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
6월엔 더워서 많이 돌아다니지 않고 시간 나면 책을 붙잡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권수가 무척 많아졌는데, 실상은 얇은 단편소설이 여러 권 껴있어서 그렇다. 언제나 그렇듯 깊이는 없이 마구 읽기만 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준우승자이자 요즘 광고에서 엄청 많이 등장하는 에드워드 리 셰프. TV 광고만 해도 5-6개는 되는 것 같은데, 우승자인 나폴리맛피아보다 더 잘 나가는 사람이 됐다.
셰프의 책이니 요리 이야기나 적당히 등장하고 자신이 어떻게 요리를 하게 됐는지 사연을 좀 첨가한 후 요리 사진들이나 자기 사진들을 많이 넣은 화보집 느낌의 책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펴보니 글이 엄청 많고 사진은 거의 없다. 찾아보니 뉴욕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뉴욕대학교에 들어간 나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매디슨 애비뉴와 28번가 모퉁이에 있던 식당 Big Apple Diner에서 일했다. 부엌일에 능숙한 내게 식당 일은 쉬운 돈벌이였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아침뿐이었다. 어쨌든 학교에 다녀야 했으니 말이다. 매일 새벽 4시 30분쯤 출근해 불을 지피고 팬케이크 반죽과 머핀 반죽을 만들었다. 그런 뒤 전날 밤에 썰어 물에 담가놓은 감자를 건지고 함께 볶을 채소를 썰었다. 배송된 빵과 베이글을 받은 뒤 달걀을 실온에 꺼내놓았다. 정확히 아침 6시 15분부터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일이 끝나면 마가린과 블루베리 머핀 믹스가 얼룩덜룩하게 묻은 티셔츠를 입고 라틴어 수업에 들어갔다. 수강생은 대부분 사립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었다. 나는 동사 활용형을 읊으면서 동시에 동정과 혐오가 어린 학우들의 눈총을 견뎠다. 그러다 결국 깨끗한 옥스퍼드 셔츠를 따로 준비해 갈아입고 수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읽기도 전에 선입견을 갖고 접근했네요. TV 프로그램이나 광고에서 보는 모습은 아주 단편적인 것이었다.
내가 어릴 때 살던 브루클린은 어디로 갔을까? 이 지역이 언제 리틀 오데사가 되었을까? 당연히 점진적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최근까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그것이 바로 이민자들이 하는 일이 아닌가? 우리는 마치 야음을 틈타듯 슬며시 적대적인 땅으로 와서 세월에 잊힌 곳을 찾아내 우리 것으로 만든다. 우리는 그저 주어지는 곳에서 안락을 찾는다. 코리아타운, 리틀 인디아, 아이언바운드, 리틀 오데사. 우리는 어디든 받아들인다. 어디든 정복하고 만다. 문제는 그 기간이 얼마나 되는가이다. 또한, 우리가 고국에서 봉인한 채로 들여온 문화는 얼마나 오래 지켜낼 수 있는가? 희석될 때까지, 모국의 전통이 뿌옇게 흐려져 흔적만 남을 때까지 얼마나 보존할 수 있는가? 그렇게 잃는 것들은 어떻게 측정하는가?
번역이 좀 아쉽다 싶을 정도로 글을 정말 잘 쓰는 작가님이다. (분명 영어 원문이 더 좋은 글일 것이다.) 세상에, 요리도 잘하는 사람이 글까지 잘 쓰다니 이건 반칙 아닙니까?
미국 남부 요리에 사용하는 버터밀크와 작가님 본인이 10대에 뉴욕 뒷골목을 방황하며 몰두했던 그래피티의 조합. 작가님이 2년 정도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인종을 만나며 이민자들의 음식을 먹고 미국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을 풀어나가는 내용이다. 16개의 챕터에서 미국 남부, 아프리카, 아시아, 애팔래치아 산맥, 유럽 등 각 지역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자리를 잡고 자기 뿌리의 정체성이 확실히 드러나는 음식들을 만드는 식당들을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한국이라는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는 도저히 접해볼 수 없는 다양한 특색 있는 음식들이 등장해서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친해지고 많은 대화를 나누는 작가님의 친화력과 글솜씨,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유려하게 펼쳐진다. 각 챕터 말미에는 서너 개의 레시피가 등장하는데, 텍스트만 있어도 충분히 여러분은 요리할 수 있다며 일부러 사진을 넣지 않았다. 그래서 순전히 글에만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 류의 글에서 없으면 섭섭한(작가 입장에선 쓰디쓴 이야기겠지만)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도 등장한다.
심전도 모니터가 다시 켜지자 어머니는 내게 아이들을 데려가 한국 바비큐를 먹이고 어머니 몫도 포장해 오라고 했다. 아버지의 죽음은 임박한 듯했고 그 모습을 아이들이 보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멀리한 점,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해주지 않은 점에 대해 사과받고 싶었다. 나는 침대로 다가갔다. 아버지의 몸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은 손이었다. 아버지의 손은 언제나 크고 강했다. 기력이 쇠했는데도 손만큼은 남자다워 보였다. 나는 아버지의 힘 빠진 손을 올리고 그 밑에 내 손을 넣었다. 손바닥을 마주 잡은 게 아니라 아버지의 손바닥이 내 손마디를 감싸게 한 것이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을 힘도 없었다. 나는 그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며 가셔도 괜찮다고, 우리는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지금은 유재석보다 더 인기 많은 광고모델이지만 그 열기도 조만간 사그라질 테고, 대중은 또 다른 넷플릭스의 화제작을 시청하며 <흑백요리사>를 잊어버리겠지. 하지만 작가님은 미국에서 계속 한국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이 가득 담긴 음식을 만들며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버번위스키와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이라 믿는다. 내가 작가님의 음식을 먹어볼 일은 없겠지만(남은 생에 미국 켄터키에 여행을 갈 일이 있을까?), 멀리서 작가님의 새 책이 나오면 챙겨서 읽으며 잘 지내고 계신지 종종 확인해 보려고 한다. (조만간 버번위스키만 다룬 책이 또 출간된다고 한다!)
