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문장] 탁월한 사유의 시선

by 아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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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을 통해서 발휘하는 창의성은 기존의 정해진 관념과
과감하게 ‘단절’한 독립적 주체만 할 수 있다.
기존의 것과 단절한 주체라야만 ‘연결’할 수 있다.


1.

철학을 한다는 것은 결국 가장 높은 차원의 생각 혹은 사유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2.

이론적인 내용의 습득보다는 사유의 활동 혹은 사유의 높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철학을 하는 목적은 철학적인 지식을 축적하는 일이 아니라, 직접 철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스스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결정하지 못하는 한 종속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종속적인 삶을 사는 한 자신이 주도권을 잡고 스스로의 삶을 꾸리거나 효과적으로 사회를 관리하지 못한다.


4.

선진국 수준의 삶을 만드는 선도력을 갖기 위해서는 ‘장르’를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장르의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질문’의 힘을 내면화하는 시민의식이다.


5.

없는 길을 여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이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된 능력이 있다. 바로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상상력과 창의력은 아직 열리지 않은 길을 열 수 있도록 인간에게 구비된 힘이다. 상상력이나 창의력도 아무 곳에서나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음악가 상위 수준에서 예술가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을 칠 때 비로소 발휘된다.


6.

철학하는 일이란 남이 이미 읽어낸 세계의 내용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읽을 줄 아는 힘을 갖는 일이다.


7.

내가 한 인간으로 잘 살고 있는지, 독립적 주체로 제대로 서 있는지, 누군가의 대행자가 아니라 ‘나’로 살고 있는지, 수준 높은 삶을 살고 있는지, 철학적이고 인문적인 높이에서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보면 된다. “나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나의 삶이 내 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는가? 아니면 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는가?” 꿈이 없는 삶은 빈껍데기일 뿐이다.


8.

‘연결’을 통해서 발휘하는 창의성은 기존의 정해진 관념과 과감하게 ‘단절’한 독립적 주체만 할 수 있다. 기존의 것과 단절한 주체라야만 ‘연결’할 수 있다.


9.

창조적 차원의 사유가 발동될 때, 가장 근저에서 먼저 꿈틀대는 것이 바로 궁금증과 호기심이다. 궁금증과 호기심이 인간을 가장 독립적으로 만들고 고독을 자초하게 한다. 고독하고 독립된 상태에서 그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하는 힘, 그것이 궁금증과 호기심이다. 이것이야말로 탁월함으로 인도하는 원초적인 힘이다.

10.

탁월한 인간은 항상 ‘다음’이나 ‘너머’를 꿈꾼다. 우리가 ‘독립’을 강조하는 이유도 ‘독립’으로만 ‘다음’이나 ‘너머’를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이나 ‘너머’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 불안이 힘들어서 편안함을 선택하면, 절대로 ‘다음’이나 ‘너머’를 경험할 수 없다. 이때 불안을 감당하면서 무엇인가를 감행하는 것이 ‘용기’다. 탁월한 높이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불안을 자초하거나 감당한다. 불안을 견디지 못하여 쉽게 믿음에 빠지지 않는다.


11.

창의적 결과나 독립적 활동은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지적인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질문을 발휘하는 능력이 점점 퇴화되어 궁금증과 호기심도 점차 줄어든다. 하지만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은 불편함을 이겨내고 질문을 생산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기 때문에 궁금증과 호기심이 살아 있다. 지적인 편안함에 빠져들면 들수록 인간은 급격히 늙어간다. 반면 궁금증과 호기심이 살아 있다면, 그는 결코 늙은 사람이 아니다.


12.

정해진 믿음 체계에 갇힌 사람은 평생 낡은 세상 한 귀퉁이를 잡으려 노력하거나 이미 낡아 빠진 것과 옳고 그름을 다투느라 정력을 소진한다. 하지만 자신으로만 존재하는 개방적 자아는 낡은 것과 싸우는 데 정력을 쓰지 않고 새로운 것을 여는 일에 몰두한다. 어느 쪽이 자유이고 참된 삶인지는 이미 명확하다.


13.

경쟁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틀 안으로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과 견주거나 다투는 일이다. 경쟁의 구도 속에서는 이미 정해진 틀을 바꾸는 일이 불가능하다. 경쟁은 오히려 이 틀 자체를 공고하게 만든다. 그래서 경쟁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정해진 틀은 더욱 고착화되고, 이 고착화된 틀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길을 여지없이 차단한다. 경쟁이 갈등을 너무 과하게 조장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이기도 하지만, 더욱 부정적인 점은 치열한 경쟁이 틀 자체의 변화를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진보가 어려워진다.


14.

분명한 것은 ‘적토성산’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우선 창의성을 얘기해보자. 성숙되고 독립된 주체가 발산하는 것이 창의성이고 상상력이다. 그런데 상상력이나 창의력은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튀어나오는 것이다. 상상력이나 창의력은 그것들이 튀어나올 정도로 내면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다. 내면을 두텁게 준비하는 과정이 ‘적토성산’이다. 상상력이나 창의력은 ‘적토성산’ 이후에 얻어지는 행운이나 선물이다. 창의성이나 통찰력, 인격적 성숙, 이런 모든 문제는 적토성산 후에 자득自得되는 것이다.


15.

생각의 결과를 배우는 것이 철학이 아니라,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철학이다. 정해진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진리를 대하는 태도일 수 없다. 자기만의 진리를 구성해보려는 능동적 활동성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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