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기게 노력하는 한 성공은 언제든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
1.
미술에서의 기량은 측정할 도리가 없으므로 이 227명의 미술가들이 급부상하리라고 예측할 수 있는 요인을 찾아내는 게 문제였다. 한 가지 요인이 있긴 했다. 그들은 쉬지 않고 집요하게 전시장을 찾아 헤맸다. 데이터를 보니 그들은 똑같은 화랑에서 되풀이해 전시하는 편안하고 쉬운 길을 거부했다. 그 대신 그물을 멀리 던져 다양한 장소에서 평판도 제각각인 기관들에서 작품을 전시했다. 우연인지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손을 뻗은 화랑들 중에는 미술 세계의 중심부로 가는 경로에 있는 중간 기착지인 화랑들이 있었다. 다시 말해 그들이 미술계에서 성공한 비결은 야심이 대단했고 열성적으로 전시관을 찾아 헤맸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몇몇 전시 공간에만 고집스럽게 매달리지 않고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샅샅이 훑었고 폭넓게 주어진 기회를 십분 활용했다.
2.
센과 나는 과학연구팀의 각 구성원이 밟은 이력을 추적하면서 발견의 ‘주인’이 누군지 정확히 짚어낼 수 있었는데, 그 주인공은 거의 항상 그 분야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자취를 남긴 학자였다.
3.
성공의 제1 공식, 성과가 성공을 견인하지만 성과가 측정 불가능할 때는 연결망이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 아인슈타인은 뛰어난 과학자로서 이미 입지를 다졌고, 애초에 기자들이 그를 인터뷰하려고 애쓴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애초에 그가 증기선에 오른 이유는 아인슈타인의 연결망, 과학계 바깥의 핵심적 중심축과의 연결 고리와 명분이었다. 그 연결망은 우리가 흔히 아인슈타인의 성공 사례에 대해 얘기할 때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성공의 제2 공식, 성과를 내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성공에는 한계가 없다. 우리가 아인슈타인을 떠받드는 만큼이나 떠받들어야 할, 물리학에 큰 영향을 미친 과학자는 아이작 뉴턴, 닐스 보어, 막스 플랑크, 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 등 여럿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집단적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아인슈타인의 무지막지한 존재감은 그가 낸 성과만으로는 정당화하기 힘들다. 그의 성공이 무한하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거리에서 아무나 붙들고 아인슈타인의 사진만 보여주면 증명된다.
성공의 제3 공식, 과거의 성공×적합성=미래의 성공. 우선적 애착과 적합성, 이 두 요인 모두 아인슈타인의 사연에서 역할을 했다. 기자들이 그를 표제기사로 다룸으로써 그의 명성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탁월한 물리학자라는 사실은 이 공식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성공의 제4 공식의 첫 부분, 즉 팀이 성공하려면 다양성과 균형이 필요하다는 부분은 아인슈타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는 대부분의 논문을 혼자서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4 공식의 나머지 부분은 분명히 적용된다. 논공행상은 성과가 아니라 인식으로 결정된다는 부분 말이다. 아인슈타인의 사례는 공이 엉뚱한 사람에게 돌아갔다는 데 기인한다. 시온주의자들을 환영한 군중이 아인슈타인을 환영하러 나왔다고 잘못 알려졌기 때문이지, 그가 그 명분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기껏해야 단역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비유대계 언론이 보기에 그는 대표단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고 표제기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성공의 제5 공식에 따르면, 끈질기게 노력하는 한 성공은 언제든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 아인슈타인이 말년에 쓴 양자얽힘에 관한 논문 기억하는가? 그 논문은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같은 대발견을 한 기적의 해 1905년에 쓴 다섯 편의 논문을 능가했고, 결국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이 되었다. 그는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논문을 썼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말이다. 그와 같은 끈기와 높은 Q-요인이 만나면 어디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를 그는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