18세기 페루의 어느 다리가 무너졌고, 그 다리를 건너던 다섯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왜 하필 그들이 죽게 됐는지, 이것이 신의 계획이었는지 의문이었던 한 수도사가 그들의 삶을 긴 시간을 들여 되짚어본다.
며칠 전 1주기였던(1심은 7년 6개월 금고형이 선고됐다) 시청역 교차로 차량 돌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허망함을 느꼈을 거고 나도 그랬다. 그냥 평범한 회사원들이 회식하고 나왔다가 황망하게 목숨을 잃은 것 아닌가. 그때 '내가 갑자기 죽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며칠 빠져있던 기억이 난다. 왜 하필 그들이었을까. 난 운이 좋아 살고 있구나.
100년 전에 출간된 소설이지만 지금 읽어도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이다.
거창하게 해제를 달아준 신형철님의 글을 난 잘 읽지 못한다. 이상하게 안 읽힌다. 그분의 다른 책을 읽어보려고 해도 몇 페이지 읽지 못하고 접었다.
책을 읽으며 실시간으로 젠슨 황에게 채찍질당하는 느낌이었다. 지금의 내가 엔비디아에서 일했으면 한 달도 못 버티고 도망쳤을 것 같다. 20대 때 매일 1시까지 야근하며 달리던 시기엔 조금 버텼을지도... 엔비디아 살 걸... AGI가 최종 단계까지 나아가려면 아직 몇 년 남았을 텐데, 지금이 가장 쌀 때 아닐까? 하지만 쫄린다...
민주당 진영의 든든한 선지자 유시민 작가님의 독서노트. 책을 읽다 보면 나는 대학생 시절에 왜 책을 많이 안 읽고는 40대 접어들어서 눈도 침침한데 열심히 책을 읽느라 고생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물론 그때 많이 읽었어도 지금 덜 읽는다는 보장은 없다)
엄혹한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한가운데에서 언제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갈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 사는 대학생과, IMF 극복 후 선진국 대열에 접어들며 신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조금씩 퍼져가는 세태에서 놀고먹은 대학생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긴 어렵다. 뒤늦게 그때의 진실을 알게 된 후 윗 세대의 대학생들에게 일종의 부채의식을 갖게 됐고, 등록금만 축내고 PC방 게임에 빠져든 대학생 역할에 충실하느라 소위 말하는 '교양서'들을 읽지 않아 지성인이 되지 못한 열등감도 생겼다. 젊었을 때 했던 경험들이 세월이 지난 후 인생의 자양분이 되지 못해 자꾸만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른 거라는 누군가의 말마따나 지금이라도 열심히 책을 읽으며 그때의 부채의식과 열등감을 갚아나가고 있는 중이다. 독서의 80%는 소설인 주제에...
어떤 지식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사람은 아주 쉽게 그것을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다. 작가님은 여기 등장하는 책들을 완전히 소화해서 아기새들에게 먹이를 주듯 책을 먹여준다. 다이내믹한 자신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함께 말씀해 주시니 소개하는 책들이 조금은 쉽게 느껴진다. 나도 읽은 몇 안 되는 책들은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구나...' 생각할 기회도 생긴다.
계엄 사태를 헤쳐나가며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다시 읽고 통찰력을 얻는 작가님. 정치 아사리판은 들어가지 마시고 지금처럼 책 쓰시고 방송하시고 낚시하시면서 지원사격 정도만 해주셔도 든든합니다.
소개받은 책 목록. 제목과 약간의 내용은 알지만 통독한 적은 없는 책들이 많다. 다들 그렇지 않을까?
01. 위대한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죄와 벌』
02.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 리영희,『전환시대의 논리』
03. 청춘을 뒤흔든 혁명의 매력 :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공산당 선언』
04. 불평등은 불가피한 자연법칙인가 : 토머스 맬서스,『인구론』
05.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알렉산드르 푸시킨,『대위의 딸』
06.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만나다 : 맹자,『맹자』
07. 어떤 곳에도 속할 수 없는 개인의 욕망 : 최인훈,『광장』
08. 권력투쟁의 빛과 그림자 : 사마천,『사기』
09. 슬픔도 힘이 될까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10.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인가 : 찰스 다윈,『종의 기원』
11. 우리는 왜 부자가 되려 하는가 : 소스타인 베블런,『유한계급론』
12. 문명이 발전해도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 헨리 조지,『진보와 빈곤』
13. 내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일까 : 하인리히 뵐,『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14. 역사의 진보를 믿어도 될까 : E. H. 카,『역사란 무엇인가』
15. 21세기 문명의 예언서: 존 스튜어트 밀,『자유론』
소설의 범주를 '따뜻함'을 기준으로 쭉 펼쳐본다면 좌측엔 정유정/정해연/정보라(아니 왜 다 정씨세요?) 등 서슴지 않고 죽고 죽이는 냉혈한들의 활극이 있을 것이고, 그 반대편에 백수린 작가님이 서있지 않을까? 소설도 날씨를 타는지 뜨거운 여름에 읽으니 신영복 선생님 말처럼 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한다. 살을 에이는 추운 겨울날 따뜻한 유자차를 한 잔 마시며 다시 읽으면 좋겠다.
12월 3일 밤 상황을 뉴스든 유튜브든 잠 못 이루고 지켜본 사람이라면 이번 대선에 당연히 옳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날 밤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헤쳐나간 세세한 기록이 현장감 있게 펼쳐져 있다. 대통령 본인의 생각 + 그 생각이 녹아있는 연설문이 한 쌍으로 나오는 구조의 책. 지금까지 일하는 모습 보면 투표 효능감이 이렇게까지 높은 대통령은 처음이다. 부디 임기 말까지 나라에 큰 사고 없이 본인 건강도 잘 챙기시면서 그토록 하고 싶었던 국민을 위한 정책들 많이 펼쳐주시면 좋겠다.
