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들
2월 말에 아이와 함께 새로 시작한 게임이 있다. 산책하면서 꽃을 심는 단순한 게임인데, 많이 걸어야 한다. 밤이고 낮이고 조금이라도 시간이 되면 무조건 나가서 걸었더니 상대적으로 책을 읽는 시간이 좀 줄었다.
못 읽고 반납한 책도 꽤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날씨가 좋으니까 덜 읽고 많이 걸어야지.
이철희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
시카고대에서(시카고학파로 유명한 그 시카고대) 수학하고 돌아와 서울대 교수로 있는 저자의 책. 인구 관련 통계를 나열하고 시사점을 설명하는 방식이 반복된다. 교과서적인 이야기의 나열과 너무 많은 숫자들 때문에 끝까지 읽기 힘들었고, 머릿속에 남는 메시지도 딱히 없다.
박완서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
박완서 선생님의 산문집. 중국 만주, 백두산, 상해, 몽골, 바티칸,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 티베트, 카트만두 등의 여행기가 주가 된다.
아무래도 등단을 늦게 하셔서 연세가 좀 드신 후 여행을 다니신지라 담담하게 쓰인 글이 마치 어머니가 여행 다녀오신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처럼 무척 친근하다. 어느 여행기는 15-20년 전 글이라 오래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머니와 나의 여행 스타일은 아주 다르다. 6시부터 일어나서 저녁까지 빡빡하게 서너 곳을 구경하는 패키지형 여행 vs 느즈막히 일어나서 한두 곳만 천천히 다니는 자유여행의 차이라 통 같이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다. 나중에 돌아가시고 나면 그렇게 후회를 한다는데, 나도 한 번 모시고 가긴 해야 하겠다…
김용옥 <상식>
TV에 나와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리 지르던 모습만 기억에 남은 도올 김용옥 선생이 쓴 책. 윤석열의 12/3 계엄사태를 보고 분노에 차서 한 달 만에 써 내려갔다고 한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윤석열 까기 - 고조선과 삼국시대에서 볼 수 있는 우리 민족의 문화적 우수성 - 윤석열 까기 - 고려의 예술 - 윤석열 까기 -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경이로움과 금속활자 - 윤석열 까기 - 세종의 한글 창제 - 윤석열 까기 - 한글의 우수함 - 윤석열 까기 ㅋㅋㅋㅋㅋㅋㅋ
동양학을 연구한 학자라서 공자의 일화들도 중간중간 등장한다. 모든 이야기가 깔때기처럼 윤석열 까는 소재로 활용된다. 까는 내용만 빼면 국뽕을 거하게 한 사발 들이키게 되는 책.
임용한, 손무(원작) <손자병법>
손무의 손자병법을 해석하고 각 병법의 사례들을 전쟁사의 실제 예를 들며 친절하고 쉽게 설명한 책. 아이가 한 챕터 읽어보고는 재미있다고 하는 걸 보면 정말 쉽게 잘 써놓은 해설서이다.
다만 전쟁에서 이기는 법을 각 분야별로 사례를 들고 이를 조직생활에서 어떻게 활용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강조하는 바람에 읽으면서 무척 피곤해졌다.
나는 회사에서 일 잘하는 사람만 좋아해서 윗사람이면 따르지만 비위를 맞추진 않고, 아랫사람이면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아낀다. 일 못하는 사람은 최대한 멀리한다. 누가 우리 팀을 공격하거나 귀찮게 하면 가서 일을 바로잡고, 피치 못하게 귀찮은 일을 떠맡게 되면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상세히 설명해 주고 가장 효율적으로 결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서 공유한다. 사내정치를 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누구 밑에 줄을 잘 서서 승승장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그 사람의 운이고 사람을 보는 실력이다. 이렇게 회사생활을 해서 그런지 다른 사람과 큰 갈등을 빚는 일이 거의 없다. 회사에선 감정을 잘 드러내지도 않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싸우고 이기는 것만 강조하는 이야기만 접하니까 그만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2/3만 읽고 그 뒤는 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