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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실

한강

by 김알옹

노벨상 수상 이후로 정말 열심히 노를 저은 출판/서점계의 노력에 힘입어 많은 사람들이 작가님의 책을 읽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신간이 없으면 대중들의 뇌리에서 조금씩 희미해지는 게 작가의 숙명이라도 되는 듯,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마저 노젓기에 함께 동참해야 한다고 업계에서 등을 떠민 듯, 뭐라도 좋으니 '한강'이라는 이름만 붙일 수 있다면 이 흐름을 끊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 듯, 작가님의 새 산문집이 출간된다고 온라인/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서점계에서 강력한 마케팅을 펼쳤다.


fbcf11c5-e6d0-408f-b52a-948599efec8c.jpg 영차영차 노젓기 (출처: 뉴스원)


세이브해 놓으신 원고라도 있을까. 연습벌레 멘탈퀸 연아마저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 따고 그 뒤의 세계선수권에선 하기 싫다는 모습이 역력했는데,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큰 상을 수상한 직후에도 글을 쓰실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어쨌든 출간 이후 압도적으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내 손바닥 만했다. 다른 책을 몇 권 읽고 펼친 이 책의 서두엔 노벨상 강연 및 수상소감이 실려있다. 다시 읽어도 참 명문이다. 그런데 이미 이 글들은 누구나 웹에서 찾아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시가 다섯 편 정도 수록되어 있다. 짧은 산문도 있다.


그리고 북향 정원에서 식물들을 키우는 작가님의 일기가 50 페이지쯤 실려 있다. 해를 잘 비춰주려고 거울을 여러 개 사서 15분마다 방향을 바꿔주며 식물들에게 비춰주는 부지런함과 애정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게 다다. 심지어 어떤 페이지는 '2021년 x월 x일 오늘은 햇볕이 많이 비춰 식물들이 쑥쑥 자란다' 정도의 한 문장만 덩그러니 담겨있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작가님의 글을 장편소설들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됐을 텐데, 깊은 함의가 숨어있는 행간도 아닌 단순한 식집사 일기를 보려고 책을 사서 읽는 건 아닐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철저히 출판사의 마케팅에 독자가 놀아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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