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
'이것이야말로 MZ의 소설이구나'
문단에 그리 많지 않은 30대 초반의 남성 작가의 소설이다. 첫 소설 이후 6년 만에 나온 작품인데, 그동안 작가님은 영화 일을 했다고 한다. (인터뷰) 영화는 다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느낌이라면 소설은 작가가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들 던지는 느낌이라는 작가님의 말과 그동안 해왔던 영화 일에서의 경험이 투영된 듯, 이 작품은 '맨투맨'이라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두 주인공이 등장하며 두 주인공의 '글 잘 쓰는' 또 다른 자아가 각각 등장한다. 조금 황당하긴 하지만 주인공뿐 아니라 주변 인물 모두가 자기 캐릭터가 확실하고 재미있는 문장이 쉬지 않고 나와서 피식피식 웃으며 읽었다.
신선하고 재미있지만 결말은 실망스럽다. 우연인지 몰라도 작중 주인공들이 작업하는 시나리오도 결말이 실망스럽다. 이것도 작가의 설계인가?
재미있는 문장이 워낙 많이 몇 단락 가져와본다.
'존나 존나게'에서 안도감을 느끼다니 범상치 않은 젊은이다. 가끔 소설가들이 비속어를 자신의 작품에 삽입하는 걸 보면 그 한 단어를 쓰려고 굉장히 고심한 흔적이 보일 때가 많은데, 이 작가님은 가차 없다.
"그럼 돈 벌고 싶은 거예요?"
"네, 돈 벌어야죠."
"많이?"
"네."
"존나?"
"존나 존나게 벌 거예요."
‘존나 존나게’라니. 문득 안도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다행이야, 이러면. 괜찮지. 그래.
존나 존나게 잘 꼬집는 작가님. 어쩜 저렇게 극과 극의 스타일인 두 수상집을 정확히 잘 표현할까. 내가 말하고 싶은 딱 그 느낌이다.
"요즘도 가끔 소설 써?"
옥빛 누나와 골뱅이 소면에 소주 한잔을 하던 중, 내가 물었다. 선셋 작가 관련 일로 다시 연락하게 된 이후로, 우리는 그렇게 종종 만났다.
"아니. 근데 가끔 읽기는 해."
"아, 그래? 아직도 문학을 사랑하시는군. 그럼 어떤 거 읽어?"
"그때그때 다르지."
옥빛 누나는 취기로 발그레한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내 기분이 오늘따라 누군가를 조소하고 비웃고 싶으면 젊은작가상 수상집을 읽고, 허망하게 망해 가는 뭔가를 볼 때의 허무한 기분을 느끼고 싶으면 이상문학상 수상집 같은 거 읽고."
이건 요즘 내 인생(커리어랄까) 이야기 같아서...
카페에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은 대체로 평화로웠지만 이따금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문득 내가 고장 난 잠수함에 탑승해 있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다시는 수면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빠져나오기는 이미 늦었다. 잠수함 밖은, 빛이라곤 없는 어둠의 심해. 다만 너무도 천천히 그리고 평화롭게 가라앉는 중이라 나는 이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조차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한테 최대한 "넌 xx처럼 해야 해 / 넌 xx처럼 저러면 안 돼"와 같이 누군가와 비교해서 가치를 심어주는 일을 최대한 멀리하고 있다. 그냥 이건 옳은 일이고 이건 옳지 않은 일이며 이건 해야 하는 일이고 이건 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해줘도 충분할 것을 우리는 굳이 남을 끼워 넣어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거나 스스로 우월감을 느낀다.
세상엔 두 종류의 스승이 있다. 먼저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성공하고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지 알려 주는 스승이 있다. 우리는 대개 그런 스승만을 스승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세상엔 자기 인생을 희생함으로써 가르침을 주는 그런 스승도 있다. 자신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 어떻게 하면 성공해서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만은 잘 알겠군! 하는 식의 깨달음을 주는 스승. 어둠의 스승. 치성이 형이 바로 그랬다.
치성이 형의 훈련장이자 일터인 MMA 체육관은 버스로 30분쯤 가야 있었다. 버스가 덜컹거리며 오르막길을 올랐다. 맨 뒷좌석에 선셋 작가와 나란히 앉은 나는, 왠지 아버지를 죽이러 가는 오이디푸스가 된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