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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에 빚을 져서

예소연

by 김알옹

좀 정돈된 고속도로 같이 시원하게 치고 나가는 소설을 좋아하는데, 이 작품은 비포장 시골길을 덜컹거리며 나아가는 느낌이다. 아빠의 장례식장에 키우던 개를 데려와 난장판으로 만드는 결말 장면 안에서 당혹스러워하는 조문객들의 모습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내가 느낀 기분이었다. (그걸 노린 걸 수도… 작가님의 단편집 <사랑과 결함>은 저 덜컹거림이 너무 과해 멀미가 날 지경이라 읽기를 멈췄다.)


<그 개와 혁명>을 읽고는 위와 같은 감상을 써놨는데, 이 소설로 예소연 작가님은 이상문학상 대상을 거머쥐었다. 혁명 앞에 정신 못 차리고 어수선해하는 내가 혁명의 대상인가보다. 다시 읽어보면 학생운동 세대와 MZ세대의 혁명이 교차되는 그림이 보이는데 내가 작가님의 폭주에 휘말려서 멀미가 심해 이를 그냥 흘려보냈다. (다만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주인공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작가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는데, 실제로 아버지가 투병하다 돌아가셨고 얼마 안 있어 할머니도 돌아가셨다고 한다. 가까운 사람을 둘이나 잃는 힘든 상황에서 소설까지 써내다니, 아마 하늘에서 두 분이 손잡고 작가님 소설을 읽으며 뿌듯해 하실 것 같다.






단편집 <사랑과 결함>이 읽기 좀 힘들었지만 내가 또 상의 권위에 약한 사람이니 다른 작품을 읽어보겠다고 조심스럽게 <영원에 빚을 져서>를 골라왔다. 장편보단 짧고 단편보단 긴 경장편 정도의 분량이다.


막 온몸에 문신을 새겨놓고 눈썹 위에 피어싱을 한 검정색 옷을 입은 젊은 여성이 담배를 피우면서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풍기는데, 집에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배 위에 고양이를 올려놓고 넷플릭스를 보며 울기도 웃기도 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느낌이랄까. 세월호와 이태원을 소재로 삼고, 실종된 친구를 찾아간 캄보디아라는 낯선 나라에서 발생한 그와 비슷한 참사를 애도하는 내용이다. 쉽게 읽혔으나 마음엔 뭔가 남았다.


4월 4일 11시 22분의 주문으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 분들 마음의 응어리가 아주 조금은 풀렸기를 바란다.


PYH2025040407920001301_P4.jpg 누군가에겐 이렇게 큰 위로가 된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젊은 여성 작가들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최애였던 정세랑 작가님이 <설자은...>시리즈에 몰입해 있고(난 도저히 재미가 없어서 못 읽겠다), 장류진 작가님은 <연수> 이후 에세이 내느라 다른 신작이 없고, 그동안 성해나 작가님이 치고 올라와서 최애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김화진 작가님이 다크호스인데 아직 읽은 작품이 서넛 뿐이어서 보류 중이다. 예소연 작가님이 이 라인업에 들어올 수 있을지 (철저히 개인적이지만) 나 혼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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