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되겠지>

by 아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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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가볍게 읽으려고 산 에세이인데, 묵직한 문장들이 많아서 놀랐다.


'재능'이란 누군가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에 대한 배려 없이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운 다음에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 버티다 보면 재능도 생기고 뭐라도 되겠지.

극히 공감한 문장이다. 나 역시 그림이 나의 재능과 건강한 취미가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었다. 4년 전 그림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졸라맨을 그리며 킥킥대었는데 어느새 유튜브까지 운영하며 강의를 하고 있다. 본인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꾸준히 하며 버티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아직도 나는 버티는 중이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대학 시절 캠퍼스에서 지나가는 학생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던 시간, 정신줄을 놓은 채 목숨 걸고 놀던 시간, 그 완벽한 진공의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스무 살이라는 나이는 너무 심심해서 쉽게 상하기 때문에 가끔은 진공 포장하여 외부의 대기로부터 격리해주어야 한다. 20년이 지났지만, 그때 진공 포장해둔 나의 뇌 일부분은 아주 심심하다.

'아 과거에 그거 하지 말걸'이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는데, 이 문장을 보고서는 그런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나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경험이다. 예를 들면 비트코인 투자로 5천 정도 날렸을 때에, 굉장히 후회를 많이 했다. 하지만 그 경험을 계기로 경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고 진행 중이다.

물론 지금 시세를 보면 그냥 가지고 있는 게 나았겠지만 나는 다 필요했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휴


내 모든 감각을 열어 세상을 관찰한 다음, 맨 마지막 순간에 사진으로 그것을 기록한다면, 나의 감각은 더욱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카메라에게 그 주도권을 빼앗기지만 않는다면 나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아름다움을 내 속에 저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장을 포함하여 여러 가르침을 통해 나는 무얼 보든지 간에 눈에 충분히 담고 카메라를 꺼낸다. 그래서 멋있는 순간을 놓친 적도 많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모든 위대한 사건은 스티커처럼 작은 공간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지금 내로라하는 기업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완벽한 계획으로 시도하지도 않았다.

내 친구 중에 한 명은 완벽히 계획하고 시작하는 스타일이다. 4개월 전 같이 유튜브를 시작하자고 했었는데, 그 친구는 아직도 계획 중이다. 벌써 20화까지 찍어놓을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한다.

업무 방식 중에 에자일 방식이 있는데, 일단 시작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수정하면서 일을 진행해나가는 방식이다. 이런 업무 방식이 각광을 받고 있는 요즘 나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모든 일을 진행하고 있다. 시도한 방식이 나한테 맞으면 더 파보고, 아니면 과감히 다른 방식으로 시도해본다.

예를 들면 러닝화를 사기 전에 그냥 가지고 있는 운동화로 뛰러 나가고 이런 거다. 그냥 해보고, 생각한다.


예술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예술을 배운다는 것은 더 많은 질문을 배우는 것이다. 예술을 가르친다는 것은 세상에 더 많은 질문이 생기도록 돕는 일이다.

어릴 때에 그래서 예술을 더 잘 알고 했나 보다.

피카소가 그랬다. "아이들처럼 그리는데 평생이 걸렸다."


나와 네가 손을 잡아 동그란 원을 만들어버리면 다른 사람은 절대 들어올 수 없는 울이 되고 만다. 그곳에 갇히는 순간 우리는 무서워진다.

회사일을 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있다.

박 차장 : "야 김 과장 이거 맞지?"

김 과장 : "네 맞습니다. 아르노님, 잘못 아신 것 같아요."

이 일을 몇 년간 진행하여 정확히 알고 있는 내 앞에서 나누는 대화이다.

수정하려고 하면 박 차장은 언성을 높이곤 한다. 난 그럼 그냥 바라보고 있는다.

애써 수정해주려고 해 봤자 그들은 듣지 않으니. 결국 나중에 결재를 다시 올리고, 재보고를 하게 된다.

이런 상황들을 보며 나는 앞으로 돼야 할 회사 동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간다.

'손을 잡고 동그란 원을 만들더라도 들어올 틈을 만들어놔야지'


결국 삶이란 선택하고 실패하고, 또 다른 걸 선택하고 다시 실패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를 빨리 인정하고 원점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유연성이다. 실패가 별 게 아니란 걸 깨닫고 훌훌 털어버릴 수 있으려면 실패에 익숙해야 한다.

어릴 적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지면 그냥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달리는 친구가 있었고,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울어버리는 친구가 있었다.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달린 친구들은 어느새 친구들 사이에서 다음 과제를 준비하고 있었고, 앉아서 울어버리는 친구에겐 선생님이 달려가 달래주며 양호실로 데려갔다. 그 친구는 다음 과제가 무엇인지, 얼마나 재미났었는지 전혀 모른 채 양호실에 누워만 있었다.

그냥 그런 것 같다.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실패로부터의 아픔을 무디게 느낀다. 당연히 실패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실패인지 모를 결과물을 바통처럼 이어받아 다음 과제를 향해 냅다 달린다. 나중에 그 바통이 똥이건 금이건 간에 나는 다음으로 그냥 가는 거다. 가고 있는데 바통의 정체가 밝혀지면 알아챈 순간부터 또 다음 길을 정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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