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누군가 내게 김영하 작가님 이미지가 있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넙죽 엎드려서 절을 했던가...
등단 30주년을 기념하여 시간의 역순으로 발표된 작품들 중 대표작을 실은 단편집이 나왔길래 읽었다. 벤자민 버튼처럼 거꾸로 흘러가는 시간이 퍽 흥미롭다. '그래 이런 작품도 쓰셨지... 방송에서 순수한 척하셔 봤자 작품 읽다 보면 고급 변태가 따로 없지 후후...' 알쓸신잡 나와서 말씀하시는 모습 정말 좋아했는데, 작가님의 언론에 노출된 이미지와 과거에 발표한 소설은 참 많이 다르다.
책 말미에 담긴 작가의 말을 가져온다. 30주년 기념사를 이렇게 자신의 작품들을 훑어보며 담백하게 쓸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있겠는가. 작가님. 등단 30년 축하드리고 슬슬 소설 좀 써주세요! <검은 꽃> 같은 장편도 좋고, <옥수수와 나> 같은 단편도 좋습니다.
작가의 말: 자욱한 먼지 속에서
30년이다.
1995년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본다. 그 시점에 나는 세 가지를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춘문예도 아니고 문예지 등단도 아닌, 문화비평 잡지에 단편을 실었는데 그냥 나 혼자 등단이라고 치기로 했다. 그러니 앞으로 사람들이 나를 작가로 불러줄지 알 수 없었다. 그게 첫째 미지였다. 그다음으로 몰랐던 것은 앞으로 도대체 어떤 소설을 쓰고 살아갈 것인가, 다시 말해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였다. 나는 그냥 닥치는 대로 썼을 뿐인데 그래도 몇 사람이나마 이런 글을 잡지에 실어주겠다고 나서는 게 신기했다. 마지막으로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삼십 년 후에 내가 이런 책(맙소사, 등단 30주년 기념 단편선이라니!)에 후기를 쓰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작가의 활동 기간은 대체로 짧다. 이 책을 묶으며 예전에 이 소설들이 문예지에 실렸을 때 함께 기고한 작가들의 그리운 이름들을 여럿 보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그 ‘신세대 작가’들은 다들 어디에 있을까? 그들 중 몇몇을 많이 질투했다. 또 어떤 이들은 몰래 존경했다. 은밀한 질투와 존경심은 내 창작의 동력이기도 했다.
발표 역순으로 편집된 『단편선』의 원고를 보면 지나온 30년이 마치 영상을 뒤로 돌리듯 떠오른다. 그 요란하던 1990년대부터 시작이다. 차 트렁크에는 아직 비상 탈출 버튼이 없어서 폐차 트렁크에 장난으로 들어갔다가 갇혀 버린다. 소설의 인물들은 삐삐라 불리던 호출기를 쓰고, 공중전화로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119에 신고하려 한다. 앙코르와트 근처에는 아직 크메르루주 잔당이 남아 유격전을 벌이고 있다.
이제 2000년대다. 거친 ‘오빠’는 택배라는 신종 사업을 시작해 가족을 부양한다. 1990년대에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지나쳐 계단을 내려가던 젊은 부부는 이제 이 낡은 아파트를 떠나기로 한다. 그들은 “다들 아무것도 아니라 했다”는 포장이사를 신청하지만 조선족 인부가 포함된 미숙하고 거친 인부들에게 소중한 짐을 맡기게 된다. FM 라디오와 TV 방송은 여전히 인기다. 자연 발화로 남편을 잃은 누군가의 직업도 PD다.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외환 위기는 모두에게 각자도생, “여러분, 부자 되세요”의 세상을 남겼다. 주식시장에서 작전을 벌이고 한탕을 꿈꾸던 인물들이 민족주의 광기로 미친 확신범과 만난다. 휘발유 냄새가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게 된 젊은 부부는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SNS로 고발하는 대신 업체의 소비자 상담실로 전화를 걸고, 업체에서는 아마도 외환 위기 때 정리해고되었음직한 늙수그레한 부장님을 고객에게 보낸다. 직장을 다니는 젊은 여성 회사원은 사장의 명백한 성희롱을 참아내고, 직원들의 불쾌한 시선을 살갗에 달라붙은 젖은 우산처럼 견딘다.
2010년대가 되었다. 소설 속 작가는 뉴욕 차이나타운에서 미친 듯이 글을 쓴다. 어떤 부모는 유괴당한 아이를 되찾았지만 가정과 행복했던 일상은 회복되지 않는다. 배울 만큼 배웠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는 학원 강사가 수신인이 모호한 편지를 쓰기도 한다.
2020년대가 되었고 이 시기에는 쓴 단편이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혼돈의 먼지가 가라앉은 다음에 써야지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혼돈은 계속됐다. 아니, 혼돈이 일상이 되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격동의 모래폭풍이 걷히기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이제는 안다. 혼돈이 지나간 뒤의 세상은 그 이전의 세상과 완전히 다르리라는 것을. 외환 위기가 그랬고, 세월호가 또한 그랬다. 나는 두렵다. 또 어떤 세상을 만나게 될지.
삼십 년을 작가로 살아오는 동안 네 번의 연대가 지나갔거나 지나가고 있다. 운이 좋아 그 혼돈들을 무사히 지나왔고, 지금 이렇게 두꺼운 중단편선을 묶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잘 쓸 때나 못 쓸 때나 읽어준 독자들의 덕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독자가 부끄러워하지 않을 작가로 살아가고 싶다. 그런 다짐을 해보는 2025년의 봄이다.
연희동의 작업실에서
김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