고등학교 때 집에 있던 세계문학전집으로(무려 세로쓰기로 된) 읽었던 작품. 사실 많은 사람들이 책 내용은 잘 기억 못 하고 그 유명한 첫 문장만 기억할 것 같은데, 나만 그런가? 여하튼 나는 그랬다. 오래전에 읽어서 내용은 기억 잘 안 나고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만 뇌리에 남아있었다. 도서관 서가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버전의 설국이 꽂혀 있길래 더워서 빌려왔다. (더울 땐 겨울 소설을 읽으면 시원해질 거라는 1차원적인 생각)
다시 읽으니 왜 뇌리에 남은 내용이 없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돈 많은 도쿄 남자가 매년 방문하는 시골 마을에 있는 게이샤 고마코와 사랑에 빠지... 지도 않고, 신비로운 인물로 등장하는 다른 여인인 요코에게 그저 신비로움만 느낀다. 그러다 마을에 불이 나고, 요코가 죽고, 은하수가 자신의 마음속으로 흘러들어온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난 도통 모르겠어서 10년쯤 뒤에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회사에서 적당히 일하며 적당히 사는 주인공이 자주 들르는 떡집 아들을 만나면서 생기는 로맨스를 그린 칙릿 소설. ('칙릿'은 일과 사랑을 다루면서도 '일'에 좀 더 방점을 두는 로맨스 장르라고 한다) 책이 무척 얇아서 30분 만에 휘리릭 읽었다. 떡집 강아지라 이름이 '약밥'이인 것이 귀여웠고, 썸을 적당히 타다가 어느 날 그 썸이 무르익은 저녁에 갑자기 손잡고 가까운 모텔로 들어가는 결말이 '아 이것이 요즘 젊은이의 썸인가'싶었다.
언젠가부터 도서관 소설 서가 쪽에 제목만 덩그러니 있는 하드커버의 작은 책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호기심에 꺼내보면 표지는 단일 색의 하드커버가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 지어져 있고, 각 칸에 띄엄띄엄 짧은 구절이 적혀있다. 책등에는 작가명도 없이 제목만 덩그러니 쓰여있어서 '대체 이건 뭐지' 싶어 책장을 넘겨보면 내가 아는 소설가들의 이름이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요즘 책 디자인 트렌드인가? 싶어서 해당 시리즈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 봤다. 위즈덤하우스라는 출판사가 만든 Wefic(Weekly Fiction)이라는 플랫폼에 소설가들이 짧은 소설을 공개해서 연재하고 그 책들을 나중에 출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표지의 비밀은 도서관 책이라서 벌어진 일이었다. 아래 사진처럼 띠지가 있어서 제목과 작가가 바로 보이는데, 도서관 책들은 띠지를 모두 제거하고, 작가명이 붙은 자리에 책의 청구기호 스티커를 붙여버려서 책등에는 제목만, 책표지에는 짧은 구절만 보이는 것이었다.
책은 딱 내 손바닥 만하고, 한 페이지 글자수도 보통 책의 1/2 정도에, 100페이지도 안 되는 단편들이라 30분-1시간 사이에 다 읽을 수 있어서 좋다. 하루에 열 권도 읽을 수 있게 생겼다.
지금까지 약 90편의 소설들이 이 방식으로 출간되었고, 오늘 내 손에는 네 권의 작품이 들려있다.
성해나 <우리가 열 번을 나고 죽을 때>
내 최애 작가님은 시간이 나면 건축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두고 온 여름>의 작가 인터뷰와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가 수록된 <애매한 사이>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이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쓸 단어 하나하나를 어떻게 고르는지, 소설의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는지 잘 알 수 있다. 마치 집을 짓듯이 설계도를 그리고 터를 닦고 뼈대를 세우고 공간을 채워나간다. 그래서 여러 작품에서 공간 표현을 눈에 보이듯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아예 건축을 소재로 하는 작품도 있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이 작품 또한 건축이 소재다. (다만 건축은 거들뿐) 작품 내 표현으로는 '에고'가 낮아서 스스로 얻은 A+ 학점까지 의심하는 건축과 학생이 주인공이다. 이 학생은 모든 것이 불안하다. 자신도 불안하고 재학 중인 대학교에서 건축과를 없앤다는 소문도 있다. 그럼에도 주어진 일은 잘 해낸다. 주인공을 눈여겨본 담당 교수가 주인공과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다른 학생과 짝지어서 방학 중에 경주에 있는 한옥 한 채를 들여다 보고 어떤 방식으로 집을 리모델링할지 숙고해 보라는 과제를 준다.
결국 건축이란, 특히 집을 짓는 건 그 안에 사는 '사람'을 간과하면 안 된다. 경주의 집에 사는 모녀와 두 학생, 그리고 교수와 마을 사람들까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마을에 모이게 된다. 주인공은 사건을 겪으며 공간과 사람의 관계를 조금은 깨우치게 된다. 또한 '차경'이라는 개념이 소개된다. 건축과에서 '과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등장하는 말이라고 한다. '경치를 빌린다'라는 뜻인데, 건축물의 주변 경치를 건물 안으로 들여와 감상 대상으로 삼아 건축의 일부로 활용하는 것이다. 가령 한강이 보이는 집은 거실의 통창을 통해 강을 집 안으로 들여와서 공간을 넓히는 효과를 주는 방식이다. 경주의 오래된 한옥을 배경으로 건축이라는 소재에 인물들을 쌓아 올려 관계로 그 안을 채우는 작가님의 소설 구조를 톺아보며, 작품을 얼마나 공들여 설계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김화진 <개구리가 되고 싶어>
글로 수를 놓는 것처럼 인물들의 감정 흐름을 한 땀 한 땀 그려내는 김화진 작가님의 작품. 앞에 읽은 <우리가 열 번을 나고 죽을 때>와 비슷하게 대조되는 성격을 지닌 두 여성이 등장해서 서로 보완하는 관계가 된다. 가끔 이 작가님이 과도하게 인물의 감정을 파고 들어가서 읽는 사람이 삐끗하는 순간 방향을 잃게 되는데, 이 소설을 읽을 때 조금 그랬다.
