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수
요즘도 그런 내용이 교과서에 실려있는지 모르겠지만, 라떼는 '우리나라는 5천 년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을 굉장히 강조하며 이를 자랑스러운 것으로 인식시키는 교육을 받았다. 어느새 다문화/외국인 인구 비율이 2025년 말 기준으로 5%를 넘어간 요즘에도 사회에서는 비단 인종과 국적뿐만 아니라 성별, 연령, 성정체성, 직업, 교육 수준, 거주지, 출생지, 외모 등을 기준으로 수많은 차별행위와 표현들이 숨 쉬듯 난립한다. 노키즈존, 노시니어존, 노차이니즈존은 그 대표적인 예다. 헌법에 떡하니 쓰여있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는 말은 가뿐히 무시된다. 법이 없어서 그런가?
헌법 제11조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의 사례들을 보여주고, 차별금지법으로 이를 대응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필요성을 무겁지 않게 설명한다. 나 포함 많은 사람들이 차별금지법이 자칫 국민의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까지 침해하는 족쇄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차별금지법의 대상이 되는 영역은 (1) 공공서비스, (2) 고용, (3) 재화와 용역의 이용이나 공급, (4) 교육, 이렇게 네 영역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네 영역에서의 차별만 금지되고 이 영역 밖에서의 차별은 법으로 규율되지 않는다.
(1) 주민센터에 서류를 발급받으러 갔는데, 직원이 여성은 한없이 기다리게 하고 남성은 즉시 발급해 준다.
(2) 한 대기업이 업무능력과 무관한 장애를 가진 사람의 채용을 취소한다.
(3) 어느 카페는 아기띠에 아이를 안고 온 엄마에게는 커피를 판매하지 않는다.
(4)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에서 남자아이는 발레를 수강할 수 없다.
이와 같은 행위가 차별금지법에서 규정하는 차별인 것이다. 그럼 '내가 내 카페에서 손님을 골라 받을 자유가 있는 것 아니냐'라는 말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 부분에서 저자는 차별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을 강조하며 좀 약하다 싶은 논리로 대응한다. 차별은 나쁘다. 차별이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사회가 결국 히틀러를 낳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차별하면 안 된다. 이런 느낌?
특정 종교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사사건건 반대해서 입법이 무산되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는 종교와 차별에 대해, 특히 특정 종교의 교리가 차별을 일으키는 경우(동성애 반대!) 사회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차별금지법의 관점에서 이를 정확히 설명한다.
“한국은 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못하고 있나요?” 외신 기자나 외국의 학자들에게 자주 질문을 받는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초리다. 보수 개신교에서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답하면 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기독교 국가도 아닌 한국이 개신교의 반대로 법 제정이 막혀 있다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일 것이다.
2013년이 중요한 기점이었다. 2013년 민주당 의원들이 두 개의 법안을 발의했다. 대표발의자인 김한길 의원이 그해 5월 민주당 대표가 되었으니 꽤 무게가 실린 법안이었다. 하지만 이 두 법안은 일부 보수 개신교계의 항의에 부딪혀 석 달 만에 철회되었다. 법안 철회는 최악의 뒷맛을 남겼다. 차라리 발의조차 못했다면 다음을 기약하면 된다. 하지만 법안 철회는 반대에 복종한 적극적인 행위다. 절차적으로는 발의에 참여한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서명을 받아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차별금지법안 반대 세력들은 승리의 기쁨에 환호했고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반대로 정치인들에게는 차별금지법 발의가 정치 생명을 걸어야 하는 ‘위험천만한 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후 7년 동안 국회에서는 단 한 건의 차별금지법안도 발의되지 못했다.
