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
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 중견 작가 다섯 명이 음악을 매개체로 구성한 단편 모음.
단어 선택, 문장 구성, 단락 구조, 기승전결의 흐름,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모두 조화로운 소설들이다. 하나하나 버릴 것 없이 오감을 즐겁게 하는 코스요리를 먹은 기분이다. (음악소설집인데 왜 난 맛있지…?) 게다가 후반부엔 각 작가들과의 인터뷰까지 실려있다. (요리에 대한 설명을 직접 해주는 셰프들 같다.)
콘셉트를 잡고 단편 모음을 기획하려면 이렇게 해야지. 분량이나 작가의 실력과 콘셉트에 대한 이해나 구성이 참 만족스럽다.
김애란 <안녕이라 그랬어>
긴 시간 부모의 간병을 하며 직장을 잃고 애인도 잃은 중년 여자가 혹시 몰라 화상을 통해 먼 나라의 한 남자에게 영어를 배운다. 마지막 수업에서 둘은 수업이 아닌 대화를 나눈다.
‘큰 교훈 없는 상실, 삶은 그런 것’ : 아… 좋은 표현이다.
한국어의 ‘안녕’은 반갑다, 잘 가, 그리고 평안한 지에 대한 물음이 각 상황에 따라 다르게 쓰인다. 작가님은 능수능란하게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안녕함을 묻는다. 깔끔하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떨어지는 좋은 단편.
음악은 Robert Pollad & Kim Deal ‘Love Hurts’
https://youtu.be/7VGXLB3us70?si=VEFY24mkxGqnWqJo
김연수 <수면 위로>
드뷔시의 <달빛>과 오므라이스가 흐르는 단편. 조금 모호한 내용인데 아래 두 화두가 인상 깊어서 적어놓는다. 작가님 인터뷰를 보면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의 팬이시더라.
1. 깨달음 후 부처님은 입을 다물고 그대로 사라지려고 했는데, 이를 설하지 않으면 고통받는 중생은 어떻게 하냐는 설득에 답하길, 애당초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 모든 고통이 없으니 지금이라도 존재를 지워나가는 게 옳은데, 그 말을 들을 인간은 없다.
2. 나서 죽을 때까지 물고기는 물속에 있다. 물속에서 물고기는 자유롭고, 바깥에 뭔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나갈 수 없기에 알 수도 없다. 결국 물고기에겐 물이 아닌 것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물 바깥에서 물고기를 지켜보고 있고 물고기에게 없는 그것의 이름이 하늘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게 우리는 물고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뭔가는 그런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평생 자기의 생각 안에서만 헤엄치다가 그 안에서 죽고 날 우리를.
음악은 드뷔시의 ‘달빛’. 조성진 버전으로 들어보자.
https://youtu.be/U3u4pQ4WKOk?si=SwhVG-i-9uEPOrVW
윤성희 <자장가>
‘내 장례식이 끝난 뒤 엄마를 따라온 것은 그래서였다. 혹시라도 엄마가 잠 못 들까 봐. 내 생각을 하며 밤새 눈물을 흘릴까 봐. “
먼저 죽은 딸이 엄마의 꿈속에 들어가서 자장가를 불러준다…… 뻔한 신파 소재인데 막상 접하면 또 매번 슬퍼지는 이야기다. 정말 너무 슬프다. 덤덤한 문체가 더 슬프다.
질병으로 죽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제발 신호가 바뀌기 직전에 횡단보도를 달리다 차에 치이는 클리셰는 실제로 발생하지 않으면 좋겠다. 운전자도 보행자도 모두 조심하자.
은희경 <웨더링>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네 인물이 구스타프 홀스트의 <행성>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다 좋은데 중간에 등장하는 음악선생의 갑작스러운 폭력이 너무나도 거슬린다.
나 학교 다닐 때는 다들 별것도 아닌 이유로, 혹은 아무 이유도 없이 (가끔은 선생 기분이 나쁘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선생들의 구타를 감내해야 했다. 학교 성적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어쨌든 다양한 일로 많이 맞았다.
책을 읽다가 그때의 야만적인 교실이 문득 떠올라서 몸서리가 쳐졌다. 물론 구성 자체는 워낙 프로 작가니까 잘 짜여서 읽기는 좋았다.
https://youtu.be/Gu77Vtja30c?si=eK-792KfZzbCmN0Z
편혜영 <초록 스웨터>
엄마가 병으로 죽고 나서 남겨진 건 198,000원과 뜨다 만 초록 스웨터였다. 엄마가 가장 친했던 영주 이모와 함께 나주 이모를 찾아가면서 셋이 엄마의 죽음을 애도하게 된다. 남겨진 초록 스웨터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조금씩 완성되어 가고 (엄마를 포함한) 네 여자의 오해 섞인 마음은 조금씩 풀어진다.
정말 잘 짜놓은 구조의 단편이다. 괜히 글로 교수님 되고 심사위원 되는 거 아니다.
엄마와 영주/나주 이모 셋이 학창 시절 노래방에서 부른 노래들이 녹음된 테이프 안엔 무슨 노래가 들어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