정이현 <사는 사람>
오래전 <달콤한 나의 도시>를 쓴 정이현 작가님의 작품. 제목에서 '사는'은 거주하는-구매하는-삶을 영위하는 이라는 뜻으로 다양하게 읽히며 작품 안에서도 그렇게 해석되는 흐름을 볼 수 있다.
수학 전문학원(유명한 학원인 '생각하는 황소'를 모델로 한 학원으로 보인다)의 상담실장으로 일하는 주인공이 크게 두 가지 일을 겪는다.
주인공은 부동산 임장 모임에서 만난 남자와 코드가 맞아 사귀게 된다. 남자와 주인공은 집을 구매하지 않을 거면서(그만한 돈이 없다) 서울의 1급지 아파트들의 목록을 만들어서 주말마다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그 아파트들을 임장 한다. 성수의 어느 부동산에서 이 커플은 마치 그들이 어떤 의도로 임장을 하는지 파악한 듯한 중개사의 몇 가지 조치 - 구매자의 개인정보 공유, 계약금이 들어있는 통장 잔고 공개 등 - 로 마음이 상하게 된다.
주인공은 항상 학원에서 매뉴얼대로 일한다. 이 학원은 그날 배운 진도로 수업 후 시험을 봐서 점수는 실시간으로 학부모에게 1등과 꼴찌의 이름을 포함해 공개되며, 일정 점수를 몇 차례 못 얻으면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된다. (황소가 이런 시스템이라고 들었는데, 우리 아이는 저걸 견딜 수 없을 인물이라 애초부터 보내지 않았다) 어떤 여학생이 학원 시험 점수가 낮으면 집에서 매를 맞는다고 주인공에게 하소연하며 시험 문제만 미리 보여달라고 인스타 DM으로 부탁을 해온다. 주인공은 청소년 학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지만 직접 개입할 수는 없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 시험지 미리 보여주기. 누군가 길에서 도와달라고 청하면 그를 도우려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처럼. 하지만 이 일은 주인공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데...
두 사건을 겪으며 주인공은 대체 '사는'건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며 자아를 찾는다.
역시 작가님이 중년 학부모라 그런지 중년 독자에게 소구하는 솜씨가 대단하다.
예소연 <소란한 속삭임>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마치 반지 원정을 떠나는 것처럼 파티원을 한 명씩 모집한다. 지하철에서 시끄러운 유튜브를 보는 사람에게 조용히 좀 하라고 말을 꺼내는(우린 보통 눈살을 찌푸리고 만다) 시내를 모아가 돕게 된다. 시내는 모아에게 속삭이는 모임에 가입하라고 권유한다.
규칙 1 "비밀을 속삭이진 않으나 그것이 마치 큰 비밀이라도 되는 양 속삭여야 돼요."
그리고 나누는 속삭임.
"저는 호박을 싫어하지만 아무도 그걸 몰라요."
"왜 아무도 몰라요?"
"그냥 먹으니까요."
"싫어한다고 말 안 해요?"
"안 해요."
"왜요?"
"싫어한다고 말하는 게 더 싫어서요."
규칙 2 " 중요하지 않아도 속삭임으로써 중요해져요. 그러니까 우리 사이에 허투루 하는 말은 없는 거죠."
사실 아무 내용이 아니어도 속삭이게 되면 괜히 비밀을 나누는 것 같고 더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둘은 다음 날 명동에서 만나서 시끄러운 사람들을 찾는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수자에게 접근해서 모임에 참여하라고 권유하는데, 처음엔 경계하는 수자를 누그러뜨리는 속삭임이란 역시 뜬금없는 고백.
"저는 청약이 당첨됐는데 잔금을 치르지 못해서 아파트를 날린 적이 있어요."
그렇게 수자가 모임에 합류하고 셋은 속삭이는 것뿐 아니라 시끄럽게 구는 모임도 시도해 본다.
규칙 3 "속삭임으로써 우리는 세상의 전부가 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속삭이는 동안에 예수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면 안 된다."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면 세 명 다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진 않는다. 그러면 어떠랴. 셋이 모임을 하면서 뭔가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시내의 집에 가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층간소음을 연구한다. 시내의 윗집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데 시내의 피해망상 때문에 오히려 윗집에 사는 두리가 고통받는다. 셋과 두리는 그동안 쌓인 오해를 풀게 된다.
그리고 두리가 모임에 합류한다. 사실 두리는 저장강박증이 있어서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고 집에 쓰레기를 쌓아놓은 사람이다. 넷은 연대감을 발휘해 두리의 집을 청소한다. 50리터 쓰레기봉투 열두 묶음이 나왔다.
그리고 넷은 밤새 맥주를 마시며 서로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생의 위기에 처해 있는 네 사람은 이 모임을 통해 자신이 살아있다는, 그리고 서로를 살린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역시 대세 예소연! 조심스레 이 소설로 2025년 문학상을 여러 개 수상하겠다는 예측을 해본다. 최애 성해나 작가님이 조심스레 설계도를 그리며 사건과 인물을 쌓아 올리는 방식이라면 예소연 작가님은 막 쌓는 것 같은데 어느새 다 연결되어 있고 확실한 메시지가 드러난다. - 연대를 통한 '살아 있음' -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그 개와 혁명>보다 이 작품이 난 더 좋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잘, 혹은 못 읽어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이야기. 여러 편의 작품들을 한꺼번에 읽으면 좀 피로해진다. 띄엄띄엄 읽으면 마음을 다루는 작가님의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아무렇게나 사람을 터뜨리고 뭉개고 분해하는 장면이 항상 등장하는 조예은 작가님의 장편. 작곡을 하는 청년이 세이렌(인어)를 만나게 된다. 평소엔 사료나 시리얼(!)을 먹다가 장마철엔 육식으로(생고기를..) 식성이 바뀌는 인어, 주인공의 재능을 훔쳐가는 스승과 연인을 만나게 된다. 남는 건 몇 조각의 뼈 뿐이다. 별로 남는 것도 없지만 읽을 때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마치 쇼츠나 릴스처럼.
