

“야 공모전 새로운 것 떴다! 해보자”

등등.

그 당시 안산에 위치한 집에서 통학했는데, 이동하는 시간대도 달라서 버스 밖으로 보이는 풍경마저 달랐다.

이외에도 같이 밥을 먹는 친구들, 밥을 먹는 시간, 장소,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식 등 사소한 것마저 하루하루가 달랐다.


대학생 때는 무엇이든 하면서 적극적으로 살았는데, 입사하고 일에 적응을 한 시점에서는 더는 적극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회사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딱히 특별할 것도 없던 날이었으며, 오히려 늦게 일어나 기분 나쁘게 시작한 날이었다.

회사 10부제에 걸려 차를 두고 버스로 출근을 했다.

이런 날이면 아주 귀찮았다. 날마다 차로 편하게 출퇴근을 했지만, 불편하게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가는 길은 다르지만 어쨌든 회사로 가는, 정류장으로 먼저 오는 버스를 탔다.

회사로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이 달랐지만, 그때 당시 나에겐 그저 귀찮은 풍경이었고, 그 시간은 의미 없을 뿐이었다.


그 날은 출근 후에 유독 정신이 없었다.

여러 이슈가 많아 바쁘게 해결하고 6시쯤 퇴근 버스에 올라탔다. 일은 많이 남아있었는데, 저녁을 먹기도 전에 퇴근하고 싶었다.

‘하 내일 하자.’

일하고 있는 파트 사람들에게 인사 없이 서둘러 나오려고 하는데 뒷자리 선배랑 눈이 마주쳤다. 살짝 웃으며 고개만 숙여 인사 후, 퇴근하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각자 하는 일이 다르기에 당장 도와드릴 수도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선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을 뒤로하고 바로 퇴근 버스를 타고 상록수역에 도착했다. 아파트로 가는 마을버스가 있었는데, 그날따라 그냥 걷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동네 서점을 발견하고 무작정 들어가 아무 책이나 집어 들었다. 평소에 책에 관심도 없던 내가 말이다.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도 직장인의 삶 관련된 책이었던 것 같다.

이 모든 일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 게 아니라 정말 자연스레 물 흐르듯이 이루어졌다.


‘인생의 재미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퇴근 후에 어느 책에서 본 한 문장이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

글쓴이가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정확히 표적화해 던진 말 같았다. 이전에도 비슷한 문장을 들은 것 같은데, 이날만큼은 나에게 다가오는 힘이 달랐다.

비록 그 책은 사지 않았지만 그 문장을 읊조리며 집으로 왔다.

걸어오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래, 퇴근 후에 뭐라도 해보자.’


그러고 나서 해볼 만한 여러 아이템을 찾고 시도해보았다. 호기심이 다시금 생긴 것이다.

뭘 해볼까 하다가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 사진이었다.

예전에 학부 과제를 하며 사두었던 여러 사진집들이 얼마 전부터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인물의 느낌과 감정을 담아내는 사진작가가 되어보는 거야.’

평소 순간의 찰나를 기록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기에 쉽게 시작할 수 있던 분야였다. 물론 그때는 사진에 대한 사전 지식은 전혀 없었다.


일단은 사진기가 필요했다.

중고나라에서 적당한 수준의 DSLR 카메라를 구입하고 복잡한 조작법을 배우기 위해 이주 동안 진행하는 사진 수업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정확히 한 달 뒤에 다 때려치웠다.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바빠지기도 했었고, 사실 호기심이 해결되니 흥미가 떨어진 것도 있었다.

사진을 모르는 내가 봐도 그때 찍었던 사진들은 아무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감정이 담긴 사진을 찍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그때 알았다.

더해서 사진 찍는 행위 자체가 재미가 없었다.


두 번째는 운동이었다. 옆자리에서 일하는 선배가 몸이 점점 좋아지는 게 보였다.

긍정적인 태도, 밝은 표정 다 그 건강한 몸에서 나온다고 본인 입으로 말하고 다니던 그 선배.

그 선배가 운동하라고 먼저 나에게 제안을 했다. 일상에 지쳐있던 내 상태가 얼굴에 다 드러났었나 보다.

그때 선배가 하는 웨이트는 너무 재미없을 것 같았고, 어떤 다른 운동을 할까 생각하다가 아파트 앞에 생긴 크로스핏장이 생각나 무작정 크로스핏을 3달 등록했다.

알고 보니 크로스핏이라는 운동은 초보자가 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운동이었다. 발목의 부상과 함께 두 달 만에 그만두었다.

그렇게 두 번째 시도 역시 실패 아닌 실패로 끝이 났다. 발목이 나으면 다시 다녀야 한다는 생각도 서서히 시간이 지나며 없어진 것 같다.

“다 나으면 돌아와~”라는 크로스핏 관장님의 말이 아직 아련하게 떠오른다.


아마 그 이후로 한동안 쉬었던 것 같다.

‘이만큼이라도 찾으려 했으니 잘했다.’

새로운 것을 찾는 나의 호기심은 두 번의 실패 아닌 실패를 통해 사그라졌다. 그렇게 다시 쳇바퀴 속으로 몸을 구기며 들어갔다.


그 이후, 한 달 정도 긴급 프로젝트 업무로 바쁘다가 다시 한가해졌고 그제야 마음 한쪽에 묻어놨던 호기심이 다시 머리를 내밀었다.

‘퇴근 후에 뭐해볼까?’


이번에는 새로운 만남에 관심이 생겼다.

이번에는 누구를 ‘만나다’로 관심이 바뀌게 된 것이다.

그때 마침 같은 같은 팀 동료가 나가는 소셜 클럽을 따라나섰다. 독서를 하기도 하고 맛집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매주 모임의 내용이 달랐다. 재미났다.

각자의 직업도 매우 다양했으며 살아온 환경도 달라 보였다. 무언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각자 다른 시각으로 대화에 참여했다. 모든 게 재미났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관심이 생겼고 즐겼다.

술, 맛있는 음식, 중구난방의 이야기들 그리고 다시 술.

그러다가 세 번째 모임이었나.

그때 당시 모임의 장과 한 모임 원이 크게 싸우고 나가게 되어 결국 모임도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나는 모임이 없어질 만큼 심각한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세 번째 관심사는 사라져 버렸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다양한 의견이 있었고, 가볍게 만난 사이이기에 싸움의 당사자들도 굳이 화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러 경험을 통해서 역시나 이 나이 대, 이 환경에는 새로운 것은 없다고, 결국 나를 채워주는 건 없다고 결론짓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회사와 집을 왔다 갔다 하며 주말엔 쉬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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