2013년 차별금지법안 철회 이후 법안 철회 사태는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차별금지법 철회로 고무된 보수 개신교 세력은 그 후 인권, 인권위, 젠더, 성평등, 차별 등의 키워드가 담긴 법안들을 깨알같이 찾아내 시비를 걸었고 국회의원들은 백기를 들었다. 19, 20대 국회에서 퇴행적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인권교육지원법안(2014, 2018)은 인권 교육이 동성애를 확산시킨다는 이유로, 증오범죄통계법안(2016)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징검다리 법안이라는 이유로, 인권 경영을 추진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2011)은 동성애자의 우선 취업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2016)은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 금지가 동성 가정을 허용한다는 이유로, 인권위 권한을 강화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2018, 2019)은 동성애 옹호 조직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2018)은 동성애 반대 표현이 금지된다는 이유로, 혐오표현규제법안(2011)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표현을 처벌한다는 이유로, 성차별·성희롱금지법안(2019)은 성차별 금지가 동성애 옹호와 연결된다는 이유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2023)은 유사 차별금지법이라는 이유로 항의를 받았고 결국 모두 철회되었다. 하나같이 어처구니없는 이유였지만 굴복한 것이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법안을 냈다가 성급히 철회했던 것이 블랙코미디였다면 민주당 의원들이 법안을 냈다가 철회했던 것은 황망하고 서글픈 일이었다. ‘인권위가 강화되면 동성애가 확산된다’는 등의 어이없는 이유로 멀쩡한 법안들이 수차례 철회된 것은 우리 입법사의 가장 참담한 순간으로 남게 되었다. 파장은 지역사회에도 이어졌다. 2014년 서울시에서 인권헌장 제정이 좌절된 것은 2013년 차별금지법안 철회에 비견될 만큼 나쁜 선례가 되었다. 2012년 이후 70개가 넘는 인권조례가 입법 예고되었다가 철회되었고 급기야 2018년에는 충남과 충북 증평군에서 인권기본조례가 폐지되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종교의 자유 vs 차별금지법
보수 개신교에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이유는 차별금지법이 종교적 신념에 반하며 더 나아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동성애 비판 설교를 하면 징역형에 처해진다”는 주장이 있다. 전형적인 가짜 뉴스다. 해외의 사례까지 들어가며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해외에서 동성애 비판 설교를 하다가 잡혀간 사례는 공공장소에서 타인을 위협하거나 모욕하는 언동으로 괴롭힘, 공포, 고통을 초래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공공질서법을 위반한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한국의 차별금지법안은 시정 권고를 주된 구제 수단으로 두고 있다. 차별을 당했다고 신고한 사람에게 보복을 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악의적인 경우에만 형사처벌될 수 있을 뿐, 나머지 차별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 자체가 불가능하다. 즉 동성애 비판 설교는 물론이고 거리에서 동성애를 비판하는 집회를 하거나 인터넷에 게시물을 올려도 차별금지법의 규율 대상은 아니다.
차별금지법이 세상만사에 관여할 것처럼 오해하기도 하지만 사실 차별금지법은 세상의 모든 차별을 빠짐없이 금지하는 법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의 대상이 되는 영역은 (1) 공공서비스, (2) 고용, (3) 재화와 용역의 이용이나 공급, (4) 교육, 이렇게 네 영역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네 영역에서의 차별만 금지되고 이 영역 밖에서의 차별은 법으로 규율되지 않는다. ‘종교’라는 영역은 차별금지법의 규율 영역에서 제외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가톨릭은 여성 사제를 허용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일부 개신교 교단에서는 여전히 여성 목사 안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차별금지법에 관해 긍정적인 입장을 가진 불교계도 조계종의 경우 비구니(여성)는 총무원장, 교육원장, 포교원장, 교구 본사 주지 등을 맡을 수 없다. 명백한 성차별이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계의 성차별은 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차별에 속하지 않는다. 이렇게 명시적인 차별 외에도 종교계의 은밀한 성차별 관행은 적지 않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종교의 내부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 허용한다거나 인정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법이 개입하여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종교의 자유’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그렇다고 차별금지법과 종교의 접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종교가 종교 밖으로 나와 사회와 접속하게 된다면 차별금지법의 규율 대상이 된다. 종교의 자유는 폭넓게 인정되지만 어떤 종교의 특정 교리를 사회에서 실행에 옮기려고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만약 종교계가 자신의 교리에 입각하여 회사, 교육기관, 사회복지시설 등을 운영한다면 더는 종교의 자유를 내세울 수 없다는 말이다. 세속국가에서는 특정 종교의 교리가 사회에서 그대로 관철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종교가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야 할 사회에 나왔을 때는 당연히 공동체의 기본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여성 성직자나 동성애자 성직자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의 교리는 법의 규율 대상이 아니지만 종립 학교나 종립 사회복지시설에서 여성이나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것은 금지되어야 마땅하다. 앞서 언급한 차별금지법의 네 가지 영역은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는 경계를 규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기에 이 영역들에서만큼은 종교의 자유를 내세워 ‘차별’할 수 없으며 차별금지라는 원칙이 준수되어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해고할 자유, 대학에서 동성애자 학생을 차별할 자유, 사회복지시설에서 성소수자를 괴롭힐 자유를 금지하는 것이다. 특정 종교의 교리 때문에 회사에서, 대학에서, 사회복지시설에서 차별할 자유, 괴롭힐 자유가 인정될 수는 없다. 차별금지법은 정확히 이 지점에서부터 선을 긋는다. 종교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종교가 사회와 접촉면을 만들었을 때는 공동체의 모든 시민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
동성애에 반대하는 보수 개신교의 입장을 고용이나 교육 영역에서 실현할 수 없다고 해서 너무 억울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개신교에만 적용되는 원칙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두루 적용되는 세속국가의 대원칙이기 때문이다. 무정부주의를 표방하는 종교가 실제로 무정부 상태를 만들기 위한 군사 무장을 한다면 당연히 규제 대상이 된다. 종교계가 운영하는 회사에서도 성차별은 금지된다. 강제 결혼이나 조혼, 여성 할례 등을 정당화하는 종교가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고 하면 엄벌에 처해야 마땅하다.