걸어서 갈 수 있는, 동네에 새로 생긴 쇼핑몰에 서점이 입점했다! 있던 서점도 없어지는 마당에 새로 생기는 서점이라니 독서중독자에게 단비가 내린다. 책을 읽을 수 있는 큰 테이블이 있고, 서가 사이에 앉을 공간도 많이 있다. 하지만 최근 개인정보가 거하게 털린 YES24 서점이란 게 문제다. YES24는 새 책을 파는 오프라인 서점을 두 군데만 운영하는데, 그 중 한 곳이 동네에 들어온 것이다. 집에 더 이상 책을 꽂을 공간이 없어서 도서관에서 빌려보기만 하고 사는 건 한 달에 한 권 정도 아주 의미있는 책만 알라딘에서 사서 소장하는데, 이제 YES24에서 사야겠다. 망하면 안 되잖아... 어차피 알라딘이나 YES24나 개인정보 제대로 관리 안 하는 건 마찬가지일 테고, 내 개인정보는 이미 공공재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주말에 방문한 그 서점에서 읽은 첫 책. 위픽 소설은 30분이면 읽을 수 있어서 후다닥 읽었다. 어느 슈퍼마켓 안에 있는 몇 명의 초인들이(물건을 투시하는 능력 - '저 사람 품 안에 칼을 들고 있어!', 사람들의 생각이 머리 위에 문장으로 표시되어 이를 읽는 능력 등..) 각자의 사연을 갖고, 품 안에 칼을 들고 있는 한 노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짧은 에피소드. 30분짜리 소설에 이렇게 많은 소재와 이야기거리를 담는 이장욱 작가님 대단하다. 그 옛날 재미있게 봤던 미드 <히어로즈> 생각이 났다.
쿠팡플레이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져 유명세를 탄 <안나>의 원작 <친밀한 이방인>을 쓴 정한아 작가님의 신작 소설. 이 작가님의 소설은 처음 읽어본다.
한때 스타 배우였지만 나이가 든 후 모종의 사정 때문에 중년-노년 전문 배우가 되어 다작을 하는 주인공 '이마치'가 알츠하이머가 의심되어 어느 전문 클리닉에서 치료를 받는다. 효과는 있다고 입소문을 탔지만 공식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한 혁신적인 VR 치료법으로(비싸다) 치료받는 이마치. 이 치료법이란 마치 영화 <인셉션>처럼 의식의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서 기억을 되찾는 것이다. <인셉션>은 꿈의 다층 구조를 차근차근 타고 내려가서 결국 내면의 가장 비밀스러운 잠재의식을 들여다보는 방식이었지만, 이마치는 좀 더 세련되게 VR 안의 AI의 도움을 받아 의식 안에 있는 큰 아파트로 들어간다. 아파트의 각 층은 연도별로 각 나이대의 이미치가 살고 있다는 설정. 가령 60층 꼭대기엔 현재의 이마치가, 29층엔 29세의 이마치가, 43층엔 43세의 이마치가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구조를 아주 잘 설명해 주는 한 마디가 책에 그대로 등장한다.
"실제가 아니면 뭐죠?"
"겹겹이 쌓인 페이스트리요."
아파트를 오르내리며 이마치는 자신의 인생을 회상하며 기억을 회복한다. 이마치의 회상을 독자가 함께 들여다보게 되는데, 우여곡절이 참 많은 삶이다. 사연 하나 없는 배우의 삶이 어디 있겠냐만, 아무래도 소설이다 보니 극적인 사연들이 많이 깔린 인생이다.
반전이 꽤나 등장하는데, 정해연 작가님처럼 자극적인 소재로 만들어낸 매콤하고 속쓰린 반전이 아니다. 슴슴하게 덜 자극적이라 소화가 잘 되는 반전이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인물과 사건으로 이야기의 구조를 얼마나 공들여 설계했는지 알 수 있으며, 감정 과잉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은 작품이었다. <친절한 이방인>도 읽어봐야겠다.
좋은 문장들이 많이 나와서 읽기 즐거웠는데, 몇 개를 가져와본다.
“부부 사이가 끝나는 건 돈이나 사랑이 아니라, 농담이 마를 때야. 부부끼리만 하는 우스갯소리 말이야. 서로를 조금은 두려워하고, 조금은 동정하고, 조금은 경멸하고…… 그런 마음을 웃기는 얘기로도 내뱉지 않게 되면, 그땐 정말 끝이 나는 거지.”
“누구나 자기가 아는 세상 안에서만 살아가니까. 내가 아는 것, 내가 본 것, 내가 받은 것을 줄 수밖에 없는 거야. 자식에게 그 이상의 것을 주고 싶어도 그게 뭔지 몰라. 아니, 상상도 할 수가 없지. 내 손에 있는 것 말고는 줄 게 없어.”
VR 치료 직후 자해와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경우는 흔했다. 치료가 트라우마를 유발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마치는 물론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 좋은 기억만 남길 수는 없으며, 무작위로 차오르는 기억을 막을 방법도 없었다. 고통스러운 기억들은 매번 새롭게 아귀를 벌리고 달려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VR 치료를 중단하는 알츠하이머 환자는 없었다. 자신이 누군지를 잊어버리는 쪽과 자신이 누군지를 아는 쪽. 어느 쪽이나 지옥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지옥을 선택했다.
전에 읽고는 '사타구니 냄새'같은 소설이라고 했던 <시티 뷰>의 우신영 작가님의 신작.
'고산대'라는 가상의 지방대 국문학과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이다. 시작하자마자 바로 주인공을 저세상으로 보내버린다. 주인공의 죽음에 얽힌 사연과 부조리를 거꾸로 혹은 앞으로 밝혀나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1부 - 언젠가 교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고문을 당하며 교수들의 온갖 부조리와 부패를 옆에서 묵묵히 수행하며 9년째 박사과정에 머물러 있는 남자. 주인공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을 조금씩 눈치채다가 나중엔 주인공이 남긴 기록을 보게 되어 분노하지만 그 분노는 소극적으로 발현된다.
