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킹솔버
레드넥, 힐빌리, 화이트 트래쉬 등으로 불리는 미국 중부의 가난한 백인들은 트럼프의 당선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경제가 망가지고 공동체도 무너지고 젊은이는 떠나는 상황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 부르짖는 트럼프의 레토릭에 끌릴 수밖에.
이 8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은 전형적인 힐빌리의 성장기이다. 작가는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플롯을 그대로 차용해서 런던의 소년을 미국 현대로 데려온다.
애팔래치아 산맥 자락의 버지니아 주 리 카운티에서 태어난 주인공 데몬은 아기일 때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는 중독센터를 드나드는 약물중독자다. 재혼한 어머니가 데려온 남자 스토너에게 학대당했고, 어머니는 이를 견디지 못해 다시 약에 손을 대고 과용으로 죽는다. (중독된 약물은 오피오이드성 진통제인 옥시코돈)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자라는 데몬의 주변엔 온통 중독자뿐이다. 나중에 선하고 악한 영향을 미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곳도 위탁 가정이다. 물론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려고 손을 내미는 어른들도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확실한 동아줄이었다. 어느 위탁 가정에서 도망쳐 무작정 찾아간 아버지의 고향에서 기적적으로 만난 할머니 벳시 여사는 곧 딸 앵거스와 둘이 사는 고교 풋볼 코치 윈필드의 집에 데몬을 맡긴다. 그의 재능을 간파한 코치는 곧 그를 풋볼 스타로 만들어준다.
그러나 이 행복도 잠시 뿐, 성장 과정에서 회복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데몬은 경기 중 무릎 부상으로 좌절하게 되고, 아주 나쁜 어른을 만난다. 그의 무릎 주치의인 왓츠 선생. 악덕 제약사 퍼듀가 그 중독성을 알고도 마구 판매한 옥시코돈, 엄마를 죽게 한 그 옥시코돈을 데몬에게도 처방한 것이다. 데몬은 필사적으로 회복하여 동아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약에 의존하여 발버둥 치지만…
아주 나쁜 애인을 사귀게 된다. 릴리는 암투병 중인 아버지를 홀로 모시고 사는 착하고 예쁜 아기새이다. 데몬이 릴리와 흠뻑 사랑에 빠지고, 릴리의 실체를 알게 된다. 릴리는 중독자였다. 온갖 약을 다 하고 (그 유명한 펜타닐도 한다), 아버지의 죽음 뒤엔 둘이 동거하며 본격 대약물시대가 시작된다.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른다.
‘누가 죽어야 끝나겠군’ 싶은 약물파티는 결국 릴리의 죽음으로 끝나나 싶었는데, 또 다른 친구가 위탁 가정 출신 다른 악당과 엮이고, 또 약이 등장하고, 어른들은 약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 애쓰고, 또 약을 하고, 그러다 또 친구가 죽고, 악당도 죽고, 이 모든 것이 약 때문이고… 약에 버무려진 듯한 소설이다.
데몬은 800페이지 내내 바다를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불우한 가정환경과 약물의 늪이 통 허락하지 않는다. 마지막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어른의 도움으로 약에서 빠져나오고, 자신의 특기를 살리고, 새로운(멀쩡한) 여자를 만나서 다시 바다로 향한다.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지만 좀 혼란스러웠다. 세계 최강 경제 대국의 이면엔 이런 문제가 만연해 있다니… 거대 제약회사의 힘 때문에 약물중독을 방관하는 정부와, 이 가난한 사람들의 등골을 약물로 쪽쪽 빨아먹는 제약회사와 의사들. 같은 나라에서도 어디에서/누구에게 태어나느냐에 따라 출발선도 다르고 기회도 다르게 주어지는 불평등한 사회. 가난하고 불행한 이들을 지원하고 구출하기보다는 오히려 방치하고 조롱하며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부유층. 그 부유층만을 위한 정책을 펴는 자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가난하고 불행한 이들. United States of Drugs.
OECD 최강 자살국 Republic of Suicide와 비교하자면 어디가 더 행복한 삶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