불교계 회사에서 불교도만 채용한다면? 원불교계 택시 회사에서 원불교 신자만 손님으로 받고 가톨릭계 대학에서 가톨릭 신자만 교직원으로 채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세상에서는 시민들이 삶의 모든 순간순간마다 종교를 의식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종교 중립적인 세속국가에서는 모든 시민에게 어떤 종교를 믿든 믿지 않든 종교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줘야 하고 그런 신뢰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것은 종교 간의 분쟁을 막고 공동체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차별금지법은 바로 그러한 ‘공존의 조건’을 마련하는 법이다.
종교가 사회와 만날 때 사회로부터 수많은 혜택을 받게 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종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는 국가가 마련한 교육과정과 시스템 내에서 운용되고 국가가 인정하는 공식 학위를 수여한다. 국가로부터 직접적인 재정 지원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혜택을 공유하기 때문에 종교가 사회에 진출했을 때는 사회의 기본적인 규칙을 준수할 의무가 도출되는 것이다. 사회의 혜택을 안 받아도 좋으니 자유를 누리고 싶다면? 그건 상관없다. 실제로 차별금지법에서 차별이 금지되는 ‘교육기관’은 “교육부 장관의 평가·인정을 받은 학습과정을 운영하는 교육훈련기관” 등에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까 차별금지법의 적용을 피하려면 국가의 교육 시스템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교육기관을 만들면 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차별금지법은 세상의 모든 차별을 남김없이 규제하는 법이 아니다.
종교가 사회와 접속하는 방법
그렇다고 차별금지법이 종교와 사회를 절연시키는 것은 아니다. 종교의 이념이 세속화된 형태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얼마든지 허용된다. 예컨대 어떤 대학에서 교직원을 채용할 때 신앙 증명서를 요구해서는 안 되지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한 진리와 자유의 정신이라는 전학 이념(연세대)이나 “불교 정신을 바탕으로 (…) 민족과 인류 사회 및 자연에 이르기까지 지혜와 자비를 충만케 하여 서로 신뢰하고 공경하는 이상세계의 구현”이라는 건학 이념(동국대)에 동의하는지를 묻는 것은 문제 될 게 없다. 신앙을 강요해서는 안 되겠지만 종교에 바탕을 둔 건학 이념에 따라 학교를 운영하는 것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종교 제례의 형식으로 운영되는 채플 수업을 의무화하는 것은 문제 될 수 있지만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그 대학 특유의 건학 이념을 교육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으로서 존중될 수 있다. 예수의 가르침을 진리와 자유라는 보편적인 이념으로 승화시키고 부처의 자비를 상호 신뢰와 공경이라는 숭고한 가치로 재해석하여 대학을 운영하는 것이야말로 세속국가에서 종교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이런 식으로도 얼마든지 종교는 사회와 교류하고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특정 종교의 신자들만 채용하고 교육해야 종교의 자유가 지켜질 수 있다는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평등한 사회가 종교를 바꾼다
종종 종교계 모임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해 강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차별금지법이 종교를 직접 규제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면 실망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나를 초대한 분들은 대부분 종교계의 각종 차별에 맞서 분투하고 계신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분들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그분들께는 종교 밖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것과 종교계의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곤 한다.
종교는 끊임없이 종교 밖 사회와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사회가 평등해지는 만큼 종교계도 평등해진다. 실제로 사회에서 차별적 관행이 개선됨에 따라 종교계의 차별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한국 개신교만 해도 1959년 연합감리교회를 시작으로 여성 목사를 인정하는 교단이 계속 늘어났다. 사회에서는 더 이상 여성이라는 이유로 특정한 직업을 갖지 못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런데 교회만 여성 목사는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미국 개신교는 더 이상 동성애에 적대적이지 않다. 미국의 주류 장로교가 이미 오래전에 동성애를 포용하기 시작했고 2025년에는 주류 감리교도 동성애 포용 정책에 합류했다.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점차 줄어들고 동성혼이 도입된 마당에 교회만 세상의 변화에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떤 법도 종교계에 이래라저래라 명령한 바가 없지만 사회의 변화가 종교계의 변화를 끌어낸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종교계의 여러 차별적 관행들은 사회가 더 평등해지는 만큼 점차 개선될 것이다.
여전히 일부 개신교 교단에서는 성소수자를 축복했다거나 동성애에 우호적인 책을 냈다는 이유로 성직자를 징계하려고 하지만 이는 피할 수 없는 사회 변화에 저항하는 마지막 몸부림일 뿐이다.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않는 종교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물론 차별금지법이 이러한 무도한 시도를 직접 규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이 만드는 평등한 세상에서는 이런 일이 반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전에 다니던 글로벌 회사는 레즈비언 아시안 여성이라면 승진은 탄탄대로라고 할 정도로 다양성을 중시했다. 일개 회사도 다양성을 중시하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회사가 실적이 더 좋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회사 내의 차별을 최대한 막으려고 노력하는 세상에서 선진국 반열에 접어든 강국에서는 온갖 종류의 차별이 다 벌어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기계적 공정함에 거품을 물고 집착하는 특정 성별의 특정 세대를 위해서도, 같은 국민들에게 차별받으며 서러움을 삼키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한시바삐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