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사야 (二十四夜) 중 둘쨋날
빨간 치마를 입은 여자가 플라멩코를 추며 금발 머리 휘날리는 이모티콘과 함께, 알람벨이 울렸다. 코렉션을 받으러 가야 하는 시간이라는 뜻. 이렇게 알람을 맞춰두지 않으면 자꾸 헷갈려서 동료들에게 의지해야만 한다. 미 씨랑 한참 공연 보러 오라는 얘기를 카톡으로 하느냐 설레고 좋았는데, 이젠 슬슬 일어나야 한다.
하얀: 전 이제 코렉션 받으러 가요.
미: 그러시군요, 근데 코렉션이 뭐예요?
하얀: 공연이나 리허설 때 잘하고 못한 거 피드백 듣는 시간이요. 발레 지도 위원 선생님들이 하세요.
미: 아, 그런 것도 있구나. 코렉션이 저한테는 그냥 정정이라는 뜻이라서. 근데 틀린 걸 고치는 거란 뜻인데 무섭네요. 덜덜. 발레의 세계란 무엇인가.. 하얀 씨 파이팅하세요!
하얀: 하나도 안 무서워요~ 그럼 또 나중에 연락해요, 히히.
미: 네 오늘도 파이팅 파이팅!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코렉션이라는 단어는 그냥 내가 어떻게 더 잘 춰야 하는지 듣는 시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미 씨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발레엔 정답과 오답이 있고, 정답 중에서도 더 나은 정답이 항상 있다. 그러니 나의 답은 거의 항상 오답이다. 고쳐야 할 것이 투성이다. 그래서 발레를 사랑하게 됐는데, 그래서 지치게 되는 날도 있다.
빈 무대 위에서 다른 군무 무용수 동료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지도 위원 선생님을 기다린다. 안젤로 선생님은 오늘도 얼굴에 심술이 덕지덕지 들러붙은 표정. 오답이 많아도 너무 많았나 보다. 클립 보드에 에이포 용지가 수북이, 그에는 빨간색 글씨가 대문자로 갈겨져 있다. 저 클립보드가 바로 안젤로 선생님의 오답노트다. 저 오답노트만 제대로 잘 복습하면 다음 시험은 더 잘 볼 수 있는 것이라 착각할 수 있는데, 저 오답을 다 고치고 나면 나는 꼭 새로운 오답을 만들어내 버리곤 한다. 인간은 유한한 생명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만드는 오답은 무한하다. 그 무한한 오답을 하나하나 짚어내는 안젤로 선생님은 진짜 무슨 내 안 좋은 혈자리라도 푹푹 짚어내는 한의사 같다. 다 나 좋으라고 그런 것은 맞지만, 아픈 건 매한가지다. 선생님의 성함의 뜻은 이탈리아어로 천사라던데, 천사는 무슨… 최후의 심판자면 몰라.
심판자 안젤로 선생님은 우리가 전날 공연을 “말아먹었다"고 했다. 아니 한국에 온 지 일 년 밖에 안 되어서, 저렇게 무서운 말은 또 언제 배우신 것일까. 한국어 과외를 받고 있다던데, 과외 선생님에게 저 단어를 콕 집어 물어보아 배우신 것이 확실하다. 안젤로 선생님은 게다가 안경 없이도 시력이 좋으셔서, 우리가 대형을 5센티라도 벗어나면 그걸 또 기가 막히게 잡아내서 지적하신다.
“하얀? Your arabesque was a disaster. Girls, I don’t want to see a half-ass 85-degree arabesques. This is a classical ballet. An arabesque is 90 degrees, si? Capisci, 하얀?”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대충 아라베스크, 숫자를 말하는 걸 봐선 내 아라베스크 각도를 다시 한번 지적하시는 모양이었다. 흥분하시면 영어만 쓰시는 게 아니라 이탈리아어까지 섞어 쓰셔서 더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Ok, Angelo. I’ll try. (알았어요, 안젤로 선생님. 노력할게요.)”
“하얀, 아라베스크 말아먹으면 안 돼.”
우리한테만 연습을 강조하시는 게 아니라, 본인도 참 새로 학습하신 것을 (‘말아먹다’라는 단어를) 꾸준히도 복습하시는 모습이다. 선생님 말씀만 들어도 허리가 다 욱신 거리는 것 같지만, 뭐 우리 발레단에 지금 허리 디스크 환자가 나 하나도 아니니까 어쩔 수 없다. 참아야 된다. 나는 선생님께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코렉션이 끝나고 다들 공연 전 간단한 끼니를 때우려 뿔뿔이 흩어졌다. 공연 직전에 밥을 먹었다간 속이 부대낄지도 모르니 바나나와 초콜릿 우유로 당을 잔뜩 충전하기로 마음먹고 나는 공연장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 앞에서 안젤로 선생님은 전화 통화를 하다가 울고 계셨다. 이탈리아어로 뭐라 하셨기에 무슨 뜻인지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안젤로 선생님께서 저렇게 서럽게 울고 계시는 모습은 진정으로 처음이었다. 그 와중에도 편의점에서는 Wham!의 Last Christmas가 신나라 울려 퍼지고 있었다. 편의점 점장님께 음악을 좀 줄여달라고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신나는 멜로디와 선생님의 울음은 전혀 하모니를 이루고 있지 못했다.
