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이미 미래에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자라는 새로운 세대

by 우소연

사이버에 사는 아이들


스마트폰 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힘든 시대다. ‘스몸비(Smombie, 스마트폰 좀비)’라는 말이 생길 만큼, 우리는 작은 화면에 갇혀 산다. 청소년에게 사이버 공간은 더 이상 부수적 세계가 아니라, 현실보다 더 자주 머무는 삶의 영역이다.

학생들이 등교하자마자 하는 일은 ‘스마트폰을 내는 것’이다. 규칙에 따르는 다수의 아이들 옆에서 끝까지 버티며 실랑이를 벌이는 아이가 있고, 아예 두 대 중 한 대만 내놓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의 삶의 분신이 된 스마트폰. 그것이 무엇이길래 그리 소중한 것일까? 우리가 우려하는 '게임 중독'이나 'SNS 중독' 외에, 그들에게 사이버 경험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질문은 이미 10년 전에 시작되었다. 그때 당시 적극적인 유저(user) 생활을 하는 세 명의 청소년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였다. 우선 아이들을 소개하자면, 첫째, 유튜브를 새벽 3시까지 보느라 매일 지각하던 18세 수영(가명)이다. 둘째, 아이돌 팬 활동을 하며 트위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17세 서영(가명)이는 학교를 규칙적으로 출석하는 게 어려운 상태이다. 마지막 한 명은 학교를 한 달씩 나오지 않아 퇴학 처리를 아슬아슬하게 남겨두었던 pc방에서 한 달간 생활하며 게임대리자로 용돈을 벌던 19세 지성(가명)이다.

표면적으로 보기에 걱정이 많이 되는 아이들이지만 심층적으로 들어가 보면 남다른 재능과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이 아이들에게 사이버 활동 경험은 무엇이며,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의미 있는' 학습의 순간은 없는지 인터뷰를 통해 의미를 발견해 갔다.


사이버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할까


처음 청소년들에게 사이버 활동을 물었을 때, 그들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재미있어서요." 그들에게 사이버 공간은 '해야만 하는 숙제'가 아닌, '빠져나오기 어려운 재미난 세계'였다. 어떤 이는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유튜브를 뒤지고, 또 어떤 이는 '아이돌 덕질'을 위해 트위터를 들락거렸다.

이들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광장'은 바로 구글과 네이버였다. 여행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여행지를 고르듯, 이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찾아 포털을 떠돌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단순히 정보를 '검색'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클릭클릭 하다 보면 새로운 기능이 나와요. 그냥 저절로 알게 되는 거죠." 18세 수영이는 유튜브로 앨범 재킷, 명함, 프레젠테이션 제작법까지 배웠다. 17세 서형이는 아버지가 컴퓨터 사업을 하셔서 엑셀이나 파워포인트를 어깨너머로 배웠지만, 트위터 타임라인에 친구들이 공유한 자료를 통해 슬램더커, 하이쿠 등 예상치 못한 지식들을 습득하고 있었다. 19세 지성이는 초등학교 6학년부터 핵(해커)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타고 타고' 넘어가며 자신만의 경로를 만들어갔다. 마치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된 사이버 공간에서, 이들은 능동적으로 지식을 탐색하고 습득하는 '탐험가'이자 '여행자'였다. 그때 나는 알았다. 이들은 지각하거나 결석하는 것이 아니라 ‘먼 여행에서 돌아오느라 시차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아이들이구나’라고.

이들이 '타고 타고' 넘어가 도착한 곳은 지식의 바다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새로운 언어와 문화의 세계였다. 수영이는 앨범 재킷을 만들 때 한국 사이트에서는 정보가 제한적이라, 구글에서 영어로 검색하며 외국 자료를 찾아본다. 서형이는 '덕질'을 하다 외국 팬들과 교류하게 되고, 트위터에서 '번역하기' 버튼을 눌러 소통한다. 두려움은 없다. "대충 이해하면 돼요. 모르는 건 번역기로 돌리면 되고요."

