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개척자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1.
“푸르고 미숙하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다. 성숙하는 순간 부패가 시작된다.”
2.
1948년 멀쩡히 잘 굴러가는 식당의 문을 닫고 얼마 후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식당을 개업했다. 서비스와 메뉴를 최소화한 이 식당은 이후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패스트푸드점의 모태가 되었다. 그들은 햄버거, 프렌치프라이, 음료를 공장의 조립라인 같은 방식으로 준비했는데 그 결과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로 큰 호응이 일었다. 절차가 단순했기 때문에 맥도널드 형제는 매 단계에서 품질에 더 주의를 기울일 수 있었다. 이것이 비결이었다.
3.
맥도널드 레스토랑은 같은 지역의 다른 레스토랑에 비해 구매력이 크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많지 않은 품목에 구매가 집중되어 있었다. 빵과 케첩, 머스터드는 다른 레스토랑보다 확실히 많은 양을 구매했다. 때문에 이런 품목의 시장에서는 유리한 입지에 있었다. 우리는 공급업체가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서 입지를 더욱 강화했고 이런 방식은 당연히 맥도널드의 구매 단가를 낮추었다. 대용량 포장도, 한 번에 더 많은 품목을 배달하게끔 한 것도 그런 방법 중 하나였다.
4.
사업은 그림과 달라서, 마지막으로 붓을 놀리고 벽에 걸어놓은 뒤 감상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맥도널드 본사에는 이런 슬로건이 붙어 있다.
“성공처럼 빨리 사그라지는 것은 없다. 당신과 우리에게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
5.
우리 메뉴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다 보여주기는 어렵지만 필레오피시, 빅맥, 핫애플파이, 에그 맥머핀 등 새로 추가된 메뉴들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은 모두들 인정할 것이다. 이 메뉴들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모두 우리 가맹점주로부터 태어나서 발전된 아이디어라는 것이다. 회사는 자영업자들의 독창성 덕분에 도움을 받고, 그들은 우리 시스템 전체가 힘을 합쳐 만든 광고의 영향력에서 혜택을 얻는다. 자본주의가 완벽하게 작동하는 예로서 부족함이 없지 않은가. 모든 새로운 아이템의 촉매는 경쟁이었다. 루이스 그로언은 신시내티의 가톨릭 교구에서 빅보이 체인과 맞서기 위해 필레오피시를 생각해냈다. 빅맥은 버거킹을 비롯한 다양한 전문점 메뉴와 경쟁하기 위해 큰 샌드위치를 고안한 결과물이었다. 빅맥이라는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것은 피츠버그의 운영자 짐 델리게티(Jim Delligatti)였다. 코네티컷 엔필드(Enfield)의 가맹점주 해럴드 로젠(Harold Rosen)은 세인트패트릭 데이를 기념하는 특별한 토끼풀 음료, 쉠록셰이크를 발명했다.
6.
컴퓨터가 뽑은 자료에 집중하고 컴퓨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우리는 자판기가 늘어선 매장이 되었을 것이다. 버튼을 누르면 전자동으로 준비된 빅맥, 셰이크, 프렌치프라이가 나올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할 수도 있다. 짐 신들러가 그걸 가능하게 해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맥도널드는 사람들의 사업이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는 직원이 건네는 미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만의 이미지다. 맥도널드 부지를 찾는 일이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창의적 성취감을 선사하는 작업이다. 원래의 부지는 아무것도 없는 공터다. 누구를 위해서 그 무엇도 생산하지 않는 맨땅이다. 나는 거기에 건물을 짓고 가맹점주는 50~100명의 직원을 고용해 사업을 시작한다. 오물 수거를 하는 사람, 조경을 하는 사람, 고기와 빵, 감자 등을 파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일거리가 생긴다. 아무것도 없던 공터에서 1년에 1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매장이 생겨난다. 그런 과정을 지켜볼 때 나는 진정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7.
성취는 실패의 가능성, 패배의 위험에 맞설 때만 얻을 수 있다. 바닥에 놓인 밧줄 위를 걷는 일에 성취감을 느낄 수는 없다. 위험이 없을 때는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자부심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행복도 없다.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개척자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자유기업 체제가 가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것이 경제적 자유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다른 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