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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4

손보미, 문지혁, 서장원, 성해나, 안윤, 예소연, 안보윤

by 김알옹

손보미 <끝없는 밤>


주인공이 남편과 함께 요트에 타서 풍랑에 휘말려 결국 배가 침몰하게 되는 과정 가운데 과거에 벌어진 불륜을 회상하는 내용인데 이걸 ‘이 소설이 갖춘 형식적 완미함의 미덕뿐만 아니라 그 소설적 물음의 끈기가 삶의 고통을 온전히 복원하려는 고고학적인 소설가적 태도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고 있기에’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한다니, 대체 어떻게 들여다봐야 저런 걸 발견할 수 있는 거지?


자전작으로 함께 수록된 <천생연분> 또한 불륜 이야기다. 뒤에 실린 작가 인터뷰에서 ‘또 다른 한 편을 추가해서 불륜 3부작을 쓰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히셨는데, 임경선 작가님의 불륜소설이 역시 나 같은 필부에겐 쫙 달라붙는 맛이 있다.


문지혁 <허리케인 나이트>


김유정문학상에도 후보작으로 들어있던 작품. 문지혁 작가님은 주로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다고 들었는데 읽어보는 건 처음이었다. 디아스포라 문학이라고 하던가… 내가 졸업한 학교가 등장하여 꽤나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졸업한 사람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곳이지만 졸업생은 대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한 내용이었다. 작가님은 내 선배님이라는 생각에 반가웠다. (원래 선후배 따위 챙기는 학풍이 아니긴 함)


소설 자체는 누구나 이런 비밀 하나쯤은 있을 거라는 동질감에 또 반가움을 느꼈다. 쥐어짜 낸 반전이긴 하고 허리케인이 몰려오는 밤 이후 갠 날씨라는 배경을 장치로 사용하긴 했지만 재미있으면 장땡이지!


이렇게 자기 성장 환경을 배경으로 삼아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구분 안 가게 쓴 소설을 읽으면 ‘나도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지만 막상 써보라고 하면 한 글자도 못 쓰겠지?



서장원 <리틀 프라이드>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 주인공의 이야기. 나 아직 여기까지 받아들이긴 좀 힘든데... 시간이 필요한데...


성해나 <혼모노>


18_15_22__57398faaed18c[W578-].jpg <혼모노>의 박수무당이 이런 느낌이려나? 사진은 영화 <곡성>에서 황정민님이 분한 박수무당.

이 수상작 작품집의 원픽! 처음 읽은 건 아니고 전에 <소설 보다: 겨울 2023>에 수록되어 반했던 작품이다. 모시던 할멈 신령님이 다른 무당에게 떠나게 되어 좌절한 어느 박수무당이 자신의 의지를 다잡으며 직업적 전문성을 다시금 불태우는 빠른 서사의 롤러코스터! 장류진 작가님 이후로 발견한 내 스타일의 작가님이라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어보려고 한다.


안윤 <담담>


주인공은 “저는 바이예요.”라고 소개팅 자기소개를 날렸는데 “그게 당신에겐 가장 중요한 정체성인가요?”라고 답하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과거 10년 넘게 지지고 볶고 사랑하던 전 동성애인의 죽음에 흔들리던 그녀를 담담하게 다시 일으켜주는 남자와 담담한 미래를 꿈꾼다. LGBTQ 이야기가 과도하게 많이 등장해 요즘은 잘 읽지 않게 된 젊은작가상 수상작들이 진정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한 작품이었던 건가 나의 폐쇄적 성의식을 돌아보게 된다.


예소연 <그 개와 혁명>


김유정문학상에도 후보작으로 들어있던 작품. 좀 정돈된 고속도로 같이 시원하게 치고 나가는 소설을 좋아하는데, 이 작품은 비포장 시골길을 덜컹거리며 나아가는 느낌이다. 아빠의 장례식장에 키우던 개를 데려와 난장판으로 만드는 결말 장면 안에서 당혹스러워하는 조문객들의 모습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내가 느낀 기분이었다. (그걸 노린 걸 수도… 작가님의 단편집 <사랑과 결함>은 저 덜컹거림이 너무 과해 멀미가 날 지경이라 읽기를 멈췄다.)


안보윤 <그날의 정모>


작년 대상 수상작가인 안보윤 작가님의 자선작. 조현병 아이의 돌봄에 엄마, 아빠, 화자인 누나, 할머니까지 가족의 모든 역량이 동원되지만 역부족이다. 아직 초등학생인 남동생에게 굉장히 빨리 찾아온 이 병으로 다른 가족들 모두 큰 고통을 받고, 육아 도움을 받기 위해 데려온 할머니는 자기 아들을 제외한 나머지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책 읽으며 돌로 머리를 때리고 싶은 악한 인물이 이렇게 압축적으로 잘 그려진 적이 얼마만인가)


할머니는 악의에 사로잡힌 얼굴로 온갖 말을 쏟아냈다. 부모 죽고 나면 너 혼자 독박 쓰는 건데 네년 말년이 나보다 나을 거 같냐? 마지막에는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경고했다. 너는 절대 애 낳을 생각 마라, 상상도 하지 마.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따위의 가정을 하고 싶지 않은 소설이다.


몇 년 전에 읽은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라는 책이 떠올랐다. 21세인 작은아들이 조현병으로 몇 년간 투병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5년 뒤 큰아들에게도 조현병이 발병하게 되어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의 글이었다. 그 책의 서문에 이런 말이 있었다.


여러분이 이 책을 '즐기지' 않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이 책으로 인해 상처 입기를 바란다. 이 책을 쓰면서 내가 상처 입었던 것처럼. 상처 입어 행동하기를, 개입하기를 바란다.


어떤 책은 즐길 수 없는 것이다. 소설을 읽고서도 즐겁지 않은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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