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사야 (二十四夜) 중 열아홉 번째 날
무조건 기뻐해주고 싶었다. 하얀 씨가 발레단 내에서 승급이 되었다고 했을 때. 하얀 씨의 재능과 아름다움, 성실함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소식이었고, 내가 아끼는 사람이니까 정말 진심으로 무조건 기뻐해주고 싶었다. 거기다 나랑 같은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닌데. 나와 너무나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인데, 내가 질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냐는 말이다. 물론, 소식을 듣자마자 방방 뛰며 축하한다고 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조금씩 침잠되었다.
사실 발단은 망할 타로 카드였다. 오늘 <호두까기 인형> 공연이 있기 전, 하얀 씨랑 발레단에서 같이 일하는 안젤로 선생님께서 카페에 와서 카푸치노를 마시며 몸을 녹이고 계셨다. 다른 손님이 없어서 안젤로 선생님이랑 간단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여느 날처럼 구석에서 통번역 공부를 하고 있었다.
딸랑, 하고 카페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긴 머리를 버건디 빛으로 염색한 여자가 들어왔다. 그의 어깨에는 화려한 페이즐리 무늬의 숄이 걸쳐져 있었다.
“어서 오세요, 가방 다방입니다. 추운데 일단 자리 편한 곳 착석하시면 메뉴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여자는 안젤로 선생님께서 앉으신 테이블 옆에 자리 잡았다. 메뉴를 보더니, 여자는 유자차를 골랐다. 시판 유자차가 아니라 직접 유자청을 담그니, 담글 때는 품이 들지만 차로 내놓을 때는 바리스타의 일이 매우 적어서 우리에겐 아주 감사한 메뉴다.
유자차와 함께 곁들일 수 있도록 보미와 만들어 놓은 녹차 사브레까지 하나 내드렸다. 하지만 차와 다과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여자분께서 이러시는 것이 아닌가.
“어머, 내 정신 좀 봐. 저기요, 사장님. 정말 죄송한데… 제가 정말 깜빡하고 지갑을 안 챙겨 나온 것 같은데.. 어떡해요.”
“아…”
나도 순간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했다.
“제가 스마트폰 결제 이런 것도 할 줄 모르거든요. 보시다시피 핸드폰이 스마트폰이 아니라서..”
여자는 언제 산 것인지 알 수 없는 폴더폰을 보여주었다.
“지금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날까요?”
여자가 당황하며 말했다.
하지만 이미 차는 내왔고, 쿠키도 내왔는데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괜찮아요, 그 대신 친구 분들에게 가방 다방 좋다고 소문 좀 내주세요. 아니면 다음에 오셔서 지불해주셔도 되고요.”
“진짜 제가 정신머리를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건지.. 정말 죄송합니다.”
나도 민망하고 손님도 민망해서 서로 어쩔 줄 몰랐다.
“제가 다음에 다시 꼭 올게요. 근데 그래도 아주 빈 손으로 이걸 받아먹을 순 없으니까.. 제가 타로 카드를 읽어드릴게요. 어때요?”
옆에서 곤히 자기 카푸치노를 즐기고 있던 안젤로 선생님께서는 갑자기 끼어들었다.
“Tarot cards! Yes, what fun! Come on, Mi, it’s gonna be fun! (타로 카드라니! 좋아요, 신난다! 미야 재밌을 거야!)”
“요새 미래에 대한 고민 많으시죠? 커리어에 대한?”
이건 너무나 당연한 얘기 아닌가? 난 딱 봐도 이십 대 후반, 삼십 대 초반인데 대한민국 내 또래에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없는 사람이 어딨어. 뭐 사랑태평양 화장품 회사 장녀 서모씨 정도는 돼야 커리어 고민이 없겠지. 물론 꽃가마 속에도 근심이 있을 수도 있고. 이래서 내가 적당히 때려 맞추는 점을 안 좋아한다. 근데 또 커리어 얘기가 나오니까, 하얀 씨는 승급받은 이 연말에 나는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내 얼굴엔 침울함이 드러났을 거다.
“점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요, 저는 타로를 그림 치료라고 생각해요.”
이건 또 무슨 사이비 종교 같은 멘트야.
하지만 안젤로 선생님의 등쌀에 못 이겨 나는 손님 앞에 착석하고야 말았다.
“존함은 말씀 안 해주셔도 돼요. 인적 사항도 필요 없고요. 제 이름은 알려드릴게요. 박지현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이름이다. 절대 기억하지 못할 것 같은.
“제 이름은 미예요. 외자입니다.”
“반가워요. 일단 카드 한 장을 뽑아보시겠어요?”
