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
도입부터 충격적인 설정으로 기대감을 잔뜩 끌어올려놓는다. 의학의 발달로 젊은 사람이(셀러) 노인에게(바이어) 호르몬을 주면 바이어가 셀러의 나이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셀러는 2-3주 동안 아예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크게 앓고 난 이후에도 계속 바닥인 건강상태로 살아야 한다. 셀러는 바이어에게 큰돈을 주기 때문에, 바이어는 보통 빈곤층 청년들이 지원한다. 사회는 노인을 멸시한다.
어 이거... 살짝 영화 <서브스턴스>랑 비슷한 설정인데? <서브스턴스>는 약을 섭취하자 자신의 몸에서 등을 가르고(문자 그대로) 젊은 자신이 등장해서 늙은 자신과 교대로 사흘~일주일로 생활하는 설정이다. 젊음을 간절히 원하는 늙은 자신의 강렬한 욕망이 젊은 자신을 태어나게 하지만, 결국 젊은 자신을 질투하는 늙은 자신과 늙은 자신을 혐오하는 젊은 자신의 대결로 구도를 설정한다. <황혼에서 새벽까지>, <마셰티>의 로버트 로드리게스 영화 같은 스타일로 피와 살점과 폭력이 난무한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바이어의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셀러의 사연으로 넘어가고 상담실장의 사연으로 넘어가는 등 이야기가 무르익을 새가 없다. 충분히 재미있는 소재라 좀 더 길게 서술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등장인물 한 명마다 챕터를 하나씩 할애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조는 하나의 큰 이야기 흐름을 여러 인물들이 쌓아 올려 만들어나가는 목적이었을 것 같은데, 이야기의 깊이가 부족하고 등장인물이 점점 많아지면서 산만해진다. (꽤 비중이 있어 보였던 책 초반에 등장한 바이어가 그냥 갑자기 죽어서 사라지는 식으로) 막판엔 대체 이걸 왜 읽고 있나 스스로에게 물으며 억지로 책장을 끝까지 넘겼다. 주제가 아무리 좋아도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질이 확 달라질 수 있다고 느꼈다.
이런 옴니버스 구성의 (내가 읽은) 최고봉은 정세랑 작가님의 <피프티 피플>이다. 50명이 등장하지만 그 어느 인물도 이야기의 흐름에 방해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