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하리
글로벌 제약업계에서 가장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비만약에 대해 쓴 책.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약은 머크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지만 비만약들 매출액을 합치면 이미 적응증 기준으로는 가장 많이 팔리는 약으로 등극했다. (2025년에는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젭바운드와 노보 노디스크의 오젬픽+위고비가 모두 10위권 안에 안착할 거라는 예상)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를 맞고 있다고 한다. (노보노 디스크 아니고 노보 노디스크다)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다루는 종류의 약이 아니라 그 작용기전이 궁금해서 책을 빌려왔는데, 저자 요한 하리에 대한 논란이 있다고 한다. 영국 인디펜던트 지의 스타 기자였는데, 상습적인 표절과 자신을 비판한 언론인들의 위키피디아 페이지를 악의적으로 조작한 일로 기자를 그만두고 책만 쓰고 있다. (인터뷰)
마치 비만약들의 과학적 분석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완벽하게 분석한 책인 것처럼 소개된 것 치고 책에 과학적 내용은 그렇게 많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GLP-1 제제의 기전을 소개하는 부분은 아주 간략하게 인터뷰만 되어 있다.
대신 고도비만으로 사회적 눈총을 받지만 꿋꿋이 행복하게 살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친구를 위해 책을 쓴다는 감성팔이와, 작가 본인이 173cm에 92kg이라(아니 그럼 난 어쩌나) 다가올 심혈관/뇌질환이 걱정되어 오젬픽을 맞기 시작하여 어떤 효과와 부작용을 경험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좀 더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막판에는 뜬금 일본식 식생활이 얼마나 비만 예방에 효과가 있는지 찬사를 보내는 데에 큰 비중을 할애한다.
이게 제약산업을 다룬 책인지 사회과학 책인지 심리학 책인지 도통 그 정체성을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내용들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난 책을 꽤나 읽는 사람이니 어떤 부분을 무시하고 어떤 부분을 받아들일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저자가 비판하는 거대 식품 기업들의 문제점 - 혀를 속이기 위해 과도하게 많은 화학물질을 사용해서 만들어낸 식품들로 전 세계 사람들을 살찌우고 책임은 지지 않는 - 에는 동의한다. 이러한 식품 기업들의 행태를 어느 정도 정상화 시켜놓지도 못한 상태로(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다), 이 식품들 때문에 비만이 된 사람들이 쉽게 살을 뺄 수 있는 약이 등장해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진짜 문제를 깨닫고 이를 고치려고 기업들과 힘든 싸움을 하는 대신 쉬운 방법을 선택하게 되니, 결국 살이 빠져서 행복해진 사람들 뒤에서 식품/제약 기업들만 미소 짓는 꼴이 된다. 비만약으로 약화된 사람들의 식욕 때문에 식품기업들의 매출이 감소될 수도 있지만 다양한 마케팅 수단과 새로운 제조법을 개발해서 만회하지 않을까. 그리고 제약업계는 아마 비만약의 다변화를 꾀하면서(가령 우울증+비만 동시 치료와 같은) 또 다른 기회를 노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