흔하디 흔한 타로 카드 점을 보는 방법 아닌가 생각하면서 카드를 한 장 뽑았다.
Seven of Cups. 어떤 사람이 일곱 잔 중 한 잔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하나를 고르면서도 확신이 없는 듯한 눈빛.
“흠. 두 장 더 뽑아 보실래요?”
이러다가 죽음이라던가, 아니면 악마라던가 하는 불길한 카드가 나오는 건 아닌가 싶었다. 안젤로 선생님은 무척이나 관심이 많은 눈치로 내 어깨너머로 내 손이 어딜 향하는지 바라보았다. Seven of Cups의 사람처럼 나도 내 선택이 맞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카드 두 장을 더 뽑았다.
지현 씨가 카드를 뒤집자 하나는 The Tower, 다른 하나는 The Hanging Woman이 나왔다. 내가 타로 카드에 대해 아는 바는 없어도, 여태껏 봤던 타로 카드들과 그림체나 문구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The Tower 카드에는 높은 언덕 위에 불을 품고 있는 여인이 별이 수없이 박힌 밤하늘, 무지개, 번개, 요동치는 번개와 파도에도 불구하고 평온하게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참선이라도 하시는 겐가. 그리고 The Hanging Woman은 내가 전에 본 타로 카드에서는 교수형을 당해 매달린 남자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기선 나체인 여자가 그네에 거꾸로 매달려 양팔을 놓은 채로 좋아라 매달려 있다.
안젤로 선생님께서는 뭐라도 아신다는 듯, “Interesting (흥미롭군)”하시더니 계속 카드들을 바라보셨다.
“맞아요, 재밌는 카드들을 고르셨네요. 제가 이 덱을 좋아하는 이유가요, 웨이트 계열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제일 잘 알려진 타로 카드들이랑 다르게 좀 더 전복적이고, 온화하고, 일직선적이지 않아서거든요. 일단 Seven of Cups를 보시면, 미 씨가 많은 선택지를 앞에 두고 있다는 걸 말해주네요. 나무로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는 새싹도 있고, 집을 지을 수 있는 목재도 있고, 흘러넘치는 아이디어도 있고, 활활 불타오르는 불꽃도, 연기도, 나풀거리는 나비도, 그리고 아름다운 새가 태어날 알도 있고요. 사람은 누구나 많은 선택지를 앞에 두면 헷갈릴 수 있어요. 흔하디 흔한 말이지만, 마음 가는 대로 살면 어떨까요? 자기가 하는 선택에 좀 더 확신을 가지고요.”
너무나 일반론적인 이야기이긴 한데. 그런 일반론적인 이야기가 내 가슴을 콕 찔렀다. 나는 최근에 사실 통번역대학원을 포기하고 그냥 다시 취직을 할까 해서 구직 활동을 좀 했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소프트 스킬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라고는 강남의 성형외과에서 성형 관광을 하기 위해 온 환자들을 돌보는 통역사를 하거나 아니면 정부와 유착 관계를 맺고, 돈과 권력만 가진 자들만 옹호해주는 법률 사무소에서 법률 번역을 하는 일이었다.
소프트 스킬은 통하는데, 다루는 주제라고 해야 할까. 성형이나 가진 자를 위한 법조는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거리가 멀었다. 외모지상주의에 힘을 실어 주고 싶지도,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에서 가해자라 할 수 있는 사측에 힘을 실어 주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또 동년배 친구들의 커리어가 쭉쭉 나아가는 것을 보면 나도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다. 사람들의 자기 외모에 대한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상대로 불공평한 법률 전쟁을 벌이고, 사내 성폭행 사건에서 무조건 돈 많은 가해자를 대변하는 회사더라도, 나와 같은 노동자의 권리를 납작 눌러 이득을 취하는 회사더라도, 업계 1위 성형외과나 법률 사무소라면 다들 ‘우와, 너 거기서 일해?’하는 소리 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내가 친구들에게 명함을 내밀 때 친구들이 ‘오 내가 이런 명함을 다 받다니’ 이런 말을 하는 상상을 잠시 해봤다. 물론 내가 의느님이나 변호사로 일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웨이트 계열 덱들은 The Tower를 재난이나 전락으로 보는데요, 저는 이 카드처럼 변화, 대변동, 계시의 의미로 봐요. 언덕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은 언덕 밑의 소란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잖아요? 동시에, 이미 불길을 지나와서 자기에게 필요 없는 것은 다 태워버리고 정말 본질만, 그리고 자기 안의 불꽃만 가지고 있는 거예요. 대변동을 통해 자기만의 것을 지키고 있는 거죠. 그리고 이 번개와 무지개는 그냥 이 사람 주변의 현상일까요, 아니면 이 사람이 만들어낸 것일까요? 보기 나름일 것 같아요.”