2부 - 주인공의 이야기. 어릴 때부터 떡집을 하는 집에서 자라며 뚱뚱해진 몸을 갖게 되어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며 자아가 거의 무너졌지만(자아가 무너지는 계기가 있는데, 후우... 여기 차마 쓸 수가 없다), 공부는 잘해서 서울대를 나와 고산대 교수로 임용된다. 하지만 비대한 몸과 어눌한 말투 때문에 노골적으로 학교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며 남은 티끌만 한 자아마저 무너져 결국 목숨을 끊게 된다.
3부 - 주인공의 대학원생 제자(몸에 자꾸 피어싱을 늘리고, 남의 말에 크게 신경 안 쓰는 캐릭터다)가 주인공이 죽음까지 이르게 된 과정을 남긴 기록을 보고 대신 복수를 해준다.
빌런 - 1,2,3부 내내 등장하는 교수들. 작가님 제가 알기로 서울대에서 학-석-박 다 마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지방 사립대에서 벌어지는 교수들의 부조리와 부패를 다 알고 계시나요? 혹시 지금 교수로 재직 중인 곳에서 벌어지는 일...? 너무나 현실적으로 벌어질 법한 뒷돈 챙기기 및 대학원생 굴려먹기 수법들이 수없이 많이 등장한다. 다행히 메인 빌런은 소설 말미에 응징을 당한다.
작가님께 죄송하지만 이번엔 겨드랑이 냄새 같은 소설이다. 읽는 내내 묘한 불쾌감이 맴돈다. 주인공은 유년기에 친오빠에게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하며(그 수단과 방법이... 입에 담지 못할 정도다), 그때 이미 어딘가 부서진 멘털을 입이라는 구멍으로 자꾸 크림빵을 넣었다 쏟아냈다 하며 더 무너뜨리고, 학교에서 아를 잃고, 주인공의 제자는 몸에 구멍을 뚫으며 주인공이 잃은 자아를 대신 찾아주기 위해 노력한다. 구멍이라는 게 딱히 아름다운 장치는 아니다. 특히 그게 몸에 있는 구멍이라면. 크림빵은 주인공이 쉽게 먹을 수 있고 어린 시절 예쁜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먹고는 반해버린 음식인데, 그게 성인이 되어 예쁜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 기억이 되고, 크림빵을 계속 먹으면서 자신의 몸에 가득 쌓여있는 떡을 대체하려고 한다. 뭔가 이상해..
다 읽고 나니 정말 피곤하다. 잠들기 전에 쇼츠나 릴스를 잠깐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몇 시간이 흘러간 경험을 누구나 한 번은 가지고 있을 거다. 겨우 폰을 내려놓고 잠이 들려고 할 때 느껴지는 눈의 피곤함, 이렇게 시간을 버렸다는 자괴감, 다가올 아침에 대한 두려움, 뭘 봤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뭔가에 절여져 흐물거리는 정신. 이런 느낌들이 왜 책을 읽고 나서 몰려오는 것인가.
다시 언급하지만 작가님은 동화 작가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안에서 이렇게 극과 극의 이야기가 흘러나올 수 있다는 점이 새삼 놀랍다.
글로벌 제약업계에서 가장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비만약에 대해 쓴 책.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약은 머크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지만 비만약들 매출액을 합치면 이미 적응증 기준으로는 가장 많이 팔리는 약으로 등극했다. (2025년에는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젭바운드와 노보 노디스크의 오젬픽+위고비가 모두 10위권 안에 안착할 거라는 예상)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를 맞고 있다고 한다. (노보노 디스크 아니고 노보 노디스크다)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다루는 종류의 약이 아니라 그 작용기전이 궁금해서 책을 빌려왔는데, 저자 요한 하리에 대한 논란이 있다고 한다. 영국 인디펜던트 지의 스타 기자였는데, 상습적인 표절과 자신을 비판한 언론인들의 위키피디아 페이지를 악의적으로 조작한 일로 기자를 그만두고 책만 쓰고 있다. (인터뷰)
마치 비만약들의 과학적 분석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완벽하게 분석한 책인 것처럼 소개된 것 치고 책에 과학적 내용은 그렇게 많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GLP-1 제제의 기전을 소개하는 부분은 아주 간략하게 인터뷰만 되어 있다.
대신 고도비만으로 사회적 눈총을 받지만 꿋꿋이 행복하게 살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친구를 위해 책을 쓴다는 감성팔이와, 작가 본인이 173cm에 92kg이라(아니 그럼 난 어쩌나) 다가올 심혈관/뇌질환이 걱정되어 오젬픽을 맞기 시작하여 어떤 효과와 부작용을 경험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좀 더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막판에는 뜬금 일본식 식생활이 얼마나 비만 예방에 효과가 있는지 찬사를 보내는 데에 큰 비중을 할애한다.
