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도착한 배움, 길을 찾는 학교

by 우소연

지식의 독점이 무너진 교실, 미래교육의 신호


올해 서울대 사범대에 학습과학이라는 새로운 전공이 생겼다. AI와 빅데이터로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분석하고, 맞춤형 학습을 설계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산업화 시대의 교육이 지식을 전수할 교사를 길러내는 일이었다면, 이제는 ‘학생이 어떻게 배울 것인가’를 설계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하며 나는 ‘올 것이 왔구나’하고 속엣말을 했다. 요즘 세상에 지식을 얻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또한 애써 지식을 수집하지 않아도 필요한 지식을 그때그때 찾아 사용하면 된다. 머리에 지식을 소유할 필요가 적어지니 지식 전수의 장이던 학교의 가치도 하락한다. 최근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은 “원하는 것을 배우고 싶다”거나, “학교 수업이 필요 없다고 느껴서”인 경우가 많다. 교실 안에서 전달되는 지식도, 이를 수행하는 교사의 권위도 약화되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내가 있던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영상 제작 수업을 맡은 교사가 열정적으로 강의를 했지만, 한 학생은 담임 선생님께 불만을 토로했다. “선생님은 자기 방식만 옳다고 하세요. 그런데 이미 다른 촬영 기법이 많거든요.” 전문 아티스트의 경력도, 유학을 다녀온 화려한 이력도 아이들에게는 더 이상 절대적 권위가 되지 못했다. 학생들은 이미 온라인에서 무수한 기법과 사례를 접하고 있었고, 교사의 ‘유일한 답’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었다. 나는 그 순간, 교사가 절대 반지처럼 지식을 소유하는 시대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교사 없이도 배우는 시대, 학습 설계자의 역할


음악을 좋아하던 한 학생이 작곡 수업을 원했을 때, 학교 안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외부 기관을 찾아 연결해 주었다. 3개월 동안 유명 기획사가 진행하는 청소년 작곡 수업을 들었고, 아이는 크게 만족했다. “이미 온라인으로 배웠던 것과 별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 말속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전통교육과 다르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담겨 있었다. 이후 그는 다른 센터에서 뮤지컬을 하며 음악 활동을 확장했고, 음악 교사가 되겠다고 진로를 정했다. 학교에서는 입시에 필요한 최소의 교육(예를 들면 화성학)을 시켰고, 졸업 전시회에서는 직접 작곡한 곡을 뉴미디어와 결합해 발표했다. 결국 서울에 있는 음악대학에 합격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한 일은 단순하다. 학생이 원하는 배움을 이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연결해주고, 그 배움의 의미를 함께 묻고, 앞으로 어떻게 확장할지 곁에서 지켜본 것이다. 지식을 직접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충분히 배워나갔다. 오히려 교사의 권위가 빠져나간 자리에, 아이 스스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설계할 수 있었다. 세상이 변한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 배우고, 입시를 준비할 수 있다.


고교학점제의 한계와 진짜 자율성의 부재


올해부터 고교학점제가 시작되었다.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진로를 설계할 수 있다는 취지는 분명 의미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아이들은 입시에 유리한 과목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아직 모르겠어요”라는 아이에게는 다양한 경험을 허락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당장 선택해야 하고, 결과는 입시에 영향을 준다.

또한 교사들은 학생 한 명 한 명의 삶을 함께 설계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교사 양성 과정에서 우리는 어떻게 잘 가르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배웠다. 교사들은 많은 실무들 속에서 아이들과 긴 시간 대화를 하며 진로를 탐색할 여력은 없다. 아이들에게 원하는 배움과 배움을 이어갈 수 있는 수많은 정보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결국 아이들이 가장 필요한 ‘헤맬 수 있는 시간’은 어디에서도 보장받지 못한다. 공룡처럼 움직이기 어려운 학교 시스템과 하루도 다르게 변화하는 현실 간의 갭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학교의 새로운 의미: 지식의 전달자가 아닌 '학습의 공원'


정보 과잉 시대, 아이들이 수많은 지식을 자신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습득하고 성장하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서울시교육청에서도 미래교육 2030에서 제시한 벨기에의 미래학교 구상인 학습공원(learning park)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 구상은 학교를 지식 '전달'하는 공간이 아닌, 다양한 주체가 모여 아이들이 스스로 '학습을 설계'하고 '경험'하는 장소로 만든다. 지식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언제든 얻을 수 있기에, 학교는 지역사회 전문가, 부모님, 심지어 아이들 스스로가 함께 참여하여 지식을 검증하고 새로운 지혜를 창조하는 '공원'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 학습공원에서 자유롭게 탐험하며, 실패하고, 다시 시작하며 진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학교는 더 이상 지식과 정보의 유일한 창구가 될 수 없다. 이제 학교는 아이들이 스스로 얻은 정보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다양한 관점을 연결하며, 자신의 길을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지식의 전달자가 아닌, 아이들이 '헤맬 수 있는 시간'을 주고 함께 길을 찾는 안내자이자 동반자로서의 역할에 대한 교육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좋은 대학을 나오는 것이 유일한 출구였던 우리의 과거가 미래 사회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의 관성'의 법칙에 의해 자녀에게 시간과 돈을 쓰는 일이 줄기를 바란다. 누가 먼저 낡은 룰에서 이탈할 것인가가 아이들의 미래를 앞당기는 일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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