이럴 때는 선생님을 모르는 척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고민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안젤로 선생님과 눈이 마주쳐버리고야 말았다. 아무것도 못 본체 하긴 늦어버렸고, 뭐라고 해야 할지가 고민인데 선생님께서 먼저 인사하셨다.
“하얀, 안녕.”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지금 여기 뭐 먹을 거 사러 왔는데.. 물이라도 사다 드릴까요?” 나름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말을 해봤다.
“하얀 you’re so kind. I’m okay. 괜찮아요.”
왜 사람들은 어느 나라 출신인지 불문하고 하나도 안 괜찮을 때 괜찮다고 해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할까? 나는 가방을 뒤져서 휴대용 휴지를 꺼내 선생님께 건넸다.
“Please, use this. (이거 쓰세요.)” 선생님께 무슨 일이 생겼냐고 여쭤보는 것은 결례일 것 같은데, 내가 뭘 해드릴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근데 그 무시무시한 안젤로 선생님께서 이렇게 길 한복판에서 울고 계시다니, 정말 큰일이 나긴 한 모양이다.
“Oh, thank you, 하얀.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휴지를 받자마자 코를 팽! 하고 푸셨다. 그 소리에 본인도 놀라 멋쩍게 웃으셨다.
“My dog just died. My boyfriend called and told me my dog Aurora had passed. 강아지 죽었어. (우리 강아지 오로라가 죽었대. 남자 친구가 전화해서 죽었다고 알려줬어.)”
“Oh no! Your puppy (어머, 선생님 강아지가요?)”
“Yes. It’s horrible. It’s Christmas season, people are laughing, you guys are dancing, people come to see the Nutcracker, all merry and cheerful. And Aurora! Aurora’s gone. So much for Christmas miracles. (어. 정말 너무 끔찍한 일이야. 크리스마스 시즌이고, 사람들은 웃고, 단원들은 춤추고, 관객들은 <호두까기 인형> 보러 오고 그러는데. 근데 우리 오로라는! 우리 오로라는 죽었어.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무슨)”
안젤로 선생님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그리도 단단한 사람이 와장창 무너지다니. 상실은 정말이나 무서운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선생님을 덜컥 안아드렸다.
“You cry when you want to cry. It’s okay. Aurora is in a good place. No pain. (울고 싶으실 땐 확 울어버리세요. 괜찮아요. 오로라는 좋은 곳에 있을 거예요. 고통이 없는 곳에.)”
선생님께서는 여전히 어깨를 들썩이고 숨조차 고르게 쉬지 못하면서도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마주치더니 물으셨다.
“You really think so? You think Aurora is in heaven? (진짜 그렇게 생각해? 우리 오로라 천국으로 갔을까?)”
“Yes, heaven. 한국에서는 무지개다리 건넜다고 그래요. You know 무지개?”
“무지개?” 선생님은 이 단어를 모르시는 눈치였다. 무지개가 뭔지 재깍 생각났으면 좋겠는데 몇 초 걸렸다.
“무지개! 레인보우!”
“Rainbow? Really? (무지개? 진짜?)”
“Yes, really. (네 진짜로요.)”
안젤로 선생님은 여전히 코를 훌쩍이고 계셨고, 나는 선생님께 휴지를 마저 다 건넸다.
“하얀,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눈까지 새빨개져서 이따가 공연은 어찌 보시려나 싶었다. 내가 영어만 잘하면 선생님 오늘 같은 날은 집에 가서 쉬시면 어떠냐고 여쭤보고 싶은데, 사실 내가 할 몫의 얘기도 아니고 내 마음을 제대로 전달할 자신도 없었다.
“안젤로 선생님, 파이팅!“
“하얀도 파이팅! What about your dinner? Shouldn’t you go and get something to eat? (너 저녁은? 뭐 먹어야 하지 않아?)”
이렇게 서러운 저녁에 밥도 혼자 먹어야 되면 더 서글프지 않을까. 미 씨라면 분명 선생님 옆에 있어줬을 것 같다. 스마트 워치로 잠시 시간을 체크해보니 아직 콜 시간까지는 시간이 충분했다.
“I was going to eat something light. Like a soup? Together, shall we? (저 수프 같은 간단한 것 먹으려 했는데. 같이 드실래요?”
샌드위치는 좀 힘들어도 지난번에 미 씨와 먹은 단호박 수프 같은 것이라면 괜찮을 거다.
“If you’ll have me, that’d be nice, actually. (네가 괜찮다면 나야 좋지.) 감사합니다. 하얀.”
아주 자그마하게 선생님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같이 수프라도 드시겠냐고 물어보길 잘했어.