그래 올 하반기가 정말 많은 변화의 시기이긴 했어. 퇴사하고, 통번역 대학원 시험을 봤다가 고배를 마시고. 갑자기 보미네 카페에서 알바하게 되고. 회사 동료들이랑은 작별하고, 전 애인이랑은 이별하고.
“마지막으로 보이는 The Hanging Woman. 웨이트 계열에서는 항복, 희생, 시간 속에서의 유예라고 보는데, 저는 이 카드에서 사이클을 봐요. 초승달에서 반달로, 보름달로 차올랐다가 다시 반달이 되고 그믐달이 되는 자연의 사이클. 그리고 그 사이클을 믿고, 모든 걸 맡기고 하나가 되는 사람.”
<라이온 킹> 속의 <Circle of Life> 노래도 아니고 사이클 타령이라니. 나는 여전히 내 커리어에 대한 생각에 기분이 찝찝한데. 말로는 하얀 씨를 축하해주고 응원해주면, 속으로는 그러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나 실망스러운데.
“그러면 이제 제가 카드 앞면을 보여드릴 테니, 미 씨께서 미래에 대해 바라는 것을 생각하며 마음이 가는 카드 두 장을 골라보세요.”
고등학생 때 보미랑 몇 번 장난 삼아 연애운을 보러 강남역 타로카드 노점을 갔을 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주문이었다. 앞면을 보고 카드를 고르라니.
나는 강물 위에서 통나무 하나에 앞발을 걸쳐놓은 채 여유로이 둥둥 떠있는 곰이 보이는 카드와 수풀 사이에서 다운독 자세를 하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가 그려진 카드를 골랐다.
“둘 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카드들이예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겠냐고, 이 덱의 카드들은 다 사랑스럽지만요.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Flower of Stones 보이세요? 웨이트 덱에서는 Queen of Pentacles에 해당하는 카드예요. 원래는 부와 안정을 의미한다고 하죠. 근데 이 카드는 그 이상을 보여줘요. 이 곰은 아무런 펜타클, 보화, 돌이 없는데도 만족스러운 표정이죠? 강가에서 통나무 하나랑 물결에 몸을 맡긴 채 쉬고 있어요. 때로는 자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쉼이 중요한 걸 수도 있어요. 대단한 부귀가 없어도 충분히 충만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재밌게 다른 카드 하나도 스톤, 펜타클 카드를 고르셨어요. Ten of Stones. 이거도 부에 대한 카드예요.”
“옛날에 티비 광고에서 여러분 부우—자 되세요! 하던 거 생각나네요. 저 내년에 부우—자 되나요?”
확 그냥 성형외과에 취직해버려야 하나 생각했다.
“이 사람은 분명 물질적인 부를 성취하게 된 사람이예요. 수풀도 우거져있고. 뒤에 집도 있고, 태양도 환하게 떠있고, 무지개도 있고. 달걀을 낳는 암탉도 있네요. 고양이도 있고요. 돌은 열 개나 가지고 있어요. 근데 이 사람이 행복한 건 단순히 이 모든 걸 소유하고 있어서가 아니예요. 그 많은 돌들을 움켜쥐고 있지 않잖아요. 이 사람이 기쁜 건 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얼굴이 윤곽이 없고 투명하잖아요. 세상과 하나가 되고 있는 사람인 것이죠. 그래서 행복한 거예요, 이 사람은. 단순히 물질을 소유해서가 아니라요.”
좀 비아냥거리자면, 나는 집도, 닭도, 고양이도 없다. 그래서 지금 저 사람처럼 세상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진심으로 하얀 씨에게 축하해주지 못하는 것일까. 타로 카드를 보고 나서 아예 다 뚱딴지같은 이야기이거나 아니면 정말 운이 좋아서 명쾌하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왠지 생각거리만 많아졌다.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 지현 씨는 유자차를 마저 다 마시고 빈 찻잔을 내려놓았다.
“오늘 차 정말 잘 마셨어요. 여기요. 오늘 고르신 카드들을 찍은 폴라로이드에요. 다시 보면서 미 씨께서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생각할 거리나 나침반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지현 씨는 다시 가방 다방을 방문하여 찻값을 제대로 내겠다며 인사하고 카페를 떠났다.
내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을 바로 캐치한 안젤로 선생님께서는 내게 타로 카드 본 게 기분이 나빴냐고 물었다.
“I thought the cards were quite generous an kind, no? (카드들이 꽤나 관대하고 친절하던데, 아니야?)”
