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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하는 말들

황석희

by 김알옹

영화 자막 번역 분야에서 실력 좋기로 유명한 황석희님의 에세이. 말을 다루는 사람이라 그런지 생각이 말로 잘 정리된 글들이다. '와 글 잘 쓴다!'라고 감탄하며 읽었는데, 작가님 본인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번역자로서 관객들이 직관적으로 의미를 이해하도록 번역문을 써 온 게 20년이다. 시간이라는 물리적 제약이 있는 영상을 주로 번역했기에 더 그런 성향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럴까. 내 글도 다소 직관적이다. 당연히도 내 글은 내 번역을 닮았다.
"글이 잘 읽힌다." "술술 읽힌다." 등의 표현을 자주 들었다. 자막을 20년 써 왔으니 나는 글말이 아니라 입말을 쓰는 번역을 20년간 해 온 셈이다. 그래서 내 글은 텍스트의 형태임에도 글말보다 입말에 가깝다. 조사나 어미의 연결과 흐름에 집중하는 입말, 아마 그래서 잘 읽힌다는 말을 듣는 걸 거다. 그걸 책을 내고서야 알았다. 그게 내 글의 강점이기도 하고 관점에 따라선 약점이기도 하다. 그렇게 쓱 읽히는 글은 잠시 멈춰 숙고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런 요소는 때에 따라 독자 경험에 해가 되기도 한다.


어쩐지 술술 읽히더라... 저같이 빠르게 멈추지 않고 읽는 독자에겐 작가님 글이 최고랍니다.


글 중에 소개되는 <파친코>의 자막 번역 결과물을 보면, 이 번역가 선생님이 얼마나 뛰어난 역량을 가진 분인지 알 수 있다. 애플tv에서 드라마를 봤을 때는 이 작품이 소설 원작이라는 것도 모른 채로 시작했다. 보면서 대사가 어쩜 저렇게 경상도 방언을 쓰면서도 감정 전달을 잘하는지 신기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민진 작가님이 영어로 쓴 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영어가 한국어를 거쳐 경상도 방언까지 도달하면서 그 의미가 점점 더 잘 살아나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을 건데, 그 일을 황선생님이 해낸 것이다.


"Three bowls. Perhaps the taste of it will swallow some of your sorrow as well."
직역: "세 사발이다. 어쩌면 이것의 맛이 너의 슬픔도 어느 정도 삼킬 것이다."
실제 대사: "세 홉이데이. 선자 어매도 무믄서 설움 쪼매 삼키라이."


1670338531817-vn6eoeqr7r.png 황석희님의 대표작: 맨 정신으로 번역 가능한지 궁금한 데드풀 자막 (출처: 20세기 폭스 코리아)


image_readbot_2018_332576_15272317493328441.jpg 나중엔 도움까지 얻음 ㅋㅋㅋㅋㅋ (출처: 작가님 본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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