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리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준우승자이자 요즘 광고에서 엄청 많이 등장하는 에드워드 리 셰프. TV 광고만 해도 5-6개는 되는 것 같은데, 우승자인 나폴리맛피아보다 더 잘 나가는 사람이 됐다.
셰프의 책이니 요리 이야기나 적당히 등장하고 자신이 어떻게 요리를 하게 됐는지 사연을 좀 첨가한 후 요리 사진들이나 자기 사진들을 많이 넣은 화보집 느낌의 책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펴보니 글이 엄청 많고 사진은 거의 없다. 찾아보니 뉴욕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뉴욕대학교에 들어간 나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매디슨 애비뉴와 28번가 모퉁이에 있던 식당 Big Apple Diner에서 일했다. 부엌일에 능숙한 내게 식당 일은 쉬운 돈벌이였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아침뿐이었다. 어쨌든 학교에 다녀야 했으니 말이다. 매일 새벽 4시 30분쯤 출근해 불을 지피고 팬케이크 반죽과 머핀 반죽을 만들었다. 그런 뒤 전날 밤에 썰어 물에 담가놓은 감자를 건지고 함께 볶을 채소를 썰었다. 배송된 빵과 베이글을 받은 뒤 달걀을 실온에 꺼내놓았다. 정확히 아침 6시 15분부터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일이 끝나면 마가린과 블루베리 머핀 믹스가 얼룩덜룩하게 묻은 티셔츠를 입고 라틴어 수업에 들어갔다. 수강생은 대부분 사립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었다. 나는 동사 활용형을 읊으면서 동시에 동정과 혐오가 어린 학우들의 눈총을 견뎠다. 그러다 결국 깨끗한 옥스퍼드 셔츠를 따로 준비해 갈아입고 수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읽기도 전에 선입견을 갖고 접근했네요. TV 프로그램이나 광고에서 보는 모습은 아주 단편적인 것이었다.
내가 어릴 때 살던 브루클린은 어디로 갔을까? 이 지역이 언제 리틀 오데사가 되었을까? 당연히 점진적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최근까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그것이 바로 이민자들이 하는 일이 아닌가? 우리는 마치 야음을 틈타듯 슬며시 적대적인 땅으로 와서 세월에 잊힌 곳을 찾아내 우리 것으로 만든다. 우리는 그저 주어지는 곳에서 안락을 찾는다. 코리아타운, 리틀 인디아, 아이언바운드, 리틀 오데사. 우리는 어디든 받아들인다. 어디든 정복하고 만다. 문제는 그 기간이 얼마나 되는가이다. 또한, 우리가 고국에서 봉인한 채로 들여온 문화는 얼마나 오래 지켜낼 수 있는가? 희석될 때까지, 모국의 전통이 뿌옇게 흐려져 흔적만 남을 때까지 얼마나 보존할 수 있는가? 그렇게 잃는 것들은 어떻게 측정하는가?
번역이 좀 아쉽다 싶을 정도로 글을 정말 잘 쓰는 작가님이다. (분명 영어 원문이 더 좋은 글일 것이다.) 세상에, 요리도 잘하는 사람이 글까지 잘 쓰다니 이건 반칙 아닙니까?
미국 남부 요리에 사용하는 버터밀크와 작가님 본인이 10대에 뉴욕 뒷골목을 방황하며 몰두했던 그래피티의 조합. 작가님이 2년 정도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인종을 만나며 이민자들의 음식을 먹고 미국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을 풀어나가는 내용이다. 16개의 챕터에서 미국 남부, 아프리카, 아시아, 애팔래치아 산맥, 유럽 등 각 지역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자리를 잡고 자기 뿌리의 정체성이 확실히 드러나는 음식들을 만드는 식당들을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한국이라는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는 도저히 접해볼 수 없는 다양한 특색 있는 음식들이 등장해서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친해지고 많은 대화를 나누는 작가님의 친화력과 글솜씨,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유려하게 펼쳐진다. 각 챕터 말미에는 서너 개의 레시피가 등장하는데, 텍스트만 있어도 충분히 여러분은 요리할 수 있다며 일부러 사진을 넣지 않았다. 그래서 순전히 글에만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 류의 글에서 없으면 섭섭한(작가 입장에선 쓰디쓴 이야기겠지만)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도 등장한다.
심전도 모니터가 다시 켜지자 어머니는 내게 아이들을 데려가 한국 바비큐를 먹이고 어머니 몫도 포장해 오라고 했다. 아버지의 죽음은 임박한 듯했고 그 모습을 아이들이 보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멀리한 점,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해주지 않은 점에 대해 사과받고 싶었다. 나는 침대로 다가갔다. 아버지의 몸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은 손이었다. 아버지의 손은 언제나 크고 강했다. 기력이 쇠했는데도 손만큼은 남자다워 보였다. 나는 아버지의 힘 빠진 손을 올리고 그 밑에 내 손을 넣었다. 손바닥을 마주 잡은 게 아니라 아버지의 손바닥이 내 손마디를 감싸게 한 것이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을 힘도 없었다. 나는 그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며 가셔도 괜찮다고, 우리는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지금은 유재석보다 더 인기 많은 광고모델이지만 그 열기도 조만간 사그라질 테고, 대중은 또 다른 넷플릭스의 화제작을 시청하며 <흑백요리사>를 잊어버리겠지. 하지만 작가님은 미국에서 계속 한국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이 가득 담긴 음식을 만들며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버번위스키와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이라 믿는다. 내가 작가님의 음식을 먹어볼 일은 없겠지만(남은 생에 미국 켄터키에 여행을 갈 일이 있을까?), 멀리서 작가님의 새 책이 나오면 챙겨서 읽으며 잘 지내고 계신지 종종 확인해 보려고 한다. (조만간 버번위스키만 다룬 책이 또 출간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