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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Nuance Jan 17. 2023

회화를 가장한 무대

이건용 작가

Lee Kun-Yong performing The method of Drawing 76-3, 4A Centre for Contemporary Asian Art, Sydney. 2018. first performed in 1976, acrylic paint on canvas. 

(image : https://archive.4a.com.au/lee-kun-yong-equal-area/)


한때는 무대였을 것이 아닌 척 시치미를 뗀다. 그림이랍시고 걸려있는 저것 앞에서는 분명 연극적 상황이 벌어졌다. 조촐한 1인극. 무대의 규모는 거창할 필요도 없이 혼자서 팔을 휘저을 정도면 족하다. 특이한 점은 극의 전개에 따라 무대가 개정된다는 것. 무대는 신체와 연계하여 상연자의 몸짓에 반응한다. 처음에는 공백이었던 무대가 조형을 갖춰 간다. 그리고 무대의 완성과 함께 공연도 막을 내린다.












Lee Kun-yong works on a ”Body Scape“ painting. (Gallery Hyundai)

(image : https://www.koreaherald.com/view.php?ud=20211006000920)


통제된 육체적 행위로서 그리기

이건용 작가는 전형적인 그리기 방식으로부터 이탈한다. 그에게 그림이란 인체의 행동반경과 동작의 구조를 측정하는 수단이다. 캔버스가 본인의 키를 넘거나, 어깨 높이, 또는 허리 높이일 경우 화폭의 뒤에서 어느 지점까지 붓이 닿을 수 있는가? 아니면 손목, 팔꿈치, 어깨를 고정했을 때, 각각 얼마만큼의 움직임으로 선을 그을 수 있는가? 작가의 회화는 이러한 제약들 속에서 가장 본질적이고 육체적인 그리기를 손수 실천해 본 결과물이다.


엄격한 각본에 따라 움직인다. 논리적 필연성에 의해 극도로 단순한 행위만 허용된다. 그 효과는 동일한 동작의 반복.그려낼 대상을 배제하고 미리 정해 놓은 규칙을 단지 기계적인 몸짓으로 이행할 뿐이다. 신체의 제약과 구속을 끌어안은 행위의 흔적이 화폭에 담긴다. 현대미술에 의해 부여된 창작의 자율성이 무색할 정도로 자기 통제의 영역에 머문다.



Lee Kunyong Solo Exhibition, "BODYSCAPE" Gallery Hyundai, 2021


텅 빈 무대

언제나 공연의 성격이 짙은 몸짓이 행해졌다. 그 몸짓은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하나의 지점을 벗어나지 않고 실천되었다. 작가가 머물던 자리. 지금은 공석으로 남았다. 연극이 끝난 무대. 공연자가 떠난 후, 텅 빈 무대를 바라본다. 무대는 어디까지나 연기자를 위한 자리다. 함부로 그 곳에 서는 것은 월권이다. 전시현장의 차단봉은 무대의 단상처럼 접근을 막고 자리를 사수한다. 여기에 조명이 가세한다. 작품을 부각시키는 대신 무대에 주연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화폭은 과거에 벌어진 사건을 간직한 장소다. 고로 사후적이다. 작품이 지금에 이르러 지시하는 바는 여러모로 부재(absence)다.



Lee Kunyong Solo Exhibition, "BODYSCAPE" Gallery Hyundai, 2021


현장의 단서로 남은 선

철거되지 않은 무대는 언제든 공연자를 끌어 들이는 법. 작가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는 마치 환영처럼 무형의 존재로 소환된다. 키, 팔 길이, 서 있던 곳, 작업 당시의 캔버스 높이 등을 가늠한다. 그리고 동작 하나하나를 연상해 본다. 무엇보다 확실한 건 붓이 지나간 단출한 동선이다. 붓 자국은 사건의 단서, 지문, 혈흔인 냥 취급을 받는다.


한번의 필치로 단숨에 그은 선들의 집합. 선의 시작과 끝을 유츄해 내기는 수월한 편이다. 예컨대 여러 선들이 겹겹이 쌓였을 때, 색이 뚜렷하게 분간되는 쪽이 출발지점이다. 처음에는 안료의 고유색을 유지하다가도 선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마르지 않은 물감끼리 배합된다. 나중에 가서는 색의 경계가 흐리멍덩해지기 마련이다. 선의 경로는 금새 들통난다. 관람자의 연상작용과 추리는 결여된 현장성을 채운다.



The Method of Drawing, Marker pen on plywood, 71.3x118x3cm, 1976


Lee Kunyong Solo Exhibition, "BODYSCAPE" Gallery Hyundai, 2021


이벤트에서 회화로의 전향

회화작업의 원형은 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신정권, 당대의 주된 통제방식은 위협적이고 고압적이었다. 작가 역시 정부기관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장본인이 아니던가? 개인의 사고를 획일화하고, 행동을 제한하며, 자유를 억압하는 외부/정치적 요인에 대한 저항. 작가의 창작의도가 조금이라도 여기에 부합하는 면이 있다면, 거칠고 투박하며 일종의 원시성을 간직하고 있는 양식이 적절했을 게다. 초창기의 작업은 합판과 매직 같은 날것의 재료를 주로 사용했다. 이때 더욱 핵심적인 매체는 작가의 몸 자체였다. 신체에 기반한 원초적인 드로잉이자 대중 앞에서 시연한 퍼포먼스. 영락없는 이벤트 였다. (작가는 본인의 작업을 '이벤트-로지컬 Event-Losical'이라는 용어를 고안하여 호명했다.)


세월은 흘렀고 애초에 이벤트의 속성이 강했던 작품은 최근에 이르러 회화로 전향했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신체적 한계와 구속을 빌미로 성립하는 작업의 조건은 여전히 유효하다. 허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통제의 메커니즘에 관하여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통제의 방식은 세월이 흐르면서 명령에서 설득으로, 위협에서 타협으로, 강제성에서 자발성으로 전환하였다.


오늘날 통제는 광고나 캠페인처럼 꾀나 유혹적인 방식으로 접근해 온다. 게다가 통제의 주체는 교묘하게 자기를 숨긴다. 그렇다면 현장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이벤트 보다 현장성을 은밀하게 감춰둔 회화가 적합할 수 밖에. 더구나 회화는 세련된 색감과 정제된 외형으로 드러난다. 작가의 숙련된 기량, 각종 폐지를 활용한 조형실험, 그리고 마무리 단계레서 가미된 장식적 요소들은 회화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이건용 작가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창작 원리를 바탕에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벤트에서 회화로의 이행은 달라진 통제의 현상학적 증세에 대한 전혀 다른 처방이다.


Lee Kunyong Solo Exhibition, "BODYSCAPE" Gallery Hyundai,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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