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팡
지난 글에 언급한 대로, 요즘 한국 현대소설은 PC/퀴어/페미니즘/안온/다정/무해 키워드가 없으면 팔리지 않는지 대부분의 작품들이 저 공식을 따라가고 있다. 읽다 보면 조금 피로감이 생긴다.
그래서 집어든 중국 소설. 사실 한국에 소개되는 중국 소설들은 또 대부분 문화대혁명 시기의 비극이나 지금처럼 G2로 올라서 미국과 어깨를 겨루기 전의 가난한 시절이 이야기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많다. 위화의 소설이나 모옌의 소설이 그렇고, 심지어 SF소설도 그때를 다룬다. (삼체)
팡팡의 장편소설 <연매장>은 일제 패망 이후 한국전쟁까지 약 7-8년간 벌어진 토지개혁이 역사적 배경이다. 중국 공산당이 계급이론에 따라 '지주'의 토지를 인민에게 분배하면서 땅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은 모두 지주로 몰려 자아비판을 하고 인민재판을 받고 죽었다. 이때 죽은 사람만 2-3백만 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문화대혁명의 광기가 이때에도 있었던 것이다.
이 소설의 구성은 감탄을 자아낸다. 2000년대에 아들과 행복하게 살던 주인공이 갑자기 혼이 나간 사람이 되어 멍한 상태로 육신만 현생에 존재하면서 기억 속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그 기억은 18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토지개혁 때 주인공의 가족이 모두 죽고 주인공 혼자 살아남게 되는 끔찍한 기억을 시간의 역순으로 밟아 올라간다. 주인공의 아들은 어머니의 저런 상태를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와중에 자신의 출생의 비밀과 어머니 인생의 비극을 아버지가 남긴 일기와 우연히 만난 인연을 통해 알게 된다. 어머니의 기억 두세 편 - 아들이 차근차근 발견해 나가는 퍼즐 두세 편 - 다시 어머니의 기억 - 아들의 퍼즐. 이런 식의 구성이 이야기를 아주 흥미롭게 만든다. 결국 모든 퍼즐이 풀리고 어머니의 기억도 완성된다.
10부작 정도의 드라마로 만들면 딱 어울릴 것 같은 구성인데, 문제는 이 책이 중국 정부에 의해 금서로 지정됐다는... 과거 공산당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서 비롯된 광기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내용이라 감추고 싶었나 보다. 중국인들이 보면 불편할 만한 내용일 수도 있고, 정부가 허락하지도 않을 것 같으니 중국 내에선 수요가 적을 것 같고, 다른 나라 사람은 중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내용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으니 수요가 적을 것 같고, 결과적으로 망하게 되는 드라마겠군.
그럼에도 뛰어난 구성 덕분에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다. 이 맛에 장편소설 읽는다. 가끔 중식도 먹고 일식도 먹고 양식도 먹듯이 다른 나라 소설들을 읽어주면 한국 소설을 읽는 맛도 더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