이게 제약산업을 다룬 책인지 사회과학 책인지 심리학 책인지 도통 그 정체성을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내용들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난 책을 꽤나 읽는 사람이니 어떤 부분을 무시하고 어떤 부분을 받아들일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저자가 비판하는 거대 식품 기업들의 문제점 - 혀를 속이기 위해 과도하게 많은 화학물질을 사용해서 만들어낸 식품들로 전 세계 사람들을 살찌우고 책임은 지지 않는 - 에는 동의한다. 이러한 식품 기업들의 행태를 어느 정도 정상화 시켜놓지도 못한 상태로(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다), 이 식품들 때문에 비만이 된 사람들이 쉽게 살을 뺄 수 있는 약이 등장해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진짜 문제를 깨닫고 이를 고치려고 기업들과 힘든 싸움을 하는 대신 쉬운 방법을 선택하게 되니, 결국 살이 빠져서 행복해진 사람들 뒤에서 식품/제약 기업들만 미소 짓는 꼴이 된다. 비만약으로 약화된 사람들의 식욕 때문에 식품기업들의 매출이 감소될 수도 있지만 다양한 마케팅 수단과 새로운 제조법을 개발해서 만회하지 않을까. 그리고 제약업계는 아마 비만약의 다변화를 꾀하면서(가령 우울증+비만 동시 치료와 같은) 또 다른 기회를 노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왠지 이번 달은 위픽 시리즈를 많이 읽어서 그런지 짧은 소설들이 당기길래 빌려왔다. -라고 말하지만 사실 매운맛 편에 실린 최애 성해나 작가님의 작품을 읽고 싶어서 가져온 책들이다. (그럼 매운맛만 읽지 순한맛은 뭐하러 읽었냐는 질문엔 난 땡초김밥과 참치김밥을 하나씩 번갈아 먹으며 두 줄은 먹어줘야 성이 차는 사람이라고 대답하련다) '기담'이라는 제목치고 수록된 작품들이 썩 재미도 자극도 없었다. 굳이 순한맛과 매운맛을 구분해서 책을 낸 이유도, 구분의 기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이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는데, 책장을 덮고 나니 아무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 뇌가 알아서 필터링을 해서 정말 중요한 정보만 기억하려는 시도였다면 다행이고, 노화의 증거라면 불행이겠지. 아, 성해나 작가님 작품 <아미고>는 미래에 로봇(휴머노이드)의 등장으로 점점 설 자리를 위협받아 위기를 느끼는 스턴트맨의 이야기인데, 크게 인상적이진 않았다. 후술할 성혜령 작가님의 소설집에 수록된 <마구간에서 하룻밤>도 실려있다.
그러니까 가장 큰 문제는 수록된 소설들 모두 전혀 오싹하지 않았다는 것. 책을 너무 많이 읽었나 보다...
이 소설집의 장르를 굳이 나누자면 서스펜스. 자신의 삶에 폭력적으로 난입하는 타인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 주인공이나, 넘치는 분노를 쌓아뒀다가 한 방에 터뜨리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작가님의 서술 방식이 사막처럼 건조하고 등장인물의 감정변화도 크게 요동치지 않는 와중에 벌어지는 사건들은 몹시 난폭하며 거칠어서 한 편의 부조리극을 감상하는 기분이다. 굳이 찾아 읽고 싶지 않은 스타일의 소설이다. 뭐랄까,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알바가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서 음료수를 하나 사 왔는데, 나중에 보니 그 알바가 연쇄살인범이었다, 그래서 그 편의점은 왠지 찝찝해서 다시 가기 좀 그렇다, 이 정도의 느낌이랄까.
<오렌지와 빵칼>의 작가 청예가 쓴 경장편. '수빈'이라는 외모와 실력을 다 갖춘 아역배우의 공백이 생겨 이를 메꾸려는 '여름'과 '겨울'의 살벌한 경쟁을 그려냈다. 여름이는 연기 실력이 좋지만 외모가 떨어지고, 겨울이는 외모가 빼어나지만 연기를 못한다. 10대라고 여자의 질투를 무시하면 안 된다. 둘이 서로를 질시하고 비난하는 걸 보면 어른 못지않게 치열하다. 칼부림이 안 난 결말에 안도하며 책장을 덮었다.
책 내용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문구/대화는 딱 세 개면 충분하다.
때때로 사람들은 적에게도, 같은 편에게도 폭탄을 던지는 미치광이들이었다.
"하지만 어른들이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했어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너희의 진짜 적이란다."
둘은 사이좋게 각자의 머리칼을 쥐었다.
앞으로 3천 권의 책을 더 읽어야 할 내게 가장 중요한 건 그때까지 버텨줄 수 있는 눈이다. 어디서 분서갱유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책이 없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고, 나이를 x축 독서가능시간을 y축으로 하는 그래프를 그리면 분명 우상향 하는 곡선이 나올 테니 책 읽을 시간도 넉넉하게 남아 있고, 내가 어디에서 사고를 당하거나 심각한 병에 걸리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예정이니 결국 책을 계속 읽을 수 있는 눈이 멀쩡히 유지될 것인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안과의사가 쓴 책이 있어서 "그래서 루테인 지아잔틴 먹어야 하나요?!"를 외치며 책을 빌려왔다.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는 원리를 설명하고, 몇 가지 안질환을 설명하고, 레이저의 사용과 시력교정수술을 설명한다. 중간에 노안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마치 손톱이 자라는 것처럼 수정체도 나이가 들수록 두꺼워져서 수정체를 조절하는 근육의 힘으로 더 이상 수축과 이완 조절이 안 돼서 가까운 사물이 잘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 노안이라고 한다. 근육의 힘이 떨어지는 현상이 아니라는 뜻! 그리고 약한 근시가 있는 사람은 노안 효과로 인해 더 이상 안경을 안 써도 되는 경우가 있다는데 (황금 근시라고 부른다고 한다) 제발 그게 나였으면 한다.
아내는 선천적으로 시력이 아주 좋아서 40대 중반에도 아직 1.0의 시력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안경을 안 쓰면 2m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구분할 수 없는 정도의 시력이다. 자... 여기에서 태어난 아이의 시력은 과연 뽑기에 성공했을까? 다행히도 엄마의 유전자를 받아온 것 같다. 책도 많이 읽고 TV도 많이 보는 어린이인데 시력이 10살이 넘어도 짱짱한 편이다.
책에 소개된 흥미로운 내용인데, 동아시아 유소년들이 전 세계 근시 유병률에서 압도적인 1위라고 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근시는 가시광선의 빨주노초파남보 중 보라색 파장을 많이 쬐면 예방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동아시아의 가련한 유소년들은 야외활동을 적게 하고 실내 생활(결국 공부다)의 비중이 큰 생활 패턴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근시가 진행되어 안경을 쓰게 되고, 안경은 자외선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는데 자외선 바로 옆에서 따라오는 보라색 파장까지 함께 차단되어 근시 예방을 방해하는 악순환이 생긴다. 시력을 버리고 학업성취도를 얻어낸 동아시아의 학생들은 과연 행복할까?
