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재
20대. 공부한답시고 집에서 눈치 보며 놀고먹는 생활을 할 때, 아버지가 사기열전 책을 하나 가져오셔서 나에게 읽어보라 하셨다. 이미 초한지, 열국지, 십팔사략 등등 관련 책들을 많이 읽었고, 권하신 책은 서울대 어느 교수가 편저했는데 주석을 잔뜩 달아놔서 정말 안 읽고 싶게 생긴 책이었다.
그래서 책상 한 구석에 놔두고는 외면하고 있었는데, 책을 읽어보라는 아버지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외면했더니 나중에 엄청 혼내시는 거다. 아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놀고먹기만 하는 큰아들이 못 미더우셨을 테다.
이제 내가 아버지가 되고 나니 좀 이해가 된다. 아들한테 좋은 책만 읽히고 싶은 그 마음을. 그래서 매주 도서관에 데려가서 함께 책을 읽고 유익해 보이는 책을 빌려온다. 점점 글이 많은 책을 빌려다 주는데 영 인기가 없긴 하다. ^^ 그래서 이 사기 만화책을 빌려다 줬더니 인기 폭발이다. 단숨에 다 읽길래 나도 같이 읽으니 무척 재미있다. 한자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 계속 지식인으로 살려면 이 정도 중국 역사는 알아야지.
지난 주말엔 어린이 층이 아닌 어른 층으로 데려갔다. 자리를 잡더니 본인이 좋아하는 과학 책들을 잔뜩 골라와서 몇 시간이고 읽더라. 스스로 고르게 하니 더 열심히 읽는구나. 참 어려운 지점이다. 자식의 독립이 육아의 목적이라지만 아직도 품 안의 작은 새 같은 걸.
내가 사춘기에 접어들며 시드니 셸던의 소설들, 하루키와 류의 눈이 번쩍 뜨이는 성애, 매번 음양합일대법을 펼치는 주인공이 나오는 무협지들 등등을 부모님 몰래 읽었던 것처럼 아들도 아들 나름의 사춘기를 보내겠지. 부디 네가 너무 엇나가지 않길. 부디 내가 넓은 마음으로 최대한 이해하고 너무 멀어지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