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데이비스
영국의 의료인류학자이자 심리학자이며, 영국 국민보건서비스에서 심리치료사로 일했던 저자가 정신질환의 확산에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기여했는지 분석한 책. 아무래도 영국이다 보니 빼놓을 수 없는 그 이름 마가렛 대처가 조금 등장한다.
작은 정부, 민영화, 규제 철폐, 부자 감세 등 어디서 많이 들어본 레토릭들이 거대 제약기업들의 이익추구와 결합한다. 시스템의 허점으로 삶이 팍팍해져서 생기는 정신질환들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약이 유일한 해결책인 양 마구 처방한다. 여전히 저 약들이 의학적으로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 생기는 조사 결과들이 있다. (가령, 경증-중등도의 환자들 중 약을 먹지 않은 사람들이 약을 먹은 사람보다 회복이 더 빠르고 사회 복귀도 효과적으로 이뤄졌다는)
가난, 트라우마, 학대, 무상감, 일터에서의 불화, 소비, 불평등, 물질주의, 도시에서의 삶, 과잉 의료화, 오염, 낮은 교육적 성취, 성차별, 실업, 빚, 차별, 연령주의, 경제적 불안정, 외로움, 소외, 공동체의 파편화, 인종차별, 따돌림, 과로를 비롯한 수많은 사회적 결정 요인들이 모두 우리의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요소들이 항우울제, 항불안제 등의 시장에서는 무궁무진한 기회라는 아이러니...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땀에 빠져 죽는 사람은 없다
라면서 많은 직장인들을 절벽 끝으로 내몬다. 누군가 언젠가 내게 말해줬는데, 수많은 조직에서 딱 한 사람(보통은 임원이나 팀장)만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약을 먹으면 모두가 평온할 텐데, 그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아서 수많은 아랫사람들이 고통받으며 상담을 받고 약을 먹게 된다고, 의사 입장에서는 저 임원들 하나하나가 수많은 수요를 창출하는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웃었던 기억이 있는데, 실제로 당해보면 어떤 상황에서는 도망치는 것(이직) 말고는 답이 없을 때가 있더라.
게다가 많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바이블처럼 여기는 DSM은 수백 페이지의 Disorder들을 나열하며 이 모든 장애들이 약을 이용한 치료의 대상이라고 바라본다. DSM은 여러 번 개정되었으며, 개정될 때마다 새로운 유형의 장애가 등장한다. 여기에 거대 제약회사들이 조금의 영향도 주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그렇기에 우리는 바깥세상과 그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우리가 하는 일의 중심에 두고, 정신에 건강한 사회 정책을 만들며, 시행하는 개입들이 사회학적 기반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영국에서 가장 저명한 공공 보건학 교수인 마이클 마멋 교수의 발언을 인용하며, “우리는 사회 정의의 원칙에 기반한 사회를 설립하고,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줄이며, 편협한 경제적 목표 대신 건강과 웰빙에서의 성과를 정부 정책의 주요 목표로 삼는 웰빙의 경제를 일구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미 너무나도 커져버린 시장, 약에 중독된 사람들, 더 많은 증상을 질환이라고 해석하는 교과서, 끝없이 사람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비정한 경제구조 등 하나하나가 거대한 장벽처럼 굳건하게 서서 평범한 사람들을 감시하며 짓누르고 쥐어짜고 있거늘, 이 체제를 무너뜨리는 건 적어도 내 생에선 일어나지 않을 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