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by 아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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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실 한쪽 방에는 싸구려 교재용 악기가 놓여있기도 했는데 아무도 시키지 않았으나 그 방으로 들어가 악기들을 하나씩 닦기도 했다. 아무도 시키지도 않는 일을 한다는 게 제법 나다운 일이란 걸 그때 알았다. 행복은 문지르고 문지르면 광채가 났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언가를 할 때에 '이게 나한테 도움이 될까?"부터 생각을 했다. 최대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운동, 독서, 공부만으로 하루를 가득 채웠으며 잠시 멍 때리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이 문장을 만났다. 나는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멍 때리며 그림을 끄적이는 걸 좋아했다. 그건 그냥 나다운 행동 중 하나였는데, '시간 낭비하지 말자'라고 생각하며 책을 폈었다. 그게 그냥 나다운 일이었는데 말이다. 이제는 나다운 모습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나는 물들기 쉬운 사람, 많은 색깔에 물들었으며 많은 색깔을 버리기도 했다. 내 것인 듯하며 껴안았고 내 것이 아닌걸 같아 지워 없애거나, 곧 다른 색으로 이사가 기도 했다.

이 문장을 읽고 나 역시 물들기 쉬운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남들이 좋다는 건 따라 했고, 주위 친구들에 많은 영향을 받았었다. 이런저런 색에 물도 들어봐야 내 이 무엇인지 알거라 생각했고, 지금은 내 색을 명확히 찾았다고 생각한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가로등은 그림자를 만들기 시작하고, 그림자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사람들은 이야기를 만든다.

표현이 너무 멋있어서 적어놓은 문장이다.


세상의 경계에 서보지 않는 나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가져다줄 게 없다.

어른들은 이야기한다. 고생을 해봐야 뭐라도 얻을 거라고, 이 말을 이렇게 세련되게 표현할 줄이야.


세상 끝 어딘가에 사랑이 있어 전속력으로 갔다가 사랑을 거두고 다시 세상의 끝으로 돌아오느라 더 이상 힘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 우리는 그것을 이별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하나에 모든 힘을 다 소진했을 때 그것을 또한 사랑이라 부른다.

이건 연애편지에서 한번 써먹을라고 적어두었다. "난 너에게 모든 힘을 다 소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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