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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

정지아

by 김알옹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작가님의 2008년 소설. 남도 사투리에 빨치산 부모님의 경험을 녹여낸, 현대 한국 작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독보적 문체를 다시 한번 읽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스물셋마흔셋>이라는 작품에서는 양귀자 선생님 느낌도 났다.


작가의 말에서 언급한 대로,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이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씨앗이 되었다. <세월>이라는 작품 안에서 어머니의 독백들이 그것일 것이라 생각한다.


<봄빛>에서 아버지의 치매 앞에 계속 덤덤했던 아들이 느낀,


고리대금업자 같은 비정한 세월이 자신으로부터도 수금을 시작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라는 문장에서는 내 마음이 베어져 나가는 듯했다.




그들이 그의 생명을 키워냈듯 이제는 그가 그들을 품어 그들이 세월에 빚진 생명을 온전히 놓고 죽음으로 떠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받은 것은 반드시 돌려줘야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냉정한 생명의 법칙이었다.


이 거부할 수 없는 인생의 수레바퀴를 표현한 문장을 방심한 채로 마주하다니. 쓰디쓰다. 중년의 나에게도 찾아올 세월의 채권추심.


전북 출신 부모님의 어투에 묻어난 남도 사투리 덕인가, 읽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했간디?, 역부러(일부러)와 같은 말은 우리 부모님도 자주 쓰신다. 항꾼에(함께), 뽈세(벌써) 등은 좀 더 남쪽 말인 듯하네.


작가님 에세이집 리뷰에서도 언급했듯이 조니워커블루 한 병 사다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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