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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란 무엇인가

양성관

by 김알옹
'생계형 의사 양성관의 유쾌한 분투기'라는 카피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출처: 교보문고)


생계형 의사 - 정말로 생계를 위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 들으면 기가 찰 표현이다. 돈을 벌 기회가 아예 박탈된 경우에나 생계가 위협받는다고 하지, 의사들은 지방에 가면 '세후'로 월 2-3천만 원씩 주는 일자리들이 허다하지 않나? 잘 나가는 다른 성형외과/피부과 의사들처럼 편하게 돈을 갈퀴로 쓸어 담아서 롤스로이스나 벤틀리를 타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고 해서 '생계'라는 단어를 감히 냉큼 꺼내버리는 대한민국 최고존엄 전문직의 생계 포르노를 감상해 보자. 개원하는 의사가 대출을 잔뜩 받아서 최신 의료기기 채워놓고 인테리어도 화려하게 해 놨는데 파리만 날려서 빚쟁이가 됐다. 이러니 의사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라는 식의 기사를 보며 혀를 찬 적도 있다. 생계를 위협받지 않으려고 그 고생을 해서 전문직 된 거 아닙니까?


유쾌한 분투기 - 생계유지를 위해 치열한 싸움을 하는 사람이 유쾌할 수 있나 모르겠다. 있는 힘을 다해 싸우는 와중에 즐겁고 상쾌하다니. 이러면 제대로 싸움을 하는 마음가짐이 아니거나 생계에 별다른 위협을 받고 있지 않는 상황 아닐까? 영화판에서 허구한 날 쓰는 '유쾌한 반란'이라는 표현이 차라리 신선하게 들린다.


책을 몇 권 냈던 작가라 이제 자신의 정체성까지 접근해서 신랄하게 파헤치려나 생각하고 책을 골라왔더니, '그냥 편히 죽지 뭘 그렇게 명줄을 잡고 있겠다고 아등바등하나?', '의사가 하라는 대로 안 하면 진상이고 자기 건강에 무책임한 사람 아냐?'라며 무지렁이 같은 환자들을 탓하고, '나도 잘해주고 싶은데 정부가 돈을 쥐꼬리만큼 주는 걸 어떡해', '의사들이 바이탈과 지원 안 하는 건 다 정부 탓이야!'라고 수가를 제멋대로 정해서 돈을 많이 못 벌게 하는 정부를 탓하고 있다.


의사협회 익명게시판에 올려서 의사들끼리만 돌려봐도 충분할 것 같은 글을 굳이 모아서 대중한테 읽으라고 책을 내는 용기에 감탄했다. 이렇게 대중들이 계몽되면 의사들이 좀 더 쉽게 돈을 벌고 편하게 일할 수 있을 거라는 전략이 숨겨져 있다면 대단히 영리한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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