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암, 도전, 진화,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매혹적인 탐구
크으... 카피 잘 뽑았다. 정말 하나도 뺄 단어가 없이 책을 잘 설명해 준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쓴 책. 폐암으로 아버지를 잃고 그 충격에 암을 고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다짐해서 결국 의사가 됐는데, 막상 암환자를 마주하니 의학의 한계를 느끼게 됐다는 서두에서 진솔한 매력을 느꼈다. 이과가 이렇게 글을 잘 써도 되는 것인가.
암 치료제의 역사를 다루면서 우리 회사 약도 나와서 살짝 뿌듯했다. 세포독성항암제-표적항암제-면역항암제(내가 읽었던 <키트루다 스토리>에서도 등장하는 면역항암제)로 이어지는 항암제의 진화와, 암세포는 그에 대응해 어떻게 진화해서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 쉽고 자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수많은 환자들의 죽음과 삶을 함께하며 저자는 죽음은 무엇이며 삶은 무엇인지 통찰한다. 한국인의 1/3은 암으로 죽게 되는데, 암을 최대한 늦게 만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럼에도 암을 만나게 되면 어떤 치료를 받고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지, 수려한 글솜씨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남궁인 선생님이랑은 또 다른 느낌으로 글 잘 쓰는 의사가 여기 있다.
나름 항암제 만드는 제약회사에서 일한다고 사놓은 싯다르타 무케르지의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는 반쯤 읽다가 흐름을 놓쳐서 그냥 놔버렸는데, 이 책은 중간에 놓칠 흐름이 없이 유려하게 의학적 주제가 철학적 사고로 흘러간다.
내가 암에 걸린다면 이 의사 선생님에게 치료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에 이르는 길이겠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함께한다면 행복하게 치료받을 수 있을까?라는 책 중독자의 망상…
요즘 들어 부쩍 어떻게 죽어야 잘 죽는 것인가라는 주제의 책들이 눈에 밟혀서 계속 읽게 된다. 젊음은 영원할 것 같지만 나도 어느덧 중년인데, 은퇴는 물론이고 죽음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지만은 않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러워지려나… 더 잘 살기 위한 욕심을 버리고 좋은 책 많이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