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무라 겐지
작년 겨울부터 자꾸만 눈에 밟힌 <8번 출구>. 닌텐도 e-shop에서도 게임이 자꾸 보이고, 쿠팡플레이에서도 영화가 자꾸 보이고, 똑같이 노란색인 책도 서점에서 눈에 띄었다. 지하철 출입구 표시에 쓰이는 샛노란색이 눈에 잘 보여서 그런가 언제 한 번 플레이하거나, 보거나,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도서관에 책이 있길래 빌렸다. (그나저나 정말 오랜만에 일본 소설을 읽는다)
어떤 남자가 지하철에서 (헤어지기로 한) 여자친구의 전화를 받고 충격을 받은 상태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무한 루프에 갇히게 된다. 0번 출구부터 시작해서 아래의 규칙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거나 원래 자리로 다시 돌아오거나 하다 보면 8번 출구에 도착하는 일종의 미로에 갇힌 것이다.
1. 단 하나의 이상 현상도 놓치지 말 것.
2. 이상 현상을 발견하면 즉시 되돌아갈 것.
3. 이상 현상이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것.
4. 8번 출구를 통해서 밖으로 나갈 것.
이상 현상은 광고판의 그림이 다르거나, 갑자기 어떤 인물이 등장하거나, 그 인물이 이상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등의 말 그대로 이상한 현상이다. 하나라도 놓치면 7번 출구까지 갔어도 다시 0번 출구로 돌아오게 된다. 잘못 이성을 잃으면 지하도 안에서 계속 헤매게 되는 구조다.
줄거리를 말하면 누군가 이걸 보고 스포일러를 당했다고 할 수 있으니 아무 언급하지 않겠다. 주인공 자신의 비겁함과 용기가, 선택하지 않은 미래와 선택한 미래가 충돌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과연 올바른 선택을 하느냐가 이 무한루프를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정답이다.
천재적인 게임을 만들어내고, 이를 영화로, 소설로 매끄럽게 만들어낸 일본 감독과 작가가 마치 요즘 잘 나가는 일본 국가대표 축구팀 같다. 누가 대표팀에 들어와도 같은 포지션이면 똑같은 경기력을 보여준다는 시스템 축구가 거의 완성되었다고 한다. (평가전에서 브라질과 잉글랜드를 이겼고, 월드컵 우승이 목표라고 한다. 일본이라고 무시하기엔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기력과 전술이 너무 처참하다 ㅠㅠ) 축구 얘기를 꺼내면 또 할 말이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날 테니 그만 말해야겠다.
으스스한, 언젠가 악몽에 한번 등장했을 법한, 아무리 헤매어도 탈출할 수 없는 미로에 갇힌 그 느낌을 가장 잘 살린 건 책일까 영화일까 게임일까 궁금해졌다. 하나씩 천천히 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