이들에게 언어의 장벽은 낮은 편이다. 지구 언어 외에도 이들은 'C언어'를 배우고, '구독계', '봉개' 같은 자신들만의 '은어'로 소통했다. 이들에게 사이버 공간은 시공간을 초월해 전 세계 사람들과 연결되는 '나만의 놀이터'이자 '진짜 세계(real world)'이었다. 서형이는 말한다. "지구에 사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사는 '우주'가 사이버 공간이에요. “

서형이는 한 아이돌 그룹의 열렬한 팬이다. 앨범이 나올 때 '총공(총 공격)'을 위해 70개의 아이디를 만들고, 트위터 아이디도 7개나 가지고 있다. 각 계정마다 다른 세계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사용한다고 했다. 각 계정마다 인격이 별개로 존재하냐는 나의 질문에 "가상공간이 떨어져 있는 게 아니에요. 전부 다 나예요."라고 했다. 서형이는 현실에서 자신이 선택한 인격을 온라인을 통해 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블로그를 하고, SNS로 옮겨가고, 스카이프 같은 음성 전화로 대화하고, 오프라인에서 그대로 말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현실 속 자신의 모습을 다듬어 간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솔직하게 보여주고 싶은 나', '되고 싶은 나'를 마음껏 실험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현실의 자아를 통합하고 성장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나'보다 많은 '아이디'가 진짜 '나'를 만들어갔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무형식 학습


학교에서는 '중독'이나 '문제'로만 치부되던 청소년들의 사이버 경험은 사실 그들에게 중요한 '학습의 장'이었다. 이들은 사이버라는 익명의 공동체에서 지식을 공유하는 '주체'였다. '댓글 달기'와 '키보드배틀'을 통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논쟁하며 분별력과 논리적 사고를 키웠다. 이를 통해 사회에 대한 현실감을 얻고, 자신의 가치관을 확립했다.

"사회시간에 그냥 배웠던 '정보사회'가 확 다가왔어요. 사이버 활동을 해보니 '아, 지금이 정보사회구나' 깨달았어요."라는 서형이의 말처럼, 그들은 사이버 경험을 통해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삶의 맥락 속에서 이해했다. 재미로 시작한 활동이 '학습'이 되고, '성찰'로 이어지는 과정, 이 모든 것은 학교 교육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무형식 학습'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들은 온라인에서 아이디어를 모으는 '집단지성'에 참여하고,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사회적 실천에 동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배운 모든 것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넘치는 정보 속에서 '시간 낭비'를 하거나, 너무 깊게 빠져들어 '잠을 못 자는' 경우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사이버 경험을 오프라인과 통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온라인에서 관심이 생긴 분야는 책을 찾아 읽고, 직접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며 현실에 적용해요. “

나는 서형이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 배움이 (세상에) 받아들여질 것 같니?"

그녀는 "점점 더 빨라질 거예요. 통신이 빨라지니까요."라고 했다.

”우리는 'TV 중독'이라는 말이 사라졌듯이,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말도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매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어른들은 그것을 '중독'으로 치부하며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미 미래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10년 전 특별해 보였던 아이들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되었다. 지금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사이버 공간에서 배우고, 소통하고, 자신을 확장한다.

인터뷰한 세 명의 아이들은 사이버 경험을 통해 스스로 학습 경로를 설계하고, 능동적으로 지식을 구성하는 힘을 길렀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에게는 중요한 과제가 남아있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현실 세계와 온라인 세계를 통합하는 일이다.

이제 우리 교육은 질문해야 한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아이들의 경험을 어떻게 학습으로 연결할 것인가'를 말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전해줘야 할 것은 단순히 많은 지식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나아갈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경험을 성찰하고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용기다. 그들의 '놀이'가 '삶'이 되는 순간, 아이들은 이미 미래를 위한 가장 강력한 자산을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을 꺼라'라고 말하기보다, 청소년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얻은 경험을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고 의미 있는 배움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 질문이 필요하다.


keyword
이전 07화늦었지만,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