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세상 가설'과 '1만 시간의 법칙', 그리고 이준석
오늘은 요즘 읽는 책 중 야마구치 슈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 철학 이론을 가져다 현실에 맞춰 쉽게 설명하는데, 일본의 사례와 우리나라의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아 수긍하며 읽기에 좋아요.
오늘은 ‘공정한 세상 가설’에 대해 이야기한 멜빈 러너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멜빈 러너의 주장을 소개하며 자기계발서로써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용되는 말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이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죠.
‘1만 시간의 법칙’에서 대표적으로 인용되는 모차르트 사례를 가져와 볼게요. 글래드웰은 천재처럼 보이는 모차르트는 사실 어릴 때부터 긴 시간 노력했고, 1만 시간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천재가 될 수 있었다. 라고 결론짓습니다. 이 사고의 과정을 단순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명제 1. 모차르트는 천재다.
명제 2. 모차르트는 아주 많이 노력했다.
결론. 누구나 1만 시간을 노력하면 모차르트처럼 천재가 될 수 있다.
언뜻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지만 천천히 살펴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1. 원인과 결과의 오류 (False cause fallacy)
→ A가 B에 포함된다고 해서, B가 A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모차르트가 노력한 건 사실이겠지만, 그가 천재가 된 원인은 타고난 재능, 환경, 조기 교육, 가족의 분위기, 사회적인 조건 등 다양한 요인이 개입된 결과입니다. 유일한 원인이 ‘노력’이라고 말할 수 없죠. 즉, 노력이 성공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2. 귀납적 일반화 오류 (Hasty generalization)
→ 많은 자기계발서나 방송에서 보여지듯 이 사례 역시 일부의 사례를 일반적인 법칙처럼 확대 적용한 것입니다. 모차르트, 그리고 책에 소개된 여러 천재적인 인물들은 특수한 사례이고 그 인물들의 사례를 근거로 “누구나 노력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건 과도한 일반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저 사람이 복권에 당첨됐으니, 당신도 복권을 사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과 유사합니다.
3. 성공자 중심 서사의 함정 (Survivorship bias)
→ 이 주장은 성공한 사람만 보고, 실패한 수많은 사람들을 보지 않고 있습니다. ‘1만 시간을 노력한 사람들 중 모차르트가 있었던 것’일 뿐, 1만 시간을 투자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수많은 사람은 서사에서 배제되어 있죠. 따라서 이 주장은 희망을 가장한 착각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모차르트는 노력한 천재”라는 사실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걸 근거로 “노력하면 누구나 모차르트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이야기하는 건 논리적으로 근거가 빈약한 주장입니다. 이는 노력을 하려는 사람에게 ‘동기부여’로써 작용할 때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이 주장을 ‘사실’이라고 믿는 순간 ‘실패한 사람은 노력이 부족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의 위험성을 보며 이어지는 인물이 바로 2025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입니다.
이준석이 청년 정치인으로써 부각된 바탕의 서사를 보면 이렇습니다.
“나는 노력해서 하버드에 갔다.”
“기득권이 아닌, 실력으로 승부했다.”
→ 이 주장은 일견 공정하고,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것처럼 들립니다. 때문에 이준석의 지지자는 젊은 남자들을 중심으로 팬덤이 형성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을 배척하거나,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대상"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태도 문제로 환원시키는 정치가 이어지죠.
장애인 이동권 시위 에 대해 “지하철을 멈추는 방식은 정당하지 않다”는 주장으로 시위의 원인이 된 구조적 문제보다 불편을 준 방식 을 비판합니다.
이는 구조적으로 차별받는 계층의 문제 해결이라는 이슈를 "공공질서 vs 약자의 권리"
라는 프레임으로 왜곡시키죠. 우리는 장애인들의 시위를 보며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어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여성 정책 에 대해 “특혜를 주는 건 역차별이다” 라는 주장을 펼칩니다. 이 역시 사회에서 누군가는 겪는 성평등 문제를 구조의 개선이 아닌 개인의 능력 경쟁 프레임으로 환원 시키고,
나아가 "남자 vs 여자" 프레임으로 단순화 해서 왜곡되게 이끌어 갑니다.
이러한 논리는 겉보기에 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수성 결여, 그리고 구조적 문제에 의한 차별의 은폐를 가져오는 바탕이 될 수 있습니다.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은 약자를 판단할 자격이 있는가?”
“개인의 성공 서사가, 타인의 실패를 정당화해도 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개인의 성공은 구조 안에서 만들어진 예외적 결과일 수 있으며,
그 성공을 보편적 기준으로 제시하면 오히려 불평등한 사회를 더 공고히 만드는 결과를 낳습니다.