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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김범석

by 김알옹
암, 도전, 진화,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매혹적인 탐구



크으... 카피 잘 뽑았다. 정말 하나도 뺄 단어가 없이 책을 잘 설명해 준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쓴 책. 폐암으로 아버지를 잃고 그 충격에 암을 고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다짐해서 결국 의사가 됐는데, 막상 암환자를 마주하니 의학의 한계를 느끼게 됐다는 서두에서 진솔한 매력을 느꼈다. 이과가 이렇게 글을 잘 써도 되는 것인가.


암 치료제의 역사를 다루면서 우리 회사 약도 나와서 살짝 뿌듯했다. 세포독성항암제-표적항암제-면역항암제(내가 읽었던 <키트루다 스토리>에서도 등장하는 면역항암제)로 이어지는 항암제의 진화와, 암세포는 그에 대응해 어떻게 진화해서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 쉽고 자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1575904651513.jpg 항암치료는 온갖 부작용과의 싸움이다. 암은 전략적으로 진화한다. (사진출처: MD Anderson Cancer Center)


수많은 환자들의 죽음과 삶을 함께하며 저자는 죽음은 무엇이며 삶은 무엇인지 통찰한다. 한국인의 1/3은 암으로 죽게 되는데, 암을 최대한 늦게 만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럼에도 암을 만나게 되면 어떤 치료를 받고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지, 수려한 글솜씨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남궁인 선생님이랑은 또 다른 느낌으로 글 잘 쓰는 의사가 여기 있다.


나름 항암제 만드는 제약회사에서 일한다고 사놓은 싯다르타 무케르지의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는 반쯤 읽다가 흐름을 놓쳐서 그냥 놔버렸는데, 이 책은 중간에 놓칠 흐름이 없이 유려하게 의학적 주제가 철학적 사고로 흘러간다.






내가 암에 걸린다면 이 의사 선생님에게 치료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에 이르는 길이겠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함께한다면 행복하게 치료받을 수 있을까?라는 책 중독자의 망상…


요즘 들어 부쩍 어떻게 죽어야 잘 죽는 것인가라는 주제의 책들이 눈에 밟혀서 계속 읽게 된다. 젊음은 영원할 것 같지만 나도 어느덧 중년인데, 은퇴는 물론이고 죽음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지만은 않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러워지려나… 더 잘 살기 위한 욕심을 버리고 좋은 책 많이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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