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문장] 평소의 발견

by 아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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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주위의 좋은 아트디렉터들은 평소의 자극들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1.

평소의 관찰, 평소의 독서, 평소의 음악, 평소의 여가.

틈틈이 나를 채울 수 있다면, 생각의 재료들을 쌓아둘 수 있다면, 고통스럽게 내 밑바닥을 보는 일은 줄어듭니다.


2.

톨스토이는 소설 '전쟁과 평화'를 쓰고 나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가장 감독적인 글은 필자가 말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당시의 상황을 보여줄 때 나온다."

저는 어딘가에서 이 문장을 읽은 후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했어요. 곱씹어 볼수록 맞는 말이더군요. 설명이 길다고 꼭 아름다운 문장, 힘 있는 문장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살면서 만나는 감정의 민낯들이 꾸며낸 어떤 표정보다 강력한 것처럼. 문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질적으로 좋은 생각이 담긴 글은 수식어가 없는 편이 나았습니다.


3.

제 주위의 좋은 아트디렉터들은 평소의 자극들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놀이처럼 전시회를 가고, 핀터레스트 같은 사이트에 틈틈이 들러 좋은 비주얼을 파일로 따로 저장해두고, 어딜 가든 카메라를 챙겨가고, 평소의 활용법도 다양합니다.


4.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은 것에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니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미식가란 맛있는 음식만 먹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음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엔 얼마나 많은 숨겨진 맛들이 우리의 발견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반대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상의 맛들을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나치고 있을까요?


5.

'없음'이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있음'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나 봅니다. 언젠가는 튜브에서 바람을 빼야 하는 여행지가, 늘 내게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겨주는 것처럼.


6.

우린 왜 없어야만 '있음'을 그리워하게 될까요? 요즘은 가끔 '없음'의 힘에 대해 생각합니다. 몇 년 전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 중 한 명이자 슬램덩크의 작가인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건축가 가우디에 대해 쓴 '페피타'라는 책에서 아주 인상적인 부분을 읽었습니다. 가우디는 어렸을 적 소아마비를 앓았다고 합니다. 다리가 불편하니 친구들이 뛰어놀 때 쪼그리고 앉아 주변의 식물이나 곤충들을 관찰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의 건축에서 자연을 모티프로 한 형태들이 자주 발견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는 해석이었어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가우디만의 곡선. 그 시작은 '결핍'이었던 거죠.

나에게 없는 것이, 내게 부족한 것이, 어쩌면 내게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간절함이 되고, 앞으로 나아갈 동력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때론, 결핍이 명백한 존재가 더 사랑스럽다는 생각도 합니다.


7.

좋은 재료는 좋은 요리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니 매일 요리를 내야 하는 셰프라면, 좋은 재료가 가득 찬 창고만큼 든든한 게 없겠죠. 생각이 직업인 누군가도 똑같을 겁니다. 수십 가지 발상법보다 건져 올린 생각의 재료들을 담아둔 창고가 더 위력적입니다. 그러니 별수 없죠. 평소에 창고를 꾸준히 채워두는 수밖에요. 예리하게 발견하고, 우직하게 모아두는 수밖에요. 제가 만나본 닮고 싶은 선배들, 멋진 후배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새롭고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의 빛나는 눈빛,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적든, 찍든 곧바로 SNS에 올리든, 방식을 가리지 않는 가차 없는 포획.


8.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섭렵하고, 견고히 하다, 시들해지고, 다시 불이 붙고, 그렇게 시간의 힘을 통해 다듬어야만 비로소 생기는 것이 안목이니까요.


9.

어린 나에게 지금의 내가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면, 이런 말을 해주고 싶군요.

"안녕, 걱정거리가 많지? 형이 진지하게 말하는데 걱정할 시간에 맛있는 걸 하나 더 먹으렴. 여행 많이 다니고, 사람도 많이 만나보고.

내가 걱정 좀 해봐서 아는데, 세상에 걱정처럼 쓸모없는 게 없더구나."


10.

멈추는 것은 손해가 아닙니다. 자동차 경주의 꽃이라는 F1 레이싱에서는 레이스 중간에 달궈진 엔진을 식히고 타이어를 교환하는 과정이 필수입니다. 그래야 50바퀴 이상의 장거리를 버틸 수 있다고 해요. 해야 할 일이 많을수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빼먹지 말아야겠습니다. 인생은 꽤 긴 레이스이니까요.


11.

인생엔 오직 시간을 투입하고 기다려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역을 불문하고, 지식을 습득하고 자신의 것으로 변환하는 데에는 절대적인 시간,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 거죠.


12.

몰두하는 이의 뒷모습은 멋집니다. 몰두의 시간은 분명 선물을 안겨줄 거예요. 그 몰두의 시작이, 남의 강요가 아니라 나로부터 시작된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의 결과라면, 당신이 보낸 몰입의 시간은 급하게 집어넣은 지식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에 당신을 닿게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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