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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크림빵

우신영

by 김알옹

전에 읽고는 '사타구니 냄새'같은 소설이라고 했던 <시티 뷰>의 우신영 작가님의 신작.


'고산대'라는 가상의 지방대 국문학과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이다. 시작하자마자 바로 주인공을 저세상으로 보내버린다. 주인공의 죽음에 얽힌 사연과 부조리를 거꾸로 혹은 앞으로 밝혀나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1부 - 언젠가 교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고문을 당하며 교수들의 온갖 부조리와 부패를 옆에서 묵묵히 수행하며 9년째 박사과정에 머물러 있는 남자. 주인공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을 조금씩 눈치채다가 나중엔 주인공이 남긴 기록을 보게 되어 분노하지만 그 분노는 소극적으로 발현된다.

2부 - 주인공의 이야기. 어릴 때부터 떡집을 하는 집에서 자라며 뚱뚱해진 몸을 갖게 되어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며 자아가 거의 무너졌지만(자아가 무너지는 계기가 있는데, 후우... 여기 차마 쓸 수가 없다), 공부는 잘해서 서울대를 나와 고산대 교수로 임용된다. 하지만 비대한 몸과 어눌한 말투 때문에 노골적으로 학교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며 남은 티끌만 한 자아마저 무너져 결국 목숨을 끊게 된다.

3부 - 주인공의 대학원생 제자(몸에 자꾸 피어싱을 늘리고, 남의 말에 크게 신경 안 쓰는 캐릭터다)가 주인공이 죽음까지 이르게 된 과정을 남긴 기록을 보고 대신 복수를 해준다.

빌런 - 1,2,3부 내내 등장하는 교수들. 작가님 제가 알기로 서울대에서 학-석-박 다 마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지방 사립대에서 벌어지는 교수들의 부조리와 부패를 다 알고 계시나요? 혹시 지금 교수로 재직 중인 곳에서 벌어지는 일...? 너무나 현실적으로 벌어질 법한 뒷돈 챙기기 및 대학원생 굴려먹기 수법들이 수없이 많이 등장한다. 다행히 메인 빌런은 소설 말미에 응징을 당한다.


작가님께 죄송하지만 이번엔 겨드랑이 냄새 같은 소설이다. 읽는 내내 묘한 불쾌감이 맴돈다. 주인공은 유년기에 친오빠에게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하며(그 수단과 방법이... 입에 담지 못할 정도다), 그때 이미 어딘가 부서진 멘털을 입이라는 구멍으로 자꾸 크림빵을 넣었다 쏟아냈다 하며 더 무너뜨리고, 학교에서 아를 잃고, 주인공의 제자는 몸에 구멍을 뚫으며 주인공이 잃은 자아를 대신 찾아주기 위해 노력한다. 구멍이라는 게 딱히 아름다운 장치는 아니다. 특히 그게 몸에 있는 구멍이라면. 크림빵은 주인공이 쉽게 먹을 수 있고 어린 시절 예쁜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먹고는 반해버린 음식인데, 그게 성인이 되어 예쁜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 기억이 되고, 크림빵을 계속 먹으면서 자신의 몸에 가득 쌓여있는 떡을 대체하려고 한다. 뭔가 이상해..


다 읽고 나니 정말 피곤하다. 잠들기 전에 쇼츠나 릴스를 잠깐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몇 시간이 흘러간 경험을 누구나 한 번은 가지고 있을 거다. 겨우 폰을 내려놓고 잠이 들려고 할 때 느껴지는 눈의 피곤함, 이렇게 시간을 버렸다는 자괴감, 다가올 아침에 대한 두려움, 뭘 봤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뭔가에 절여져 흐물거리는 정신. 이런 느낌들이 왜 책을 읽고 나서 몰려오는 것인가.


다시 언급하지만 작가님은 동화 작가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안에서 이렇게 극과 극의 이야기가 흘러나올 수 있다는 점이 새삼 놀랍다.


<언제나 다정 죽집>은 동일한 작가님의 동화다. 1~3학년 추천도서이기도 하다. (출처: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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