미 씨가 알려준 가게로 가서 안젤로 선생님은 단호박 수프에 빵 한쪽을, 나는 단호박 수프에 귤을 하나 먹었다. 트레이에 가득한 오렌지 빛깔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에 안젤로 선생님 얼굴에서 다시 미소가 보일랑 말랑 했다. 저녁을 먹는 동안 우리는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선생님께 일 년 동안 내 오답에 대한 지적을 받아봤어도, 밥을 같이 먹기는 처음이었다. 어색했다기 보단, 선생님께는 잠시나마의 고요가 필요해 보였다. 시간이 넉넉했다면 미 씨가 있을 카페에 들렀겠지만, 나는 곧 다시 극장으로 향해야 했고, 선생님도 슈트로 갈아입으셔야 했다.
극장 앞, 소나무가 많은 곳을 지나가는데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었다.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아직 성묘가 되지 않은 듯 해 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가 애처롭게 울고 있었다.
“Look! 하얀! It’s a cat! (저거 봐 하얀, 고양이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고양이는 선생님에게 다가와 선생님의 발치에서 빙글빙글 돌며 애교를 부렸다.
“Very cute. She is so white! (귀엽네요, 너무나 새하얀 고양이네요)”
선생님은 분명 고양이가 눈에 밟히는 것 같았는데도, 극장 출연자 입구를 향해 발길을 옮기려 하셨다.
“Ciao, bella. (예쁜이 안녕.)”
그런데 이 작은 꼬마는 안젤로 선생님을 떠날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선생님을 새 동무로 간택한 모양이었다. 계속 선생님의 발목 언저리로 와서 몸을 비비고 가릉가릉 하는 소리를 냈다.
선생님께서 몇 번 ‘차오,’라며 이탈리아식 인사를 하고, 제 갈길을 가라고 했는데도 막무가내였다.
“She likes you. Aurora sent you a friend. (고양이가 선생님을 너무 좋아하네요. 오로라가 보내준 친구인가 봐요.)”
“Do you want to come with me, bella? (예쁜 녀석, 우리 집으로 갈래?)”
안젤로 선생님께서 마치 프러포즈를 하듯 무릎을 굽히고 고양이에게 손을 내밀자, 고양이는 선생님의 손에 얼굴을 살포시 가져다 댔다. 둘이 눈을 서로 마주 보더니, 이 꼬마는 아예 선생님의 무릎으로 폴싹 올라가 안겨버렸다.
“Oh! THIS is a Christmas miracle! (오! 이게 바로 크리스마스의 기적인가 봐!)“
오로라 앞에서나 보여주었을 환한 미소가 안젤로 선생님 얼굴에 꽃처럼 활짝 만개했다.
아직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정말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안젤로 선생님은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러나 어느 쪽이든 좋을 얼굴로, 이탈리어로 고양이에게 하늘을 가리키며 눈이 내린다고 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는 낮은 목소리로 선생님에게 무어라 달콤하게 속삭였다.
“She just told me her name is Snowball. (고양이가 자기 이름이 스노우볼이래.)”
“Snowball. Pretty name for a pretty cat. (스노우볼. 예쁜 고양이에게 걸맞은 예쁜 이름이네요.)”
“하얀 감사합니다. 오늘 하얀 덕분에 친구 생겼습니다. You’re my lucky charm. (하얀 씨가 내게 행운을 가져다줬어요.)”
“아니예요, 오로라가 보내준 친구일 거예요. 무지개 너머에서 보내준 친구.”
스노우볼은 차가운 오후의 공기가 피곤했는지 안젤로 선생님의 품에서 잠을 청하려 했다. 하얀 눈송이 사이로 하얀 꼬리가 나지막이 살랑였고, 선생님의 새하얀 미소와 함께 우리는 극장으로 향했다.
각자의 드레싱 룸으로 향해야 할 차례가 다가오자 안젤로 선생님은 따뜻한 목소리로 “In bocca al lupo, toi toi toi (인 보카 알 루포, 토이, 토이, 토이*)”라며 내게 행운을 빌어주었고. 선생님의 목소리에 스노우볼도 같이 작게 야옹하고 소리 냈다. 나도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을 담아 “Viva il lupo!** (비바 일 루포!) 끝나고 봬요 선생님!”하고 답했다.
따끈한 유자차 한 잔이라도 마신 것처럼 행복이 온몸에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오늘은 정말 제대로 무대에서 놀아볼 수 있을 것 같다.
* In bocca al lupo는 ‘늑대의 입 안으로’라는 이탈리아어 표현으로, 공연자에게 행운을 빌어줄 때 관용적으로 쓰는 표현이고, toi toi toi도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무용수들이 서로에게 행운을 빌어줄 때 쓰는 표현이다.
**Viva il lupo!는 ‘In bocca al lupo’에 대해서 하는 답으로 ‘늑대여 살아라!’라는 뜻이다. 관례적인 표현은 ‘Crepi il lupo!’로 ‘늑대여 죽어라!’라는 뜻이나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표현 대신 ‘Viva il lupo’를 쓰기도 한다.
본 단편 소설은 연작 소설 <이십사야> 중 두 번째 편입니다. 12월 1일부터 크리스마스 전야까지 매일 한 편씩 업로드되며, 총 24편으로 구성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