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사랑, 온라인에서 시작한다

아이들의 랜선 연애, 윤리의 뉴노멀

by 우소연

펜팔 해본 적 있는지? 어린 시절 잡지 맨 뒷면에는 펜팔을 원하는 사람들이 주루룩 적혀 있었다. 그 가운데 실제로 사랑을 싹틔운 커플도 있었고, 독일에 유학 간 후배 집에서 만난 부부도 펜팔로 인연을 맺었다고 했다. 우리는 편지로 이어진 사랑을 낭만이라고 불렀다.

요즘 아이들에게 펜팔은 카톡이다. 프로필 사진을 보고 호감이 생겨 글을 남기고, 대화를 이어가며 연애 감정을 키운다. 미팅 앱도 성행한다. 그런데 왜 나는 아이들의 랜선 연애가 불안할까? 우리가 펜팔로 설렘을 주고받을 땐 낭만인데, 아이들의 랜선 연애는 위험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내가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관계의 시작, 오프라인을 넘어


10년 전, 한 제자가 페이스북에 ‘연애 중’이라는 메시지를 띄웠다. “누구야?”라고 묻자, “페북에서 만난 사람이에요”라고 답했다. 아직 얼굴도 본 적 없는데 대화가 잘 통해서 사귀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얼굴도 안 보고 사귄다고?’ 하며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부모에게도 그 사실을 알렸고,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첫날 엄마와 함께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러나 막상 직접 마주 앉자 호감이 사라졌고, 곧 헤어졌다. 아이에게 온라인은 사랑을 시작하는 낯설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생경했다. 그렇게 ‘온라인에서 시작해 오프라인으로 옮겨온 연애’는 아이들 세대에게 이미 일상이 되어 있었다.


신뢰가 위협으로 변할 때


몇 년 전, 청소년센터에서 한 어머니에게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아들이 사귀던 여자친구에게 협박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남학생은 카톡 프사에 반해 다가갔고, 둘은 금세 연애를 시작했다. 여자친구는 사적인 사진을 공유하자고 했고, 그는 자신의 사진을 보냈다. 하지만 상대는 사진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내 말 안 들으면 이 사진 공개할 거야”라는 메시지가 돌아왔다.

순식간에 믿음은 칼날로 변했다. 사진 몇 장이 힘의 불균형을 드러냈고, 장난처럼 시작된 관계가 협박의 무대가 되었다. 남학생은 위협 속에 떨었고, 여학생은 그저 재미였다 말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박사방 사건’ 이후 강화된 법률에 따라 그녀는 중대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부모의 개입으로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그 순간 나는 똑똑히 보았다. 온라인에서 맺어진 관계가 얼마나 쉽게 폭력과 착취로 뒤틀릴 수 있는지.


디지털 관계망이 가져온 단절


내가 운영하던 오픈 채팅방을 통해 한 학생이 온라인 상담소에 연락을 해왔다. 아이는 랜선 연애를 하다가 큰 어려움에 빠졌다고 했다. 사건의 발단은 집 거실 구석에서 깜빡이던 홈캠 불빛이었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설치된 장치가 아이의 사적인 연애를 부모에게 고스란히 노출시킨 것이다.

부끄러움과 충격 속에서 아이는 가족과 말조차 잇지 못했다. 그러나 이 단절은 다른 랜선으로 이어졌다. 온라인 상담 플랫폼에서 그는 조금씩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관계의 단절을 치유할 실마리를 찾았다. 연애의 시작도, 갈등도, 그리고 치유도 — 모든 것이 디지털을 경유하고 있었다.


단순한 '금지'가 아닌, 새로운 윤리


아이들의 온라인 연애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위험하니 하지 마라”는 말은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일 뿐이다. 중요한 건 어떤 매체에서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그 관계를 어떻게 건강하게 이끌어가느냐다.

심리학자 로렌스 콜버그는 도덕 발달을 ‘규칙과 정의 중심의 판단’으로 설명했다. 이 관점에서라면, 상대방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타인을 협박하거나 강제로 통제하는 순간, 사랑은 이미 무너진다. 반면 캐롤 길리건은 관계 속에서 ‘배려와 책임’을 강조했다. 온라인 연애에서도 결국 지켜야 할 기준은 상대의 감정과 취약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던져야 할 말은 “연애하지 마라”가 아니다. 대신 이렇게 물어야 한다.
“너희가 나누는 대화는 서로를 지켜주는 방식이니?”
“상대의 취약함을 이용하는 순간,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폭력인데, 그 경계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사랑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디지털 시대의 사랑이 권리와 배려 위에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윤리의 뉴노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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