“Yes, they were… It’s just… (맞아요, 그랬죠… 근데 그냥…)”
하얀 씨가 그랬었다, 발레단 사람들은 무척이나 눈치가 빠르다고. 모두가 그런지 모르겠지만 안젤로 선생님은 진짜 그랬다.
“What happened? Something happened between you and 하얀? (무슨 일이야? 하얀이랑 무슨 일 있었어?)”
“No, no, just… I’m a little jealous. I mean, I love her. I care for her. I’m glad she was promoted. It just made me think about how stuck I am. My friends’ careers are flourishing. They are all doing their own thing. Meanwhile… I haven’t even begun what I want to do. (아니, 아니요, 그냥… 조금 질투심이 나요. 하얀 씨 정말 좋아하죠. 정말 아끼는 친구고요. 승급되었다니 정말 기쁜 소식이예요. 근데 하얀 씨에 비해 저는 뭔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 친구들 커리어는 다 잘 나가고요. 다 자기 일하고 있잖아요. 근데… 저는 아직 하고 싶은 일 시작도 못 했거든요.)”
말하다 보니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눈물이 다 나왔다. 안젤로 선생님이 날 나쁜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해서 더 부끄러웠다.
“I understand where you’re coming from. There’s something that my teacher once told me that I still mull over, every now and then. ‘Somebody else’s success isn’t your failure.’ It still makes me think. I can’t help but feel that life is a zero-sum game sometimes. There’s only so many jobs out there. And not everyone can do what they want to do. And that sucks, truly. But I try to remind myself of what my teacher told me and that everybody’s on a different journey. (네가 왜 그런 생각하는지 알아. 내 선생님께서 예전에 해주신 얘기가 있는데 아직도 가끔씩 곱씹곤 해. ‘타인의 성공이 너의 실패가 아니다'라는 말. 계속 생각하게 되지. 어떨 땐 삶이 제로섬 게임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으니까. 세상에 일자리가 무한한 게 아니잖아. 그리고 다들 원하는 자리로 갈 수도 없는 거고. 그러니 정말 구리다고 밖에 할 수 없지. 그래도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랑, 모두가 다 각자의 여정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걸 상기시키려고 해.)”
타인의 성공이 나의 실패가 아니다. 너무나 틀린 말이기도, 너무나 맞는 말이기도 하다. 대학원에서 열 명을 입학 정원으로 정했다고 하자. 같이 입시를 준비하던 친구가 붙는다면, 대학원 입학 정원의 공석은 한 자리 줄어든다. 그러면 그건 나의 실패에 더 가까워지는 길 아닌가. 같이 입시를 준비하던 친구가 열 명이었는데, 그 열 명이 모조리 붙고 나만 떨어진다면 타인의 성공이 나의 실패 아닌가.
하지만 모두의 삶은 다르게 흘러가고, 올해 입학하지 못하더라도 내년에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 또 내 친구가 합격하지 못하였다고 한들, 나의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논리를 떠나서, 맞는 말이긴 하다. 타인의 성공이 나의 실패가 아니라는 말. 무엇보다도 타인의 성공이 내 실패라고 생각하면 인생을 배 아프게만 살아야 한다.
지현 씨가 남기고 간 폴라로이드 사진을 본다.
많은 선택지, 대변동, 주변 세상에 대한 신뢰. 휴식, 자신에 대한 너그러움. 그리고 세상과 하나 됨.
어쩌면 지현 씨가 지갑을 잊고 가져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얀’s dancing tonight, right? If there’s any remaining seat, I’d love to go and see her and congratulate her. (하얀 씨 오늘 공연하시는 것 맞죠? 잔여 좌석이 있으면 공연 가서 보고 하얀 씨 축하해드리고 싶어요.)”
“You lucky girl. I always have a date seat and my boyfriend can’t make it tonight. Wanna join me? (네가 운이 좋네. 나 항상 연인 좌석을 하나 세이브 해두는데, 오늘 남자 친구가 못 오거든. 나랑 같이 갈래?)”
“Yes, I’d absolutely love that. (네, 그럼 저야 너무 좋죠.)”
나는 보미에게 클로징 시간가지 두 시간 정도만 대타를 뛰어줄 수 있냐고 문자를 보낸다.
그리고 하얀 씨에게 선물할 꽃다발을 사기 위해 꽃집을 검색한다. 승급 직후의 공연에 맨 손으로 갈 수는 없는 셈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으니까.
본 단편 소설은 연작 소설 <이십사야> 중 열아홉 번째 편입니다. 12월 1일부터 크리스마스 전야까지 매일 한 편씩 업로드되며, 총 24편으로 구성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