보라색 파장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설명한 과학동아의 기사. 샤프란꽃 추출물에 들어있는 크로세틴이라는 성분이 근시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루테인 지아잔틴은??), 댓글이 인상적이다.
생계형 의사 - 정말로 생계를 위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 들으면 기가 찰 표현이다. 돈을 벌 기회가 아예 박탈된 경우에나 생계가 위협받는다고 하지, 의사들은 지방에 가면 '세후'로 월 2-3천만 원씩 주는 일자리들이 허다하지 않나? 잘 나가는 다른 성형외과/피부과 의사들처럼 편하게 돈을 갈퀴로 쓸어 담아서 롤스로이스나 벤틀리를 타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고 해서 '생계'라는 단어를 감히 냉큼 꺼내버리는 대한민국 최고존엄 전문직의 생계 포르노를 감상해 보자. 개원하는 의사가 대출을 잔뜩 받아서 최신 의료기기 채워놓고 인테리어도 화려하게 해 놨는데 파리만 날려서 빚쟁이가 됐다. 이러니 의사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라는 식의 기사를 보며 혀를 찬 적도 있다. 생계를 위협받지 않으려고 그 고생을 해서 전문직 된 거 아닙니까?
유쾌한 분투기 - 생계유지를 위해 치열한 싸움을 하는 사람이 유쾌할 수 있나 모르겠다. 있는 힘을 다해 싸우는 와중에 즐겁고 상쾌하다니. 이러면 제대로 싸움을 하는 마음가짐이 아니거나 생계에 별다른 위협을 받고 있지 않는 상황 아닐까? 영화판에서 허구한 날 쓰는 '유쾌한 반란'이라는 표현이 차라리 신선하게 들린다.
책을 몇 권 냈던 작가라 이제 자신의 정체성까지 접근해서 신랄하게 파헤치려나 생각하고 책을 골라왔더니, '그냥 편히 죽지 뭘 그렇게 명줄을 잡고 있겠다고 아등바등하나?', '의사가 하라는 대로 안 하면 진상이고 자기 건강에 무책임한 사람 아냐?'라며 무지렁이 같은 환자들을 탓하고, '나도 잘해주고 싶은데 정부가 돈을 쥐꼬리만큼 주는 걸 어떡해', '의사들이 바이탈과 지원 안 하는 건 다 정부 탓이야!'라고 수가를 제멋대로 정해서 돈을 많이 못 벌게 하는 정부를 탓하고 있다.
의사협회 익명게시판에 올려서 의사들끼리만 돌려봐도 충분할 것 같은 글을 굳이 모아서 대중한테 읽으라고 책을 내는 용기에 감탄했다. 이렇게 대중들이 계몽되면 의사들이 좀 더 쉽게 돈을 벌고 편하게 일할 수 있을 거라는 전략이 숨겨져 있다면 대단히 영리한 거고.
예전에 읽은 <애도하는 게 일입니다>라는 책에서 무연고자 장례의 개념을 알게 됐다면 이 책에선 최근의 장례 트렌드를 알 수 있게 된다. 트렌드라고 해봤자 병원에서 죽고 병원 장례식장 - 화장장으로 이어지는 정형화된 코스지만, 그 속에서 일하는 장례지도사의 애환도 조금 들여다보게 된다.
한겨레출판에서 낸 책이라 그런지 장례 문화에서의 퀴어-페미까지 다루는 걸 보고 그 부분은 주의 깊게 읽지 않았다. 내 정치사회적 성향이 왼쪽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장례식에서 퀴어니 페미니 이런 주제를 누가 신경 쓰겠어?'라는 생각을 하는 것 보니 극좌는 아니고 가운데에서 약간 왼쪽으로 간 정도로 조금씩 이동했나 보다.
중년 남성의 위기 속 사정을 그려낸,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 <자기 개발의 정석>. 그 작가님의 다른 장편이 서가에 있길래 가져왔다.
신부님과 의사가 아프리카의 부족 간 내전이 벌어지는 한 나라에서 봉사하다가 스쳐 지나가고, 각자 인간이 인간에게 벌이는 살육의 현장을 목도하고 회의감에 빠진다. 한국에 돌아와서 둘은 다시 엮이게 된다.
독립영화판에서 특이한 시선의 영화를 만들던 감독이, 갑자기 블록버스터영화를 연출하게 된 느낌이다. 의사의 사명감과 종교적 구원이 물과 기름처럼 잘 섞이지 않아서 각자의 자리를 맴돈다. 난 여전히 중년의 그 사정이 더 좋다.
또 위픽으로 나온 소설을 하나 집어 들었다. 믿고 읽는 정보라 작가님 소설이다. 가까운 미래에 정부가 인간의 뇌를 통째로 데이터화시키는 프로젝트를 돌린다. 폐교된 대학교 기숙사에 지원자들을 입소시켜서 하루에 몇 시간씩 그들의 뇌를 시스템에 업로드하는 방식이다. 갈 곳도 미래도 돈도 없는 사람들이 더 이상 팔 게 없어서 자신의 의식과 기억 팔아 연명하는 블랙미러적 미래의 모습이 무척 현실적이다. 다른 호실에 사는 또라이 같은 불쾌한 입소자가 주인공의 공간에 물리적으로 침입하려고 하고, 시스템의 허점을 노린 신경망 피싱이 벌어져 주인공은 점점 피폐해진다. 계속 피해자 입장이었던 주인공이 결말에 와서 가해자가 되는 순간, 큰 희열감이 느껴지는 독자의 모습을 작가님은 다 설계해 놓으신 걸까?
위픽 소설집은 정성스러운 작가 인터뷰를 책 말미에 실어놓는다. 이 소설은 정보라 작가님 인터뷰로 완성된다. 9년 동안이나 소설의 공간과 비슷한 원룸에서 살아온 작가님이 소설로 불쾌한 사람들을 죽여버리는 카타르시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