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석
의사 출신 작가님의 단편. 직업환경의학과라는 특이한 전공을 택하신 분이다. 이 전공은 산업현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바깥 요소, 직업적인 면과 환경적인 면을 다루는 분야다. 우리나라에서는 민주화운동 시기에 고 문송면 님의 수은중독으로 인한 죽음이나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발생한 많은 죽음을 놓고 투쟁한 결과로 직업병 예방을 위한 산업의학과가 설립되었다. 그 산업의학과가 직업환경의학과로 이름을 바꿔서 지금에 이르렀다. 작가님 본인은 소설을 쓰는 분이니 자신의 본업을 조명받는 걸 좋아할지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다른 전공보다 뭔가 사명감을 더 갖고 일하는 분들 같고, 산업재해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돈보다 사람 생명이 경시되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외면할 수는 없어서 잠시 들여다봤다.
책은 서사도 단락구분도 없이 그냥 자기 생각을 계속 의식의 흐름대로 나열하는 형식이라 몹시 읽기 고통스러웠다. 그래, 뭐 배경이 특이하고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는 고귀한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독자에겐 고통을 좀 줘도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100페이지 남짓한 짧은 소설을 힘들게 읽었다.
본인의 입장은 아니고 '이런 의견이 많다'정도로 서술해 놨지만 몹시 동감하는 단락이 있어서 가져왔다.
요즘 소설은 스케일이 작다! 요즘 소설은 피씨/퀴어/페미니즘 아니면 쓰지를 못한다! 요즘 소설은 안온/다정/무해한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다! '요즘 소설'의 정의를 가르치는 학원이 있나 싶을 정도로 비슷비슷한 불만들.
물론 소설도 출판사 입장에선 판매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소비자인 독자층을 고려해서 이런 식으로 트렌드를 가져갈 수밖에 없긴 하지만, 피씨/퀴어/페미니즘/안온/다정/무해 키워드를 벗어난 소설은 신간 목록을 뒤져봐도 여간해서는 찾을 수 없다. (심지어 SF/역사/스릴러 등 장르소설에서도 저 키워드들을 빼놓지 않는다) 비슷한 주제를 변주해 놓은 소설들이 워낙 많으니 조금만 읽어도 피로감이 몰려온다. - 이렇게 써놓으면 '당신이랑 조선일보랑 다를 바가 뭐야?!'라고 혼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